‘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명절에 식구들 만나기도 어려웠던 지난해와 지지난해.

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폭 완화된 올해 한가위엔 2년 넘는 시간 동안 소원했던 친척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그간의 소식들을 전하며 정담을 나눴다.

명절을 앞두고 포항 등 경북 일대를 덮친 태풍이 많은 수의 사상자를 내고, 재산 피해도 컸다는 건 안타까운 소식이다.

온전히 추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이재민들에겐 앞으로도 위로와 온정의 손길이 필요할 듯하다.

인간의 삶에서 수난과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어떤 고난도 함께 헤쳐 나가고자 하는 연민과 나눔의 마음이 있다면 극복이 불가능하지 않을 터.

어쨌건 중단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가을이 왔다. 책을 읽는데 시간과 공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지만, 푸른 하늘이 높아지고 아침과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 중순은 그 어느 때보다 독서하기 좋은 시절. 아래 소개하는 3권의 책을 친구 삼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맞이하길 권한다.

 

소설가 김별아
소설가 김별아

소설가 김별아와 경주 월성 산책 어때요?

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조선 여성 3부작으로 불리는 ‘채홍’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등을 발표하며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은 김별아가 신간을 출간했다. ‘월성을 걷는 시간’.

책엔 오랜 시간 계획을 세워 경주 월성 일대를 직접 돌아본 김별아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월성을 포함한 신라 역사 이야기가 실렸다. 여기에 현재 경주에서 살아가는 이들과의 만남도 담아냈다.

소설가 김별아는 경주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최근까지 경주 월성과 주변 지역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서라벌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산문집 ‘월성을 걷는 시간’의 일부 내용은 ‘경북매일’에 연재되기도 했는데, 이번 책은 그 내용을 보완하고, 추가적인 취재를 통해 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더했다.

책에선 ‘조심스레 얼굴을 드러내는 역사의 속살’이라는 부제를 단 월성 이야기를 시작으로, 고문헌인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등에 기록된 월성과 그 주변 유적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경주 중앙에 위치한 신라시대 궁궐이었던 월성은 그 안에 갖가지 사연과 수많은 유물을 지니고 있는 한국 역사의 보물 같은 공간이다.

김별아는 꼼꼼한 사전 취재와 여러 차례의 현장 답사를 통해 그곳을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만들고 있다. 책을 읽노라면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져 마치 소설가와 월성 주변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신라의 진면목과 만날 수 있는 ‘월성을 걷는 시간’.
신라의 진면목과 만날 수 있는 ‘월성을 걷는 시간’.

김별아는 보다 정확한 정보와 역사 지식을 전달하고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 월성 발굴 작업반장 등도 만났다.

‘개의 이빨처럼 맞물려 있던 시절’이란 글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궁궐은 신라와 어떻게 달랐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책을 펴낸 출판사는 ‘한해 방문객 수만 1천270만 명이 넘는 도시 경주. 한국 최고의 역사·유적 도시로서 수학여행의 단골코스이자, 힙한 황리단길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경주가 품고 있는 역사와 공간적 의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고 묻는다. 의미 있는 질문이다.

이와 관련 김별아는 책의 서두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경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렌다. 신라와 서라벌에 대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아는 듯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그리하여 월성이라는 비밀의 열쇠를 풀고 경주로 향하는 마음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 여전히 모르는 것들 앞에 달떠 두근거린다”고 썼다.

신라의 역사와 경주 사람들에 관한 애정이 담긴 이 말로 미루어 보자면 김별아는 월성과는 또 다른 ‘신라’ 혹은 ‘경주’ 이야기로 독자들 곁에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가 서성란
소설가 서성란

여전한 상처 ‘세월호 아이들’을 위로하다

기자가 아는 서성란은 성실한 작가다. 읽고 쓰는 것에 굴곡이 없다. 시종일관 무언가를 읽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소설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1996년 중편소설 ‘할머니의 평화’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서성란은 20년 넘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읽고 쓰는 것으로 삶을 시종했다. 특별한 다른 취미가 없다. 어찌 보면 문학을 향한 ‘무서울 정도의 성실성’이다.

오늘날,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에 문학적 촉수를 뻗어온 소설가 서성란은 ‘모두가 사라지지 않는 달’ ‘풍년식당 레시피’ ‘쓰엉’ ‘마살라’ 등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해왔다.

얼마 전 오랜 시간의 준비 끝에 출간한 ‘달 아주머니와 나’ 역시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연장선에 서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서성란의 새 책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은 ‘세월호 희생자’를 다룬다.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해 추모의 문학작품을 내지만, 이 소설은 단지 죽음을 위로하는 ‘추모’의 작품인 것만은 아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해 표현하는 슬픔이나 안타까움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은 자가 일정한 죽음의 시간을 지나며 직접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는 게 출판사의 설명.

 

비극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는 ‘달 아주머니와 나’.
비극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는 ‘달 아주머니와 나’.

직접적으로 그날의 비극적인 죽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아래와 같은 서성란의 문장을 읽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어린 세월호 희생자들이 떠오른다.

‘열여덟 봄은 열일곱 봄과 다르지 않았다. 열여섯, 열다섯에도 봄은 그럭저럭 무심하게 흘러갔다. 열네 살의 봄은 여느 해와 달랐다. 엄마가 떠났으니까 말이다.’

- 위의 책 9페이지 일부 인용.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텐데도 아버지는 말을 아끼고 감정을 절제하면서 우물거린다. 나는 깊은 상념에 잠겨 길게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를 달래주지 못한다.’

-위의 책 45페이지 일부 인용.

이 가을. 아프지만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제대로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달 아주머니와 나’를 펼쳐보면 어떨까.

 

권경률 작가
권경률 작가

우리가 몰랐던 ‘고려 장수’ 김종연

역사는 승자의 행적만을 기록한다. 그건 동서양과 고금(古今)이 다르지 않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다. 그러나, 그에게 맞서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고려 장수 김종연의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포항 출신의 작가 권경률의 책 ‘모함의 나라’는 실제 역사에서는 패자였지만, 그 위상과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김종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김종연은 고려 우왕 때 수차례 왜구를 토벌하는 공을 세운 장수다. 1388년에는 남원과 구례에서 왜적과 싸워 이겼고, 1389년엔 쓰시마를 정벌해 고려인 포로들을 구출하기도 했던 인물.

그러나, 그런 공적이 있었음에도 모함으로 인해 옥에 갇혔다. 권경률은 김종연이 겪은 옥고가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방해하는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모함의 나라’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고려 말 40년 동안 이어진 왜구와의 전쟁. 왜구 토벌전에 헌신하고 나라와 백성을 지킨 장수들은 역성혁명을 추진한 이성계 일파의 모함에 쓰러져갔다. 고려를 수호한 무인들은 어떻게 잊혔을까? 역사는 과연 정의로운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담은 ‘모함의 나라’.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담은 ‘모함의 나라’.

“이 책은 모함의 희생자로 보이는 실존 인물 김종연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고려 말 왜구 전쟁과 왕조 교체기의 권력투쟁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출판사의 이어지는 부연.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책의 1부와 2부에선 고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왜구의 실체를 규명하며, 왜구 토벌 과정에서 이성계가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

3부 ‘잊힌 무인들’과 4부 ‘호랑이 등에 탄 역사’에선 정권을 잡은 이성계가 명나라를 끌어들여 정적을 모함하고 고려 왕조를 붕괴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엔 김종연의 저항과 분투 과정 또한 상세하게 담겼다.

‘모함의 나라’를 출간한 권경률은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회사원과 기자 등의 직업을 거쳐 현재는 역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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