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노승욱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얼마 전 문해력(文解力)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과문이다.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자 주최 측이 공식 SNS에 올린 것이다. 그런데 ‘심심(甚深)하다’란 표현이 문제가 됐다.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줌” 등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이 내용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MZ세대의 문해력 저하 논란을 촉발시켰다.

문해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교육부는 202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국어 시간을 34시간 늘리기로 했다. 고등학교 선택과목에도 ‘독서 토론과 글쓰기’같은 과목을 개설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기 한 권 읽기’개념이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는 빠져 있다. 국어 교사들은 이를 다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육 당국의 정책이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는다.

2018년에 조사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만 15세 학생의 문해력은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높았다. (37개국 중 5위) 그런데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조사 때마다 하락하고 있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또한 사기성 전자 우편(피싱 메일)을 판별하는 역량이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난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 세대임에도 디지털 문해력이 낮게 평가된 것이다.

서영아 국가문해교육센터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문해력은 단어 실력 테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센터장은 최근 문해력 논란을 ‘소통력 저하’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모르는 것을 묻고 서로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문해 교육의 본질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필자는 이에 더해서 ‘공감 능력’을 강조하고 싶다. 하버드의과대학교의 헬렌 리스 교수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공감을 정의한 바 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는 인문학의 중요한 방법론이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면서 독서력이나 문해력을 과시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서영채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는 ‘왜 읽는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 말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현재 우리들의 삶, 그리고 그러한 여러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삶을 읽는 것임을 뜻한다. 문학 작품 읽기가 공감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 읽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자어를 중심으로 한 어휘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물론 타당한 견해이다. 그렇지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문해력은 독해 능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진정한 문해력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