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영 (주)피엠그로우 전무
정봉영 (주)피엠그로우 전무

존 민슈(John Minsheu)의 대표작은 1617년 출간된 다국어사전 ‘언어에 대한 안내’이다 . 11개 나라말로 된 이 사전의 인쇄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던 존 민슈는 출판 예정인 사전의 내용을 설명한 인쇄물을 만들어 구독자를 미리 모집했다. 그 결과 국왕, 왕비, 귀족과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417명이 구독자로 참여했고, 그는 ‘구독의 발명자’ 또는 구독 출판의 ‘원조’ 가 되었다.

17세기 당시의 구독은 저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후원자나 일반 시민들이 돈을 대는 방식이라 지금의 크라우드 펀딩과 비슷했다고 한다. 이때 돈을 지불하겠다고 문서 아래 이름을 쓰는 것을 구독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일정 금액을 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구독경제’ 또는 ‘구독형 서비스’가 2010년대를 전후에 도입되기 시작해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도 그런 경우이다.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와 자동차의 소유주를 분리 등록해 차량 구매 부담을 대폭 줄이는 한편, 배터리를 빌려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를 ‘배터리 구독’ 이라고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개최하여 배터리 소유권을 자동차와 분리해 등록할 수 있게 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구독서비스 시대가 열렸다.

포항시의 경우 5천500만원 짜리 아이오닉6 EV 신차는 보조금 1천300 만원에 배터리 구독 서비스 2천200 만원을 빼면 자부담 2천만원에 구매가 가능해 진다.

전기차는 1일 100Km 운행시 월 연료비가 4만원인데 비해 내연기관차는 50만원 전후가 된다. 3.3 년 정도 운행하면 배터리 구독료가 빠지는 것이다. 훨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다.

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가 정착되려면 첫째 사용한 배터리 잔존 가치 등 진단 기술이 선행되어야 한다. 배터리 잔존 가치를 진단하는 통일된 기술과 기준, 데이터 공유를 통한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주력 제품을 보면 각형, 파우치형, 원통형 등 회사마다 성능과 기능이 각각 다르다. 일률적이고 공식적인 기준으로 잔존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는 ‘구독 배터리 재활용 생태계 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규제 개선은 자동차 등록원부에서 자동차와 배터리 소유권을 나눠 등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소유권 분리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신산업 생태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용이 끝난 배터리를 회수해서 다시 사용하거나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등이 구독료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세번째는 에너지 신사업 가운데 하나가 서비스형 배터리 사업이다. 이는 전기차의 배터리는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로 간주해서 이용료를 내고 빌려 쓰는 개념이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별도의 수명 및 특성을 지닌 자산이란 것이다. 제조 위주의 초기 단계에서 전기차의 안전성을 염려하면서도 배터리가 바뀌면 자동차 전체를 다시 인증해서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의도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배터리를 건전지와 같은 소모품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전기차 정의를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네번째는 데이터 개방도 필요하다. 전기차를 운행하는 동안의 운행 기록, 특히 배터리 사용 기록은 서비스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정비를 하는데도 배터리 사용의 누적 기록은 효과적 정비에 필수이고, 보험료 산정 때도 배터리 잔존 가치를 계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중에 중고차로 매각할 때도 역시 배터리 사용정보를 통한 잔존 가치는 적정 가격 산정 때 결정적이다. 그동안 전기차 운행 데이터는 자동차 제조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서 개방되지 않았다. 최근 환경부 등에서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데이터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폐배터리를 그대로 폐기하면 환경오염을 유발하게 된다. 하지만, 이를 재활용하면 제품 단가를 낮추고 부가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또 환경오염을 줄여 기업의 ESG 경영에도 기여할 수 있다. 폐배터리는 전기차 보급 확대로 배출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배터리 보증 기간이 5~10년임을 고려해 보면 2020년대 후반기부터 폐배터리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 환경부는 2026년 국내 폐배터리 배출량 예상치가 10만여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폐배터리는 환경오염과 화재를 유발하는 중금속 소재가 포함돼 매립과 소각이 어렵다. 폐배터리를 다시 활용하거나 친환경적으로 재사용하는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ESS는 폐배터리를 재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안이다. ESS는 재생에너지 등으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하는 장치다.

이차전지 제조기업 (주)피엠그로우는 재사용 ESS를 수요처에 구축하는 서비스형 배터리 사업 사업(BaaS)을 신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재사용 ESS 사업 영역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앞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가 가속화됨에 따라 배터리 소재부터 재사용에 이르는 배터리 전체 사용주기에 걸친 밸류체인 사업이 녹색융합의 새로운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