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광 뒤로하고 새 옷 입은 묵호

하늘로 난 산책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하늘로 난 산책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화양연화(和樣年華), 누구에게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있다. 석탄가루 묻어있는 검푸른 항구, 비좁고 가파른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는 동해안의 묵호에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할 만큼 풍요롭던 묵호항은 세월 속에 화려했던 시절을 묻어두고, 그 흔적만 묵묵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 묵호의 바다는 그때와는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흑백사진처럼 바다마을에 펼쳐진다.

 

‘동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
1960~70년대 불꽃 같은 호황 누리다
인근 동해항 성장에 쇠퇴하기 시작해

명태·오징어 나르던 가파른 비탈길
주민·예술가들 아름다운 벽화 채워
드라마 촬영지 입소문 사람들 발길

해양문화공간 재탄생한 ‘묵호등대’
하늘로 난 길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새로운 관광명소로 눈길 사로잡아

 

산비탈에 알록달록한 지붕이 촘촘히 박힌 등대마을.
산비탈에 알록달록한 지붕이 촘촘히 박힌 등대마을.

△옛 어촌마을 묵호동과 검은 바다 펼쳐진 묵호항

강원도 동해시의 먹빛처럼 검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묵호는 예전에 검은 새와 바위가 많아 포구가 까맣게 보였다. 그런 이유로 오진, 오이진(烏耳津)이라고 불렀다. 조선 현종 때, 오진에 큰 수해가 나자 강릉부사 이유응이 현장 시찰을 나왔다가 마을주민들과 촌장을 만났다. 유난히 검은 포구를 본 이유응은 마을 이름을 오진이라 부르는 까닭을 듣고,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곳에서 멋진 경치를 보며 좋은 글씨는 쓰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의 ‘묵호(墨湖)’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밤이면 오징어 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하다.’라고 할 정도로 묵호 바다에서는 명태와 오징어가 많이 났다. 어획량이 풍부하니 묵호항은 일거리가 넘쳤다. 남자들이 오징어를 잡아 오면 아낙들은 오징어 배를 따고 내장을 다듬었다. 일손이 부족해 인부들이 몰려오면서 묵호동 산비탈에 슬레이트지나 양철로 지붕을 올린 판잣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섰다. 밤에 산비탈 언덕의 판자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마치 반짝이는 도시의 빌딩 숲 같았다. 지금도 지명이 남아 있는 산비탈 골목 ‘덕장길’에는 소나무로 만든 덕장에서 오징어, 대구, 명태, 가오리를 꾸덕꾸덕하게 말리는 비린내가 풍겼다.

1960~70년대 묵호는 불꽃 같은 호황을 누렸다. 1941년 개항해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나르는 작은 항구였던 묵호항은 1964년 국제항으로 승격했다. 1968년에는 쌍용양회 대단위 시멘트 공장을 준공했다.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 되면서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나르기 위해 전국에서 화주와 선원이 몰려들었다. 묵호는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한 데 어울려 번성했다. 요정이 생겨나고 백화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술과 바람의 도시’, ‘유행의 첨단도시’가 됐다. 그러다가 1983년 동해항이 국제무역항으로 떠오르면서 묵호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명태도 더는 잡히지 않아 부산에서 냉동된 원양 생선을 사올 지경이었다.

논골담길 벽화마을.
논골담길 벽화마을.

△벽화마을 묵호동 논골담길

우뚝 솟은 등대가 한 가닥 빛을 비추는 등대마을. 하늘에 닿을 듯한 산자락 동네에는 발아래에 바다를 두고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가파른 비탈길이 온통 흙바닥이었던 붉은 언덕은 명태와 오징어를 나르는 지게와 고무 대야에서 흐른 바닷물로 질퍽해 장화 없이는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을은 줄줄 흘러내린 물 때문에 흙길이 논길처럼 질척거려서 ‘논골’이라 불렀다. 지금은 따개비 등껍질 같은 시멘트 바닥이 되었지만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슬레이트집 담벼락에 묵호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그려 ‘논골담길’ 벽화마을을 조성했다. 고단한 삶을 지게에 지고 이겨냈던 아버지들과 덕장에서 언 손으로 젊은 날을 보냈던 어머니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무수한 이야기들을 마을에 그려냈다. 담화로 감성을 덧댄 소박한 마을은 색다른 여행지로 다시 태어났다.

네 갈래로 나눠진 골목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논골 1, 2, 3길을 수놓은 벽화에는 황금기를 보냈던 묵호항의 역사와 바다에서 살아가는 지난한 삶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펼쳐진다. 등대오름길에는 논골담길에 불어오는 새로운 희망과 바람이 담겼다. 등대오름길은 2013년 방영된 드라마 ‘상속자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주인공 은상이 어머니와 도망쳐 나와 살게 된 집의 오렌지빛 지붕과 짙푸른 바다색의 대비는 눈이 시리다. 언덕배기 골목길 주인 없는 대문에는 바다로 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인지 홀로 남은 외로움인지 모를 눈물이 녹이 되어 흘러내린다.
 

해양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묵호등대.
해양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묵호등대.

△빛으로 마을을 물들이는 묵호등대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오르다 보면 논골담길 꼭대기에서 드넓은 바다와 동해시를 굽어보는 묵호등대에 다다른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어디서나 보이는 묵호등대는 1963년 처음 불빛을 밝혔다. 하루에 보리쌀이나 밀가루 한 되 정도의 품삯을 받는 아르바이트로, 남자들은 지게를 지고 여자들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자갈, 모래, 시멘트를 담아 나르며 건설했다고 한다. 2007년 해양문화 공간을 조성해 새로 지은 묵호등대는 동해를 항해하는 선박과 묵호항을 찾는 선박들의 길잡이이자, 푸른 동해와 백두대간의 두타산·청옥산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아침이면 온몸으로 해를 맞이하는 등대는 한낮에는 바다 바라기를 한다. 밤이 오면 환한 불을 밝혀 항구를 빛으로 물들인다.

 

스카이사이클의 짜릿한 체험.
스카이사이클의 짜릿한 체험.

△바다와 하늘을 즐기는 체험명소 도째비골 스카이밸리&해랑전망대

묵호등대와 이어진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에 들어서면 마을의 감성에 취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등골이 오싹해진다. 해발고도 약 59m 높이의 하늘 산책로, 스카이워크는 바다를 향해 난 바닥 일부가 유리로 만들어져 마치 허공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담대한 마음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왕버들을 모티브로 한 슈퍼트리 봉오리 조형물 앞에서 소망도 빌어본다. 영원한 약속을 의미하는 쌍가락지 조형물과 도깨비 뿔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볼거리다.

메인 타워에서 27m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자이언트 슬라이드’와 케이블 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스카이 사이클’을 체험하면 짜릿함은 배가 된다. 음식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도째비 아트하우스 ‘눈누난나’는 도깨비에 홀린 듯 거꾸로 세워져 있다.

바다로 내려가면 도깨비방망이를 형상화한 85m 길이의 해랑전망대를 만난다. 해상보도교량의 관문인 파란 도째비터널을 지나 다리 위를 걸으면 묵호의 바다 내음이 코끝으로 밀려온다. 투명한 유리 아래에서 파도가 발을 적실 듯 몰아친다. 하늘에서는 봉오리였던 슈퍼트리 조형물이 바다 위에 만개한 꽃처럼 피어있다.

어스름 해가 저문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묵호항으로 향한다. 어시장 좌판에는 자연산 횟감들과 다리가 튼실한 대게, 눈알이 싱싱한 생선들과 살이 반쯤 말려진 생선들이 넘쳐난다. 흥정하던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항구에 갑자기 짙은 해무가 몰려온다. 바다는 금세 자취를 감춘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과, 산비탈에 촘촘히 박힌 알록달록한 지붕과, 그 위에 우뚝 선 하얀 등대가 희미하다.
 

얼큰하고 시원한 곰치국.
얼큰하고 시원한 곰치국.

※여행메모

생김새가 못나고 투박해 선창 바닥에 내동댕이쳤던 곰치에 잘 익은 김치를 썰어 넣어 김칫국처럼 끓여낸 곰치국은 동해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흐물흐물한 생선 살덩이는 입안에서 녹을 것처럼 부드럽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살이 아주 연하고 싱거우며 곧잘 술병을 고친다’라고 전해질 만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은 속을 확 풀어준다. 해랑전망대 맞은편에서 어달항, 묵호항까지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식객 허영만이 다녀가 ‘백반기행’에 소개된 식당부터 곰치국의 원조임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묵호=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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