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지난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보수와 진보세력은 물론이고 지난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목청높여 불렀기 때문이다. 기념식 말미에 의자에 앉아 있던 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윤 대통령은 양옆 참석자들과 잡은 양손을 반주에 맞춰 힘차게 아래 위로 흔들며 노래했다.

윤 대통령의 왼쪽엔 박병석 국회의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박지현·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이 나란히 섰다. 이준석 대표와 박지현·윤호중 위원장, 여영국 대표는 정면을 응시한 채 주먹 쥔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들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도 양손을 잡고 함께 흔들며 제창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등도 행진곡을 입모아 불렀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 이 노래를 식순에서 제외하거나 참석자가 다 함께 부르는 제창 대신 합창단 합창으로 대체하던 것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백기완 시인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고,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학생 김종률이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전남도청에서 숨진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의 선생으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작곡한 민중가요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필자 역시 시위·집회때면 ‘애국가’인 것 마냥 목청높여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가사는 당시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애국심을 한껏 고양시키곤 했다.

그래서였을게다. 80년대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이 노래는 ‘불법 테이프’를 통해 널리 퍼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촛불집회를 비롯한 대중 집회에서 널리 불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른 것은 5·18정신을 헌법가치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국민통합을 위해 바람직한 행보다.

다만 일각에서는 5·18민주화 운동 당시 군부정권의 지시에 따라 진압에 나섰다가 숨진 군인과 경찰들이 학살자로 매도되선 안 되며, 이 문제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멀고 험한 통합의 길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