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이 만개한 격렬비열도 전경. /해양수산부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배경은 안개 자욱한 섬, ‘무진항(霧津港)이다. 음습한 기운이 가득한 무진항에서 주인공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하며 죽어간다. 동시에 ‘무진항’은 1964년 발표된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연상케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무진’이라는 장소에서 몽환적인 경험을 하며 현실을 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표상하는 안개. 그래서일까. 주인공의 행동은 안개 뒤에 가려져 더욱 과감해진다.

현실에서 만나는 바다 안개, 해무(海霧)는 이 같은 이미지의 극대화 버전이다. 해무는 어스름 위 어둠을 헤치며 떠다니다 아득한 순간,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곧 충돌과 침몰이 이어진다. 봄철 해무로 인한 해양사고가 빈번한 이유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3월부터 6월까지 발생하는 해양사고가 전체사고의 35%를 차지한다고 한다. ‘저시정’과 ‘황천’ 등 봄철 날씨로 인한 원인이 대다수다. 항구도시들은 뱃길과 하늘길이 동시에 막히기도 한다. 해무는 미세먼지와 함께, ‘꽃피는 봄’의 또 다른 불청객인 셈이다.

벚꽃이 개화하는, 완연한 봄이다. 코로나 확진자 폭증과는 별개로 따스한 봄볕이 꽃망울을 재촉한다. 일상 회복도 진행 중이다. 그동안 묶여 있었던 여행 수요와 보복 소비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립된 일상은 곧 관계로 회복되고 다시 연결될 것이다. 단절과 고립의 경험은 사실 해무가 일상인 섬마을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뱃길로만 들어갈 수 있는 섬마을은 ‘단절’의 상징이다. 그 곳에서의 삶이 일정한 폐쇄성과 배척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원인을 꼽는다. 오랫동안 낙후되고 협소하다는 선입견도 덧입혀졌다. 섬에 관한 고착화된 이런 인식은 섬 관광이 활성화되고, 자원개발과 해양영토 개념이 부각되면서 바뀌고 있다. 단절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달라진 현실의 파급력도 막강하다.

해양패권 경쟁시대가 도래하면서 섬은 유인(有人)과 무인(無人)의 의미를 뛰어넘어,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있다. 섬을 경계로 해양관할권과 해양자원을 차지하려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부터다. 일본의 경우 조그마한 암석인 ‘오키노도리’를 섬으로 해석하며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을 주장한다. 섬이 한 국가의 최전방 해양영토가 되는 동시에 경제적 가치를 가진 해양자원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섬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높아지자 우리 정부도 격렬비열도에 국가관리연안항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격렬비열도는 서해 최외각에 위치한 무인 섬이다. 최근에는 해양수산부 소속 등대관리원이 홀로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격렬비열도 인근은 한·중 공동관리 수역으로 중국 불법 어업이 빈번한 곳이다. 정부는 어족자원 보호와 해양영토 보전 등을 위해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지정하고 부두 등 선박 접안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해경 경비정과 어업지도선 등 선박의 입출항이 자유로워 해양영토 관리가 훨씬 수월해질 예정이다.

섬은 해양영토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의미와 동시에 해양관광산업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코로나로 멈춤이 시작되기 전, 우리나라 연안여객선 이용객은 1천700만 명을 육박했다. 섬주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해양레저가 활성화되고 낚시와 섬여행 등이 늘면서 선진국형 관광형태가 도래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다만 섬여행의 이유는 해외의 경우와 사뭇 달랐다.

정현미작가
정현미
작가

경남연구원의 ‘경상남도 섬 발전 종합계획 수립’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섬을 찾는 주된 이유는 ‘의미 있는 장소’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치를 보기 위해서’나 ‘섬 여행’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연구보고서에서 말한 ‘의미 있는 장소’의 정확한 뜻은 조사에 참여한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섬을 단순히 휴양이나 레저로만 여기지 않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섬은 냉정한 국제정세를 반영하는 국방안보의 상징이자, 해양자원개발의 독점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거기에 존재의 가치까지 더해져 관광객까지 불러 모으며 변신 중이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소득 3만 불 시대에 진입하면 해양레저관광산업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를 반영하듯 2010년 중·후반부터 섬관광 등 다양한 산업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위드코로나로 본격적인 관광시대가 열리면 산과 들, 바다는 다시 북적일 것이다. 단절과 고립의 경험이 강했기에 유대와 공유, 연결의 가치도 더욱 빛날 것이다. 최외각의 섬들이 항·포구로 연결돼 관광객을 맞고 해영영토 거점이 되듯, 우리네 삶도 ‘안락한 관계’ 속으로 들어서지 않을까. 존재만으로 ‘의미’를 갖게 된 섬처럼, 평범한 일상이 ‘관계’로 이어지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