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가흥리암각화
영주가흥리암각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고향인 달성군 시골집 인근에 있던 사당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다소 괴기스러운 모습이기도 했고, ‘귀신이 나온다’는 동네 형들의 귓속말은 또래 사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특히나 쾌쾌한 냄새가 나는 연못 오른편에 놓여 있었던 작은 석탑 주변은 무성하게 자란 풀떼기 만큼이나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200년은 넘은 사당’이라는 동네 어른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표했다. 또 어린 아이의 치기라고 할 수 있는 문화재를 훼손하는 장난보다는 멀찍이 떨어져서 200년의 세월을 감상하는 조금은 어른스러운 행동을 가지게 됐다.

진부한 질문이지만, 대한민국의 국보 1호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숭례문을 이야기할 것이다.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남대문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리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보물 1호는 무엇일까. 더 나아가 경상북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문화재자료 581점·유형문화재 473점·민속문화재 154점·기념물 152점·무형문화재 139점
우리 주변에 청동기·신라시대 유적도 있어… 잊혀져가는 문화재들에 대한 관심·보존 필요

농암영정후사본
농암영정후사본

「국가지정문화재 : 문화재위원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청장이 지정한 문화재이다. 국보와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국가무형문화재, 국가민속문화재가 이에 속한다.」

「시·도지정문화재 :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가운데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가 지정하는 문화재이다. 시·도 지정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념물 등이 이에 속한다.」

「문화재자료 :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가운데 향토보존상 시·도지사가 지정한 문화재이다.」

경상북도청에 따르면,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지역의 국가지정문화재는 모두 793점이다. 하지만 경상북도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의 2배에 가까운 1천399점이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문화재자료가 581점으로 가장 많고, 유형문화재가 473점, 민속문화재가 154점, 기념물이 152점, 무형문화재가 139점이다. 다만, 경상북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는 552호까지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어린 시절 시골 동네에서 가까이서 보았던 우리 지역의 문화재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다시 한 번 진부한 질문이지만,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경상북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 1호와 2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칭조차 ‘미상’이다. 본래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는 대구 중구 경상감영공원에 있는 선화당이었다. 선화당은 경상도 관찰사가 공적인 일을 하던 건물로 안동에 있던 것을 조선 선조 34년(160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 뒤 현종 11년(1670년), 영조 6년(1730년), 순조 6년(1806년) 3차례에 걸친 화재로 타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7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후 경상북도 도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1년 7월 1일 이전까지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 1호였으나,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경상북도에서 분리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호로 재지정됐다.
 

안동 용수사 소장 통진대사 양경 비편
안동 용수사 소장 통진대사 양경 비편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2호였던 징청각 역시 대구시의 분리로 현재 대구시 유형문화재 2호로 재지정된 상태다. 선화당과 마찬가지로 경상감영공원에 위치한 징청각은 경상도 관찰사가 살림채로 쓰던 건물이었다. 조선 선조 34년에 선화당, 응향당 등 여러 건물과 함께 지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호는 지난 2010년 2월 24일까지 존재했었다.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에 있었던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릉운탑비(鳴鳳僿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가 주인공이다. 유형문화재 3호는 그해 보물 제1648호로 승격됐다.

현재 경상북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의 제일 앞줄에 있는 것은 영주시 풍기읍 비로사 경내에 있는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다.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는 비로사 안에 있는 진공대사의 탑비다. 고려 태조 22년(939년)에 세운 비이며, 현재 일부가 파손된 상태다.

경북 경주시 배동 산72-6번지에 있는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19호와 21호도 눈길을 끈다. 유형 문화재 19호는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이며 21호는 ‘삼릉계곡선각육존불(三陵溪谷線刻六尊佛)’이다. 2개의 문화재 모두 1972년 12월 29일 지정됐다.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지정의 유형문화재 63호는 오래된 초상화다. ‘농암영정후사본및금서대 (聾巖影幀後寫本및金犀帶)’라는 이름의 그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조작가인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의 초상화다. 추사 김정희의 소개로 소당 이재관이 분강서원에서 그렸다고 한다. 현재 개인 소유다.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248호인 ‘영주가흥리암각화 (榮州可興里岩刻畵)’는 본래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향토사학자에 따르면, “1990년 8월 7일 문화재 지정 이전에 아이들의 낙서가 많았다”고 한다. 가흥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의 것이다. 청동 동구로 쪼아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여, 3~5개의 선을 옆으로 연결했는데 그 의미는 아직 알 수 없다.

2020년 말 기준으로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의 막내는 550호와 551호, 552호인 ‘최벽 관련 고문헌(崔璧 關聯 古文獻)’, ‘안동 용수사 소장 용산지(安東 龍壽寺 所藏 龍山誌)’, ‘안동 용수사 소장 통진대사 양경 비편(安東 龍壽寺 所藏 通眞大師 讓景 碑片)’이다. 이 가운데 ‘안동 용수사 소장 통진대사 양경 비편’은 원래 안동 태자사에 있던 통진대사 양경(879∼954)의 비문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범일-행적-양경으로 이어지는 사굴산문의 계보 및 고려 초기의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하고 있다.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
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

□곁에 있는 지정문화재, 관심과 보존 필요

근래에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 있는 연일향교를 찾았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고층 아파트의 옆으로 기와집이 늘어져 있었다. 효자동 입구에 ‘연일향교’라고 쓴 표지판이 작게 있었지만, 누군들 관심이 있었을까. 뜻밖에 연일향교는 1985년 8월 5일 지정된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1호였다.

「연일향교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성종 이전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면에 있는 중앙 칸의 칸살을 퇴칸보다 넓게 잡고 측면의 칸살은 뒤칸 앞쪽보다 2배 정도 더 넓게 잡은 칸잡이법을 사용했다. 건물의 구조와 공포 형식이 조선후기의 장식성이 강한 면을 보이고 있다. 대성전은 뒤에 위치하고 내삼문 앞으로 명륜당을 배치시키고 있다. 또한 주건물과 외상문이 동일축선상에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조성권이 쓴 상량문에는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대송면 장흥리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숙종 때 성좌동으로 옮겨 다시 건립되었다고 한다. 고종 8년(1871년)에 현감 원우상이 읍치를 효자동으로 옮기게 되면서 향교 역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연일향교대성전
연일향교대성전

연일향교는 마치 백성을 내려다보듯이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에 집이 없었던 과거라면 형산강과 연일 뜰이 한 눈에 보였을 것 같았다. 특히, 연일향교는 새로 손을 본 것인지 깔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과거의 손때가 여기저기 묻어 있는 것도 보였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와 함께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문제는 1시간 가까이 연일향교를 둘러보는 사이, 어느 누구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국보와 보물에 몰두된 우리의 관심에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국보와 보물도 지정 호수 2자리가 넘어가면 관심이 없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했다. 하물며 광역자치단체가 지정한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과분한 일이기는 하다. 다만, 대다수의 지정문화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보와 보물에 비해 접하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다. 지정문화재에 대해 공부를 하며 만났던 한 향토사학자는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라고 하지만 문화재의 등급을 매긴 것에 불과하다”면서 “지정문화재이건 비지정문화재이건 작은 관심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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