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나는꽃’ 대표 정아름

32살의 만들기를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 아가씨가 경상북도의 칠곡에 터전을 잡았다. ‘무엇을 하는가’하고 살펴보니, 꽃을 이용한 팔찌와 귀걸이, 화환, 브로치, 컵받침 등을 만들어 판단다. ‘이게 사업이 될까’하고 생각했는데, 만든 물건이 제법 잘 팔린단다. 한 달에 4천개나 팔린 팔찌도 있고, 외국에서 제품을 배송해달라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수입이 좋을 때는, 동년배 대기업 직원의 2배를 훌쩍 넘어섰던 것은 ‘안비밀’이다. 여름 더위가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7월의 끝자락, 칠곡에 위치한 ‘나는꽃’의 대표 정아름(32) 씨를 만났다.

“‘나는꽃’은 제가 꽃에서 영감을 많이 받고 작품과 상품을 만들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에요. 그리고 ‘나는꽃’ 카페는 다양한 공예 체험을 하는 동시에 커피도 마시고 작품 감상도 할 수 있는 힐링공간이죠.”

그녀의 이야기대로 ‘나는꽃’은 아기자기한 공예품부터 코끝을 간지르는 것 같은 꽃작품들이 천지였다. 이 모든 작품들은 논이 펼쳐져 있고 작은 동산을 끼고 있는 카페 겸 작업장에서 만들어졌다. 이런 그녀의 최대 히트작은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이름의 팔찌다. 브라질과 미국, 홍콩, 필리핀, 베트남의 개인 소비자들이 번역기를 돌려서 사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올 정도다.

경북경제진흥원에 따르면, ‘나는꽃’의 작품은 지난 2019년 베트남 수출 박람회에도 진출했었다. 대략 30개의 샘플을 들고갔는데, 현장에서 모두 팔렸다. 이후 1천개 단위의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1천개의 주문을 정아름 대표 혼자서 만들 수는 없는 일. 결국 수출 주문을 거절해야 했다.

 

칠곡서 카페 ‘나는꽃’ 운영… 팔찌·귀걸이 등 공예품, 한달 4천개 판매·해외주문도 잇따라

고객 80%가 수도권… 지방 특색·분위기 등 로컬문화수준 높아 ‘도시 향수’ 느껴지지 않아

지역민과 공예품 전시·판매·체험으로 창작감성 UP… “내 작품에 응원 댓글 볼 땐 행복해”

‘나는꽃’ 카페의 모습.
‘나는꽃’ 카페의 모습.

□ 변덕 심했던 아가씨… 창작 작품 들고 칠곡으로

“저는 22살부터 일찍 일을 시작해서 직업을 5번이나 바꿨어요. 변덕이 심하다고 부모님께 항상 혼나고 걱정만 끼치는 못난 딸이었죠. 뭐 그렇다고 회사에서 일을 못해 혼난다거나,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회사 입사 1년을 넘기고 업무에 적응하면, 재미가 없는 거죠.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회사 생활이 지겨워서 못 견디겠더라구요. 5번째 직업을 가졌을 때도, 역시나 위기가 찾아왔죠. 끈기가 없는 제가 너무 답답하고 한심스러워서 화가 나더라구요. 그때 처음으로 제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어요.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도대체 나는 어떤 일을 해야 맞는 걸까’, ‘나의 다양한 경험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이었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내가 질리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였어요. 그게 바로, 취미로 쭉 해오던 공예, 창작 작품 활동이었죠.”

아름 씨의 고향은 경상남도 사천시다. 5번이나 직업을 바꿔가며 살았던 곳은 서울과 대구 등의 대도시. 물론 아름 씨도 칠곡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여느 청년들의 고민과 다를 것이 없었다.

“겁이 많이 났죠. 과연 일을 하면서 밥값은 벌 수 있을까. 도시생활을 하면서 높은 월세를 내던 탓에 모아둔 돈이 별로 없어서 사업을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음…. 칠곡은 대구에서 프리마켓과 축제 참여로 만나며 친해진 작가님들이 추천해주셨어요. 아마 그게 칠곡과의 인연인 것 같아요. 물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와서 사업장을 열고, 정착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죠.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칠곡군에서 나름 활동을 하면서 적응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부모님께 혼나고 걱정만 끼쳤던 딸이 로컬인 칠곡으로 사업을 하러 간다는 데, 반대는 심하지 않으셨을까.

 

‘나는꽃’ 정아름 대표가 지역 어린이들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꽃’ 정아름 대표가 지역 어린이들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저희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제 똥고집을 알기 때문에 크게 반대는 없으셨어요. 제가 하는 일에 성인이 되어서는 반대를 하신 적은 없었죠.(웃음) 그래서 제가 이렇게 고집있게 사업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닐까요?”

아름 씨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자신의 삶 중에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녀에 따르면, 도시와 비교해서 잠자는 시간도 줄었고, 더욱 바쁘게 살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가끔 있었던 공황장애도 사라졌다. 마음의 안정과 자연의 영감을 받으며 일을 하고, 성과도 만족할 만큼 내고 있다고….

이러한 아름 씨의 실력은 어떠할까. 그것도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 정도인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름 씨는 이름난 액세서리 디자이너 밑에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오직 취미 생활 뿐이었다. 해외 유학은 꿈도 못 꿨고, 그저 서울의 작은 디자이너 회사에서 일한 것이 창업 직전까지의 경력이었다.

“취미가 돈이 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어요. 어머니도 처음에는 제가 월급의 대부분을 재료 구입비로 쓰니까 싫어하셨는데, 요즘에는 주변 분들에게 자랑하고 다니세요. 사실 저는 제가 만드는 것이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명도 정성들여 짓고, 작품을 하나 하나 만들 때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나는꽃’ 카페의 공예 작품.
‘나는꽃’ 카페의 공예 작품.

□ 시골과 도시의 경계는 사실상 없어…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이러한 그녀에게 시골이라고 불리어지는 로컬의 비전을 물었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하루를 후회 없이 알차게 살자!’는 것이 좌우명이에요. 그래서 사실 미래비전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저 같은 청년들이 경북에 많아진다면, 도시 청년의 시선들이 긍정적으로 바뀌겠죠. 그래서 경북이 조금 살기 편하고, 재밌는 곳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도시의 청년들에게 로컬의 삶을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그녀에게 도시의 향수란 것은 없다. 정아름 씨가 단호하게 생각하는 것은 ‘로컬의 문화 수준이 도시에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나는꽃’의 주문량으로도 증명됐다. ‘나는꽃’ 고객의 80%는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이다. 오히려 지방의 특색이나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 특색을 이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저는 매일 하루하루가 너무 설레고 행복해요. ‘오늘은 어떤 일을 하지?’, ‘어제 올린 신상에 어떤 응원의 댓글이 달리고, 주문이 들어왔을까?’하고 말이죠. 5년과 10년 후에도 이 행복함과 감사함을 유지하려고 계속 열심히 일을 했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분명 더욱 설레고, 행복한 일들이 생길 테죠. 그때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그녀의 ‘행복 바이러스’는 조금씩 칠곡에 전염되는 듯하다. ‘나는꽃’ 카페에서는 지역민들과 함께 만든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했다. 어린이들이 나무 공예제품, 패브릭 아트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다. 카페 앞에 널찍한 공간을 확보해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도 마련했다. 이렇게 카페를 중심으로 전시와 체험, 놀이라는 다목적 공간을 만들어 놓으니 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처음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을 주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구미대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체험을 하기도 했어요. 거기다가 제가 원래 시골에서 자라면서 다문화 가정을 많이 봤었거든요. 그래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초청해서 거의 무료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많이 줄긴 했지만, 그 여파가 지나가면 다시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힐링의 공간, 놀이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칠곡으로 내려온 후 창작을 위한 감성이 더 많이 생긴 것 같다는 그녀. 그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작품이 떠오르고, 뒷동산에 오르며 만나는 꽃잎에서도 아이디어가 생각난다고 한다.

“꼭 도시에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남들이 사는 방식도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거기에 억지로 끼워 맞추면서 살 필요는 없잖아요. 시골에 일자리가 없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기보다는 그저 재료값이나 벌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어요.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하면 분명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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