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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신석기 시대

등록일 2021-07-28 20:14 게재일 2021-07-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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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구형왕릉.

인류문명은 돌로 시작되었다. 앙코르와트, 모아이 석상, 스톤헨지, 피라미드, 마추픽추 등 돌의 문명은 지구 곳곳에 존재하고 또 발굴되고 있다. 세계 고인돌의 반, 약 3만 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있다. 강화, 화순, 고창 일대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이 많다. 예천 금당실마을, 군위 한밤마을, 고성 학동마을, 무주 지전마을, 아산 외암 민속마을, 제주 하기리, 산청 남사예담촌, 돌담길이 이웃과 이웃을 이었다. 돌담길에는 마을 사람들의 수고로운 땀이 배어있고 이웃과의 정이 높다랗게 쌓여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웃과 담을 쌓은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내 영역인데, 줄을 긋기는 뭐해서 강가에 나가 돌멩이를 지고 왔다. 남정네는 지게에 지고 아낙은 머리에 이고 돌을 날랐을 거다. 불콰하게 흥이 나야 힘을 쓰지.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도 빠지지 않았을 거다. 돌 하나, 돌 둘, 돌 셋, 돌 넷…, 쌓다 보면 이웃과의 정은 돌담보다 더 높이 쌓였을 거다. 집은 등을 지고 있어도 마음은 마주 보았을 거다.” (박채현 ‘발밤발밤 옛돌담길’ 일부 발췌)

우리네 생활 곳곳에 돌의 문명이 있다. 납작 동그란 돌 두 개를 포개 어처구니를 달아 돌리면 맷돌이다. 돌을 오목하게 파면 돌절구며, 땅에 묻고 그 위에 발로 디디는 방아를 걸치면 디딜방아다. 돌을 평평하게 깎아 그 위에 빨래를 놓고 두드리면 다듬잇돌, 툇마루 아래 놓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으면 댓돌이다. 얕은 개울을 가로질러 걸음에 마침맞게 놓으면 징검돌이다.

닻돌 - 나무로 만든 닻을 가라앉게 하기 위해 매다는 돌.

돌확 - 돌로 만든 조그만 절구.

누름돌 - 물건을 꾹 눌러두는 데 쓰는 돌(웃깃돌).

돌못 - 돌을 다듬어 박은 말뚝.

곱돌 - 촉감이 매끈매끈하고 기름 같은 광택이 나는 돌.

꽃돌 - 자연 암석에 무늬가 들어있는돌.

홍예(虹霓) - 무지개, 아치형으로 높이 두른 돌.

징검돌, 짱돌, 주먹돌, 몽돌, 선돌, 난돌, 든돌, 조약돌, 납작돌, 뾰족돌, 푸석돌, 곱돌, 숫돌, 받침돌, 디딤돌, 섬돌, 주춧돌, 김칫돌, 걸림돌, 박힌돌, 쐐기돌, 머릿돌, 온돌, 공깃돌, 아랫돌, 윗돌, 막돌, 아름돌, 강자갈, 콩자갈, 흰자갈….

돌의 문명은 정겨웠다. 디딜방아 돌절구 속을 휘젓는 어머니의 손은 어찌나 날랬는지, 발로 디딜방아를 밟는 아버지와 궁합이 절로 맞았다. 두둑 두둑 두두두두 두두두두 어머니가 방망이로 다듬잇돌 두드리는 소리는 어찌나 흥겨웠는지, 철퍽 철퍽 방망이로 빨랫돌 위에 놓인 빨래 두드리는 소리는 어쩐지 슬프게 들렸다.

해가 뜨면 돌담 너머로 나팔꽃이 기지개를 활짝 폈다. 한낮이면 돌확에 고인 물에 하늘구름이 내려와 노닐었다. 저녁이면 하루 항해를 마친 신발들이 댓돌 위에 가지런히 정박해 휴식에 들었다. 밤이면 따뜻하게 데워진 온돌 위에 누워 잠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작은돌 문화(小石文化)’가 있었다. 서넛이 모이면 공깃돌을 받았고 짝꿍을 정해 소꿉놀이를 했다. 돌로 쑥을 찧어 납작한 돌에 올리고 쌀알처럼 생긴 꽃을 오목한 돌에 담아 밥상을 차렸다. 마을 어귀 징검돌 위에서 가위바위보로 먼저 건너기 놀이를 했다. 아랫각단 철이는 돌에 마음을 담아 순이에게 슬며시 건네주고 도망갔다.

비석치기는 웃음이 넘쳤다. 처음에는 돌을 던져 상대의 비석을 맞춰 넘어트리는데, 단계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발등에 올리고 양 무릎에 끼고 엉덩이에 올리고 가슴에 올리고 머리 위에 올리고 양손으로 귀를 잡고 다가가 떨어트려 비석을 넘어트린다. 몸을 비틀고 어기적거리고 절룩거리고…, 돌을 떨어트리지 않으려는 그 몸짓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웃느라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Y자 나무를 잘라 고무줄을 묶으면 새총이 되었다. 강가에 나가 작고 동그란 돌을 모아 쏘는 연습을 했다. 큰돌 위에 깡통을 올려놓고 맞추기 놀이를 했는데, 쏘고 쏘기를 거듭할수록 잘 맞추었다. 닦은 기량을 믿고 나무 위에 앉은 새를 겨누었다. 그런데 참새를 맞추었다는 자랑은 있어도 그 증거로 참새를 가져온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돌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시골 아이들조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긴다. 돌멩이 몇 개로 함께 노는 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문화는 변하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함께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또래문화가 사라진다는 안타까움은 두고두고 남는다.

코흘리개 때, 돌을 가지고 논 경험이 있으신가. 그렇다면 당신은 현대문명을 사는 신석기인이다.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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