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에 청년이 산다
의성 고라니북스 대표 황영·김은영

경북 의성에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는 황영 대표와 아내 김은영 대표.
경북 의성에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는 황영 대표와 아내 김은영 대표.

“5년과 10년후요?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 것이고, 책을 만들고 영화를 제작하겠죠. 큰 욕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구요. 그래도 의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저희의 책들을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 않을까요?”

경북 의성의 안계. 시장을 끼고 도는 골목길에서 청년부부 황영 대표와 그의 아내 김은영 대표를 만났다. 첫인상을 이야기하자면, 만화 캐릭터를 닮은 바가지 머리와 바캉스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이랄까. 동심과 함께 산다는 느낌을 받으며 들어선 그들의 작업실, 아니 전시 공간에는 빼곡한 작업물들이 촘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계시장길에 2년 전 자리잡은 ‘고라니북스’… 그림책 출판·전시, 독립영화 제작자로 활동 
나란히 ‘예술가의 길’ 걷는 부부 “생계 위해 아파트 외벽 그리기 등 각종 아르바이트도 해봐”
의성 정착 후 출판한 책들 전국 서점 판매 등 성과… “꿈이 실현되는 의성에 보탬 되고 싶어”

의성의 안계시장길에서 그림책 출판과 전시를 하는 ‘고라니북스’의 황영 대표와 아내 김은영 대표, 이들은 같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며 만난 사이다. 대구 출신인 이들은 자신들의 창작 작업과 생계를 위해 별도의 돈벌이를 하며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일명 ‘돈 안되는 길’

“빌어먹고 산다”는 예전 부모님들의 2대장인 ‘시인’과 ‘미술가’, 아이러니하게도 황영 대표와 김은영 대표는 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여기에 영화까지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미 출품한 독립영화만 여러편이다.

“의성에 와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먹고 살만큼은 벌고 있어요. 여러가지 일을 받고 있거든요. 대구에서 하던 일을 포함해서 의성군에서도 도와주시구요.”

이들의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보통의 국문과와 미대 출신들이 선택하는 학원과 학교, 기업의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생계 유지를 위한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그중에는 아파트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아파트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상당한 고액 아르바이트다.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한 달만 일을 해도 몇 개월 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일을 아내인 김은영 대표가 했다고 한다.

일명 ‘도슨트 알바’도 이들의 일거리였다.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에게 작품과 작가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다. 또 갤러리에 그림을 거는 ‘디스플레이 알바’도 있었다. 주위에 따르면, 황영 대표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군복무 시기를 빼더라도 9년 중 3년 정도는 아르바이트로 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2년 전부터 정착한 의성은 이들에게 또 다른 기회의 땅이다.

“독립출판을 하고 있어요. 독립영화도 만들고 있고요. 독립출판요? 생소하실텐데, 일반적이지 않은 책들을 만들어요. 기성서점에는 들어가지 못하죠. 성인들을 위한 동화도 있구요. 화장실 등에서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작은 책들도 있구요. 물론 출판과 영화가 돈이 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저희가 하고 싶은 영화를 제작하는 거죠.”

 

의성군 안계시장길에 위치한 고라니북스의 작업실. 곳곳에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의성군 안계시장길에 위치한 고라니북스의 작업실. 곳곳에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고라니북스?… 이제 시작

그런데 독립출판도 하고, 독립영화도 제작하는 이들이 기반도, 연고도 없는 경북 의성에 정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경상북도의 ‘도시청년시골파견제’가 도움이 됐다고는 하지만,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는 이유가 부족하지 않을까.

“제일 큰 것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경쟁률이 좀 쎄더라구요. 애초에 높은 경쟁을 피하려고 합격률이 높은 의성에 지원한 것도 있죠. 도시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빨리 뛰었어요. 자극을 선택하지 않아도 자극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세계였으니까요.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자극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그리고 처음에는 안경 디자인 회사에 다녔어요. 그런데 조금 답답한 마음이 있었죠. 안경 디자인이 파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 반복적인 일이 많거든요. 틀을 벗어날 수도 없고, 창의적인 일도 아니었어요. 여러가지 갈증도 있었구요.”

그러면서 주섬주섬 전시되어 있는 책들을 가져와 보여준다. 모두 독립출판의 결과물이다. 대부분의 책들에는 글자보다 그림이 훨씬 많다. 이들이 미술학도라는 증거다. 물론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도 있는 것이 사실.

“대구에 있을 때는 한 권 정도 출판한 것이 전부에요. 그런데 나머지는 의성에 와서 출판한 것들이죠. 지금은 전국에 있는 독립출산물 서점으로 나가고 있어요. 고라니북스의 이름을 달구요.”

‘고라니북스’는 황영 대표와 김은영 대표의 사업체 이름이다. “도로 위에 있는 고라니를 본 순간, 갈 길 잃은 우리 시대의 청년들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 작명의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 의성을 비롯한 북부지역 곳곳에서는 외곽 도로에서 가끔씩 고라니가 출몰한다. 그리고 이들이 고라니를 처음 본 것도 답사를 위해 의성을 찾았을 때다.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광경을 목격한 순간, 오히려 의성이 예술활동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고.

“이미 저희는 의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찍었구요. 9월에도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할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장편 영화를 제작하는 거에요. 저희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거든요. 지금 시놉시스 정도가 완성된 상태에요. 여기 전시를 해놓은 것들이 영화의 콘티죠.”

□도시에서는 숨겨야 했던 우리의 이야기

그런데 황영 대표와 김은영 대표를 만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출판을 하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프라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투자도 있어야 하고 말이다. 시골인 의성에서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도 있거든요. 부족한 것은 저희가 충당하구요. 제작 장비나 배우들은 물론 서울이나 도시로 가야하죠. 그런데 그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갑갑한 면도 있죠. 예술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쯤은 아내와 함께 서울 등의 도시를 찾아요. 공연도 보고 전시회도 감상하구요.” “일도 대구에서보다 더 많아요. 의성에서 막걸리나 수제 맥주를 만드는 분들이 저희에게 라벨을 의뢰하기도 해요. 비용을 많이 받지는 않지만, 제가 만든 캐릭터와 연동해서 라벨을 만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해요. 또 우리 캐릭터를 활용해서 과일박스를 만들면 그냥 판매하는 것보다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더 높을 수 있고, 지역 브랜드를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애초 의성으로 오는 것이 단지 작업장을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죠. 저희가 생각하는 영화 제작을 더 착실하게 준비할 수 있구요.”
 

황영 대표와 김은영 대표가 만든 독립영화, ‘월영교를 지나면’의 한 장면. /고라니북스 홈페이지
황영 대표와 김은영 대표가 만든 독립영화, ‘월영교를 지나면’의 한 장면. /고라니북스 홈페이지

그렇다면 황영 대표와 김은영 대표에게는 의성에 정착한 것이 일종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을까. 하지만 ‘꿈’이라는 이야기에 황영 대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꿈이라기 보다는…. 지금 의성에서 하고 있는 것들은 조금씩 실현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영화 제작에도 한 걸음 나간 상태구요. 아마 대구에 있었다면, 여전히 꿈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과거에 황영 대표가 만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이라는 독립영화가 ‘서서히 알아주는’이라는 이상으로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는 뱀파이어 여자 노동자는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도 자신의 꿈을 숨기고 살아가야만 한다. 한 때 황영 대표는 뱀파이어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도시에서 알바를 병행하며 자신만의 삶을 추구했던 개인 창작자의 삶. 하지만 의성에 정착한 이후 뱀파이어는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희의 이야기가 담긴 장편 영화를 꼭 완성하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서 의성에 온 것이구요. 물론 그 한편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에요. 아직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는 많잖아요. 그리고 의성에 보탬이 되는 일도 하고 싶구요.”

/박순원기자 god0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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