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마스크 딜레마’
천식·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
마스크 착용 시 어지러움증 등
호흡곤란 증세 나타날 수 있어
‘KF94’보다 ‘80·비말차단’ 낫고
숨 가빠오면 즉각 휴식 취해야

마스크가 감염병 예방을 위한 필수 방어막이 됐지만, 오히려 이 마스크가 ‘건강에 독’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영국에서 만성천식을 앓던 외국인이 기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강요받아 과호흡 곤란 증상을 겪은 일화가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호흡기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호흡곤란을 경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코로나19 시대에 호흡기질환자들이 ‘마스크 딜레마’를 호소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호흡기질환이 악화하기 때문에 천식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가진 환자의 경우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사망한 코로나19 환자 중에 일부는 폐렴이나 폐기종처럼 만성 호흡기질환을 앓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자니 숨이 턱턱 막히고, 그렇다고 안 하려니 코로나19에 감염될까 걱정이다.

폐 기능이 낮은 호흡기질환자들은 마스크를 쓰면 기도 저항이 높아져 호흡곤란 증세를 겪을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존 질환이 악화될 수 있는데, 특히 요즘처럼 기온이 낮아지고 찬바람이 부는 환절기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포항성모병원 호흡기내과 박기훈 진료과장은 “만성 호흡기질환자는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산소 부족 때문에 호흡 활동이 어려워지면 어지러움이나 두통, 저산소혈증, 고이산화탄소혈증과 같은 증상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천식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COPD는 성인남성 5명 중 1명이 겪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지만, 증상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별다른 자각증상이 없어 질병 여부를 알아채기 어렵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COPD의 유병률은 11.6%로 당뇨병(10.4%)보다 더 높았지만, 환자들이 질병을 인지하고 있는 정도는 2.8%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당뇨병에 대한 인지율은 69.1%로 COPD 인지율과 30배 이상 차이가 났다.

COPD는 보통 흡연이나 먼지 등 오염물질에 장기간 노출되면 진행되는데 주로 40대 이상에서 발병하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이 악화되면, 이전 상태로 호흡기 건강을 회복하기도 쉽지 않다. 질병관리본부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과 함께 COPD를 주요 만성질환으로 분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 5월 COPD 환자들을 대상으로 N95 마스크 착용 후 보행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일부 환자에게서 호흡곤란 척도점수가 3점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숨을 최대한 들이마셨다가 내뿜을 수 있는 호기량을 측정한 1초간 강제호기량(FEV1)은 낮은 편이었다. 의료계에선 호흡곤란 척도점수가 3점 이상이거나 1초간 강제호기량(FEV1)이 30% 미만의 기도 폐쇄가 있는 COPD 환자의 경우 마스크 착용이 오히려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만성 호흡기질환자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지만, 부득이할 경우 물이나 음료를 휴대해 자주 마시면 도움이 된다. 평소 산소 치료를 받고 있는 중증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들은 산소발생기를 휴대해 다니는 것이 안전하다.

박기훈 과장은 “외출 전에 미리 KF94 마스크를 착용해보고 호흡곤란 등과 같은 증상이 있다면 전문의와 상담 후 기도저항 증가가 비교적 적은 KF80이나 비말차단용 마스크를 선택할 수도 있다”며 “외출 중에 호흡 곤란이 발생한 경우에는 사람들과 분리된 개별 공간에서 마스크를 즉각 벗고 휴식을 취한 후 증상이 나아지면 다시 착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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