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천의 옛날 을 기억하는 김연수

김연수는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메타적 글쓰기,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 혁명 이후 세대의 자의식 등으로 2000년대 한국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1970년 김천에서 태어난 김연수는 한국문단의 김천 출신 삼인방(김연수, 김중혁, 문태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김천에서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삼인방은 세상이 모두 인정하는 친구 사이로 유명하다. 소설가 김중혁과는 ‘씨네21’에 일 년 동안 번갈아 가면서 영화관람기를 연재했다가 2010년에 ‘대책없이 해피엔딩’이라는 ‘대꾸 에세이집’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시인 문태준과는 상대방이 문학상을 받았을 때(문태준 2005년 미당문학상 수상, 2007년 김연수 황순원문학상 수상) 시상식에서 서로 축사를 해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뉴욕제과점’이
있을 것이다.
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화의 대구 수성벌,
이육사의 안동 원촌,
한흑구의 포항 바다,
김동리와 박목월의 천년 고도 경주,
권정생의 안동 조탑동,
이문열의 영양 석보면 등도
작가들을 탄생시킨
문학적 자궁으로서의
장소일 것이다.

‘뉴욕제과점’(2002)은 김연수의 자전소설로서, 실제 작가의 이력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다. 김연수는 김천시 평화동에서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랐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뉴욕제과점은 김천역사에서 나오면 시청 방향이 될 왼쪽 편에 있었고, 살림집은 시내를 관통하는 3번국도 건너편 법원지청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역 근처에서 자라면서 어린 김연수는 포장도로와 자동차와 철로 역전을 놀이터로 삼았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014, 56-59면)

경북 김천은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김천역이 설치되면서, 근대적인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철도의 영향과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경상북도 서부권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여 1949년에는 일찌감치 시(市)로 승격되었다. 또한 한국근대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린 명작으로 평가받는 염상섭의 ‘만세전(萬歲前)’(1924)에도 김천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동경 유학생 이인화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서울로 가는 길에 부산을 거쳐 김천에 들른다. 김천에는 큰 형이 보통학교 훈도로 재직 중이었던 것이다. 긴 칼을 차고 나타난 형은 “여기두 좀 있으면 일본 사람 거리가 될 테니까 이대로 붙들고 있다가 내년쯤 상당한 값에 팔아 버리랸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통해 일제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는 김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김연수의 ‘뉴욕제과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김천이 1949년에 시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나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만세전’에 김천이 등장한다는 것과 같은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아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이유는 ‘뉴욕제과점’이 “연필”로 쓴 작품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이 작품은 “나는 이 소설만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연필로 쓴 글은 언제든지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연필로 쓴 글’은 돌에 새긴 비석이나 만년필로 꾹꾹 눌러 쓴 글처럼 모든 이에게 동의를 강요할 수 없는 가변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나’의 기억을 통해 그려지는 ‘뉴욕제과점’이 공식적인 기록과는 무관한 사적인 것이며, 동시에 이 작품에서 형상화 된 뉴욕제과점이 하나의 장소에 해당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문지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공간(space)과 장소(place)를 구분해 왔다. 공간이 추상적이며 객관적이고 사회적이라면, 장소는 구체적이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공간에 개인만의 정서와 경험이 쌓이면, 이곳은 고유한 의미를 갖는 장소가 된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김천이 단순한 공간에 불과하다면, 김연수와 같이 김천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김천은 대체불가능한 장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자신이 태어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던 ‘뉴욕제과점’과 같은 곳은 ‘장소 중의 장소’이자 ‘장소의 원형’에 해당한다. 고향의 집은 인간 정체성의 토대이자 실존의 중심으로서 마음의 안정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전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뉴욕제과점’은 감히 김연수라는 한 작가의 고유한 본질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뉴욕제과점은 작품 속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인간이 호명(呼名)을 통해 하나의 주체로 구성된다면, ‘내’가 “역전 뉴욕제과점 막내아들”로 불리워지며 성장했다는 것은 뉴욕제과점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나’는 뉴욕제과점이 있었던 “그 거리에서 배운 것들과 그 거리 밖에서 배운 것들로 이뤄진 어떤 것”이지만, “그 거리에서 배운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나’의 몸 안에는 “어려서 본 상인들의 세계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는 세상의 힘에 떠밀려 30년 이상을 같은 자리에서 버텨온 뉴욕제과점은 결국 1995년 8월 문을 닫는다. 1960년대에 문을 연 뉴욕제과점의 전성기는 1980년대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다. 처음으로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찾아오면서, 빵이라면 고급 생과자만을 생각하던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빵을 사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는 조금씩 쇠락하기 시작한다. 5공화국이 끝나갈 때쯤 손님들은 최신식 인테리어를 갖춘 제과점과 바게트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주창하던 무렵, 김천에도 파리크라상이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빵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는다. 더 이상 새롭게 바뀔 능력이 없어서, 1980년대 풍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뉴욕제과점도 결국 문을 닫고 마는 것이다. 뉴욕제과점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 24시간 국밥집이 새로 문을 연다.

양심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던 사람들이 자본의 공세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이야기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적당한 서사이다. 실제로 한국현대소설의 주류는 억울하게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 것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김연수가 뉴욕제과점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제기가 아니다. 작가는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존재론적인 삶의 진실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면,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아무리 견고한 것이거나 무거운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진다.”는 명제가 이 소설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더라도, 인간에게 본원적인 정체성과 안정감을 제공하던 장소를 잃어버리는 것은 커다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은 엄청난 속도로 앞을 향해 돌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장소의 상실이 더욱 전면화 된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장소 내부에서 진정한 장소감을 경험했다가 이를 자의든 타의든 상실하는 장소상실(placelessness)을 너무도 흔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다. ‘뉴욕제과점’의 ‘나’는 이러한 장소상실의 경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카스텔라를 만들 때 나오는 기레빠시(부스러기)나 최신형 케이크 진열대나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나’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영생하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뉴욕제과점은 이 작품에서 아름다운 불빛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뉴욕제과점이 잘 나가던 시절, 이 작품은 제과점과 역전 근처의 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뉴욕제과점은 사라졌지만, 온 세상을 밝게 물들이던 그 불빛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반짝이며, ‘나’는 여전히 그 불빛의 힘으로 살아간다.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불빛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사라질 수도 없으며 빛이 바랠 수도 없다. 심지어 역전 거리의 불빛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애틋함과 슬픔으로 인해 “둥글게 아롱져”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뉴욕제과점’이 있을 것이다. 문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화의 대구 수성벌, 이육사의 안동 원촌, 한흑구의 포항 바다, 김동리와 박목월의 천년 고도 경주, 권정생의 안동 조탑동, 이문열의 영양 석보면 등도 작가들을 탄생시킨 문학적 자궁으로서의 장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사라져 가는 장소들을 소중하게 되돌아보는 일은 우리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만드는 길임에 분명하다.

작가 김연수는…

1970년 김천 출생. 전통과 새로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특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불분명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문장이 돋보인다. ‘작가세계’를 통해 데뷔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청춘의 문장들’ 등을 썼고, ‘대성당’ ‘달리기와 존재하기’ 등의 번역자다.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자이도 하다.

<끝>
/문학평론가 이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