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가 지났다. 시간은 동지(冬至)로 출발했다. 낮과 밤의 교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는 “모내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며, 더불어 늦보리, 햇감자와 햇마늘을 수확하고 고추밭 김매기, 늦콩 파종 등으로 논밭의 농사가 몰아쳐서 무척 바쁜 시기”이다.

“하지가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산다.”라는 속담처럼 자연의 순리를 아는 농부들은 자연이 더 내어준 낮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여름 뙤약볕도 잊고 일에 열중이다.

코로나19에 갇힌 인간 사회와는 다르게 자연은 절기의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

농부들의 모습이 건강한 이유는 바로 자연의 섭리를 지켜 살기 때문이다. 그들의 땀방울이 키운 농작물이 세상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지사에도 농부들의 자세는 다르다. 할 일을 다 한 농부들은 겸손하다. 그 겸손에 자연은 풍성한 결실로 답을 한다.

자연과 달리 우리 사회는 부자연스러움의 연속이다. 언제부터 그런 모습이 낯선 모습이 아니게 되었지만, 최근에 북쪽이 보여준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민족상잔 비극의 날을 얼마 앞두고 이루어진 만행에 어이는 더 없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남쪽의 모습이다. 북쪽에 대해서는 왜 저리도 마음이 넓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명 북쪽이 한 행동은 일방적인 폭거다. 그런 범죄적 폭거에 남쪽은 유감이라고만 하고 있다. 이런 남쪽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한국 전쟁에 대한 일선 학교의 교육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역시나 아닐까 한국 전쟁에 관한 내용은 부실 그 자체였다. 일본 정부의 역사 교육 왜곡으로 일본 학생들은 일제감정기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모른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역사 교육이라면 조만간 한국 전쟁의 주범을 우리 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뭐든지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 의미는 변질한다. 얼마 전 필자는 한 정당이 내건 가로 펼침막을 보고 매우 놀랐다. 띄어쓰기도 잘못된 그곳엔 “평화! 멈춰서는 안됩니다!”라고 적혀 있었고, 이미 역사 속 인물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이 이미지로 새겨져 있었다.

우리 현대 역사에는 아픈 숫자들이 많다. 그중 필자가 느끼는 가장 아픈 숫자는 6·25이다.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수많은 호국영령의 뜻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뜻이 퇴색되고 사라져 가고 있다. 평화도 좋지만 최소한의 양심적 사과부터 받으면 어떨까!

한국 전쟁 추모 주간에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의미 없이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수업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지금 격주로 진행되고 있는 중고등학교 온라인 수업을 학교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생님, 제 친구들은 등교 수업 주간에 일부러 가정학습 내고 학교 안 와요. 그리고 저희 반 대부분 학생이 학원 다녀요. 차라리 학교 다니지 말고 학원만 다니겠다고 하는 친구도 많이 있어요. 선생님 이게 학교예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제자의 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온라인 학습인지, 정말 과제 학습형 수업이 학교 수업인지 묻고 싶다. 학교가 없어질 날이 눈앞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