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

지난 1월 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출장을 다녀왔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어 한국과 계절이 반대여서 1월이면 그곳은 여름이다. 오클랜드 시내에는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어학원과 사설 어학원 등 영어교육 기관과 관련 업체들이 많다. 뉴질랜드는 한국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위해 많이들 가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 시내 곳곳에는 한국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아시아계의 학생들로 가득했다. 시내 여기저기에 보이는 한국어 간판과 도처에서 들리는 한국어 말소리로 여기가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온 외국이라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방학이라 초, 중, 고, 대학생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많이 떠나는 시즌이다. 문득 필자는 한국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위해 전 세계에 뿌리는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과연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하게 되면, 업무를 진행하는데 실제 영어를 사용하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영어공부라면 책으로 문법을 공부하고 소설을 읽고 하는 것이 유일했다. 당시의 시청각 교재는 영어회화 테이프, 그리고 주한미군 방송이었던 AFKN, 그리고 외화가 전부였다. 요즘은 멀티미디어로, 온라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공부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총 9년을 공부하지만, 여전히 말못하는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흰 와이셔츠에 명찰을 달고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는 미국의 선교사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외국인노동자들도 한국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도 한국어를 곧잘 한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그리고 대학에 와서도 영어로 인해 학교를 휴학하고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것일까? 전국에 초, 중, 고, 대학생들이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쓰는 학비와 생활비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

10여년 전 필자가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오기 전에 근무하던 대학교에서의 일이다. 영어 원어민 교수들에게 한국의 실제 수능영어 문제를 시험삼아 치르게 해보았더니 이들은 독해지문을 보고 그 어려움에 혀를 내두른다. 이것은 영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위한 문제, 그리고 영어로 쓰여진 철학 문제라는 것이다.

외국어를 학습하는 궁극목적은 의사소통이다. 통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현재의 난해한 영어지문 해독 방식은 누가 어려운 영어단어를 잘 알고, 누가 어려운 영어문장 퍼즐을 잘 풀어내는가 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필자는 해외로 컨텐츠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수단인 영어를 배우러 가는 한국 학생들의 엑소더스(exodus)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정말 이제는 누구나 말을 잘할 수 있는 영어, 통할 수 있는 영어, 그냥 어렵기만 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한 실용적인 영어를 가르치도록 바뀌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