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사(有史) 이래 인류는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대상을 본뜨거나 의미를 전달하는 회화(繪畵)문자 체계를 고대 이집트 등지의 그림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이나 그림을 쓰거나 그리고 새긴 흔적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기록의 산실이라 했던가?

시간은 기록이 되고 기록과 사진은 역사가 된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을 적어두거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진 등으로 남겨두면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일상을 속속들이 일기처럼 적거나 사진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가꿔 나가는지도 모른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생활은 그 면면이 찍히고 사진기록으로 남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여행을 한다거나 행사에 참관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순간들을 폰카메라를 이용해 손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과 사연을 알리고 함께 나누며 관심과 소통, 안부와 공감으로 인맥과 관계망을 넓혀나가는 양상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각박하고 스피디한 정보화시대에 친구나 지인 등을 자주 만나 담소할 수 없으니 온라인 상에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교감하는 것도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싶다.

19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가 본격 보급되기 십 수년 전부터 필자는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서 친구들의 결혼식이나 자녀들의 성장과정 등의 사진을 거의 도맡아 찍어왔다. 오죽했으면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 시인이 필자 더러 ‘인연을 인감도장처럼 찍는 찍사다’ 라고 표현했을까? 살아오면서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숱하게 찍어 인화해둔 사진들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창고 한 켠에 두어 박스 정도 쟁여져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수시로 그 빛바랜 사진들을 몇 장씩 꺼내 본인들에게 전해주니, 그렇게도 좋아하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사진을 매개로 옛적을 회상하며 세월의 여울을 더듬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일상의 편린(片鱗)을/사진으로 켜켜이//기록영화 찍듯이/누리고 공유하는//저마다/기억의 곳간에/별로 뜨는 망울들’ -拙시조 ‘추억의 갈피’ 전문(2019)-

현재 사진은 시각적인 언어로, 창조적인 예술로 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거기에 담긴 풍경이나 인물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시간에 버물려지면서 스토리가 되고 작품이 된다. 사진 속에서는 아련한 옛날이 망각의 저편에서 넌지시 손짓하기도 하고, 무언의 얘기꽃이 새록새록 피기도 하며, 아린 그리움 속에 엷은 감미로움이 안개처럼 깔리기도 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實在)이듯, 찰나의 순간을 담는 사진이 시각 정보로, 예술로, 기록으로서의 쓰임새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듯 사진은 우리 삶의 각인이고 여운이자 기억의 곳간에 별로 뜨는 추억의 갈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