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해방 후 남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수많은 합의문과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직전 1971년 7월 4일 이후락과 김영주 명의의 7·4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1992년에는 남의 정원식 총리와 북의 연형묵 총리간의 남북 합의서가 발표되었다. 남북 간 불가침과 교류와 협력의 의지를 담은 지금도 손색없는 문건이다. 2000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 간의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고 뒤이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10·4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공 선언을 발표되었다.

지난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4·27 선언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다.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시민들을 향한 7분간의 연설과 9·19 평양 선언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케 하였다. 그러나 금년 초부터 북한 당국은 남한 정부를 비난하고 남북관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북미간의 하노이 협상은 결렬되고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 제재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못한 결과이다.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되고 결국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그간의 합의와 조치들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같은 분단국 운명으로 태어난 독일은 1972년의 양독이 체결한 기본 합의서를 충실히 이행하여 이미 1990년 통일의 꿈을 성취하였다. 1972년의 10개항의 양독 기본 협정문은 내용은 간단하지만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 그후 서독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은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되었다. 양독은 인적·물적 교류 뿐 아니라 방송까지 허용하면서 상호 신뢰를 구축시켰다. 통일 전 동독인들은 서독의 TV를 통해 분데스 리가 축구 경기를 같이 보았다. 양독 간 1972년 기본협약서 한 장이 결국 독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남북 정상 간 지난해의 합의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근원적으로 남북은 아직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적대적 공존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것을 지킬 의지가 사실상 없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을 겪었고 그것이 이념갈등과 불신을 부추긴 결과이다. 친북과 반북, 용공과 반공이라는 프레임이 정치에 이용되어 득표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남북 정상 간의 합의마저 국회의 비준은 엄두도 못 낸다.

결국 남북 합의마저 무력화 되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간의 남북 합의서 상의 공통분모를 뽑아 통일 헌장으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은 세습정권의 특성상 최고 지도자의 서명 문건은 폐기치 않고 보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간의 공동선언이나 합의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통일 헌장에 담아 국회의 인준을 받아 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외교 통일위원회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통일관련 시민 단체의 의견도 수렴해야 할 것이다. 이 통일 헌장은 가칭 우리의 ‘통일 국민 협약’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정권 교체에 관계없는 우리의 일관성 있는 대북 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