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이 세상에 있을까?
‘견딜 수 없는 사랑’이 세상에 있을까?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19.12.12 19:56
  • 게재일 2019.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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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하나의 풍경
이란과 백석 시인

이스파한의 셰이크 로트폴라흐 모스크 지붕이 푸른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이스파한의 셰이크 로트폴라흐 모스크 지붕이 푸른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통영(統營) 2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자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은(銀)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던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듯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사막과 검은 황금(석유)의 나라’로 불리는 이란에서 왜 뜬금없이 짙푸른 바다를 떠올렸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막연히 유추하자면 인간의 상상 바깥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과 바다가 주는 ‘막막함’, 아스라한 사막의 지평선과 바다의 수평선이 닮아서였을 것이라 추정할 뿐.

스스로 ‘신성 이슬람 공화국’이라 칭하는 이란. 그 나라의 척추라 할 자그로스산맥 동쪽 자락엔 아름다운 천년고도(千年古都) 이스파한(Esfahan)이 있다. 한낮의 온도가 섭씨 40℃를 넘나들었던 어느 해 5월 중순. 수도 테헤란에서 7~8시간쯤 버스를 타고 그 도시에 도착했다.

많은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이 “지구에서 가장 미학적 완성도가 높다”고 자랑하는 셰이크 로트폴라흐 모스크(Mosque of Sheik Lotfollah)와 ‘지상에서 가장 웅장한 발코니’로 이름 높은 알리 카푸 궁전(Mosque of Sheik Lotfollah)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이스파한.

매력적인 그 도시 중심에 자리한 ‘이맘 광장’(Imam Square)의 나무 그늘에 앉아 모스크와 궁전을 바라봤다.

동서가 600여m, 남북으로는 500m가 넘는 거대한 이 광장은 중국의 천안문광장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크다. 규모에선 조금 밀리지만 이슬람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내부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은 천안문광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란 꼬마숙녀의 눈에서 ‘푸른 바다’를 보다



수백kg의 갖가지 보석을 박아놓은 듯 페르시아의 태양 아래서 호화롭게 빛나는 셰이크 로트폴라흐 모스크의 지붕은 이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했다. 그걸 보러 각지에서 이스파한을 찾는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모스크 맞은편 알리 카푸 궁전 입구에서 석류주스를 마시며 익숙지 않은 뜨거운 날씨를 견디던 기자 앞에 동해 물빛처럼 파랗고 투명한 색깔의 원피스를 입고 엄마 곁에서 종종거리는 이란 꼬마숙녀가 나타났다.

다섯 살쯤이나 됐을까? 너무나 귀여워서 볼이라도 한 번 당겨보고 싶었던 아기의 커다란 눈망울. 그 안에 푸른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사막의 열기를 잠재우는.

순진과 무구, 그리고 순수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고…. 그 순간 북한 평안도 산골에서 태어나 끝끝내 남쪽의 바다를 그리워했던 ‘20세기 최고의 가객’ 백석(1912~1996)이 스물두 살 귀때기 파랗던 시절에 쓴 한 편의 시를 떠올렸다. ‘통영 2’다.

 

사막에서 바다를 상상하게 만들어준 이란 꼬마숙녀의 눈동자.
사막에서 바다를 상상하게 만들어준 이란 꼬마숙녀의 눈동자.


▲사막 같았을 시인의 심정, 그걸 위로해준 바다



일제강점기에 청춘을 보낸 시인 백석은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영민한 청년이었다. 겨우 18세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라는 명찰을 달았고, 이후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신문사 기자로 잠시 일했는데, 그때 만난 경상남도 통영 출신의 여성 박경련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신여성 박경련 역시 댄디하고 잘생긴 사내 백석에게 호감을 가졌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젊은 남녀의 사랑은 희극보다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은 법.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박경련은 백석이 아닌, 백석의 친구에게 시집을 가버린다.

‘통영 2’는 애끓는 연정을 참지 못하고 홀로 서울을 출발해 당시로선 머나먼 곳이었을 남녘 끝 바닷가 마을 통영까지 찾아간 한 청년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실연한 20대 초반 사내는 물만이 아닌 바람까지 짠 여자의 고향에서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우는’ 소리에 눈물짓는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심사를 주체할 수가 없다. 죽음에의 유혹이었을 터다.

시에 등장하는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골에 산다는 난(蘭)은 박경련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곁에 없다. ‘타관 시집’(결혼하여 타향으로 떠남)을 갔다.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그래서다. 아래와 같은 ‘바다 냄새 나는 문장’은 시가 쓰인 1934년으로부터 85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사랑을 잃은 젊은이들의 ‘사막 같은 쓸쓸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이 저녁 울듯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녕(지붕의 평안북도 방언)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손방아(디딜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이맘광장.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이맘광장.


▲사랑에 빠진 청춘들은 수백·수천 년 전에도 있었으니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스파한 이맘 광장에도 차도르(Chador·이란 여성들이 얼굴과 몸을 가리는 검은색 의상) 같은 어둠의 베일이 드리워졌다. 눈이 커다란 귀여운 꼬마숙녀는 엄마의 손을 잡고 멀리로 사라졌다.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떠올랐던 백석의 시도 모래 위에 그린 그림처럼 서서히 지워져갔다. 그리고 찾아온 고요한 사색의 시간.

산책하듯 돌아본 이맘 광장의 건축물 내부엔 벽화가 적지 않았다. 이슬람 율법은 미혼 남녀가 드러내놓고 연애하는 걸 엄격하게 금한다.

이란을 포함한 무슬림 국가 어디에서도 겉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연인들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법률과 금기의 제도만으로 청년들의 넘쳐나는 욕망을 온전하게 통제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이스파한의 벽화. 붉은 옷을 입은 심각한 표정의 페르시아 사내가 푸른 옷의 여인에게 무언가를 건네주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여인은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웃고 있다. 벽화가 그려진 시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그림이 완성되던 전후 상황도 짐작할 수 없지만 기자는 무턱대고 믿고 있다. ‘저들은 분명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라고. 그 믿음을 버릴 생각이 앞으로도 없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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