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몸이 좋았다 나빴다 한다. 몸이 큰일은 큰일이다. 가뜩이나 목 디스크에 통풍인데, 관절도 하루하루 안 좋아지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 뚜껑이 흰 마개로 된 장수 막걸리는 파란색 뚜껑보다 거금 200원이나 비싼데도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사양이다.

이번 학기 끝이 불과 두 주도 안 남았는데 이렇게 허덕일 수가 없다. 사실, 대학 선생들 방학 얘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눈코 뜰 새 없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으면 싶다. 바쁘기로 말하면 재벌 반열에 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학교까지 줄잡아 한 시간 사십 분, 오십 분이 걸리니 왕복 서너 시간, 아깝기 짝이 없다. 전철 타고 앉아 세월아 네월아 염치 없이 자리 차고 앉아 책을 읽든 뭐라도 끄적거리든 해야 한다. 그래도 꼼짝없이 전철 타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면 행복하다.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딴 짓도 하기 힘들다.

그런데 사흘씩이나 초미세 먼지라고 한다. 미세도 아니고 초미세라니, 세사도 아니요 극세사, 그냥 고생도 아니요 개고생이라 하는 요즘 세태에 어울릴 만 하다.

하지만 전철이라도 타야 좋은 것을 전철역까지 걸어갈 일이 무서울 지경이다. 오늘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는데도 사방이 캄캄해서 아직도 날이 안 샜나 했더니 미세먼지라는 것이었다. 심해도 이렇게 심할 수가 있나.

생전 처음으로 방독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서는데 을씨년스러운 공기가 아무래도 몸에 좋을 것 같지 않다.

가람 이병기 선생 때문에 익산 여산에 갔더니 미세먼지인가 초미세먼지가 전국 수위를 다툰다던가. 새만금 어쩌구 때문에 그렇다는 소리를 흘려 들었는데, 오늘 이 먼지 안개가 그런 것인 듯하다.

하루 종일 조심은 하노라고 한 것 같다. 모든 주의에 게으른 나로서는 이런 날도 일생에 꼽을 듯한 날이겠다.

초미세먼지는 듣고 보면 황해 바다 건너 중국에서 날아온다고들 하고, 어떤 사람은 한국 땅 안에서 화석 연료를 태워서도 그렇다고 한다. 옛날에는 황사라고 했건만 지금은 초미세먼지라 하니 그럴 것도 같다.저녁이 되자 난방 때문인지 눈이 따갑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조금만 건조해져도 눈이 뜨거워졌다. 헌데, 이건 난방 건조하고는 뭔가 다르다. 아하, 초미세 먼지라더니. 바로 이것이로구나. 옛날에는 눈에 왕방울만한 황사 알갱이가 들어가도 떼굴떼굴 눈동자 위를 구르기는 해도 이렇게 따갑지는 않았다.

세상은 좋은 게 좋게만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글쎄, 언제 이 짙은 안개 먼지가 개일 수 있을까.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