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별의 흔적이 꿈인 듯 지나가고…
빛나는 별의 흔적이 꿈인 듯 지나가고…
  • 홍성식·장유수기자
  • 등록일 2019.12.11 20:33
  • 게재일 2019.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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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호은종택.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호은종택.

‘지조론’을 펼친 선비 조지훈의 자취를 찾아서



영양군은 부정할 수 없는 ‘문인의 도시’다. 시인 오일도(1901~1946)와 조지훈(1920~1968), 소설가 이문열(71) 등이 모두 영양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생가는 물론,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문학관과 문학연구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00년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며 낭송될 작품 ‘승무’와 ‘낙화’를 쓴 조지훈은 빼어난 서정시인인 동시에 ‘영남의 선비’였다.

그가 1962년 펴낸 ‘지조론’은 세태에 쉬이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자기중심을 굳건히 잡아가는 지식인의 태도를 담담한 필치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선비의 도(道)’와 ‘민족(民族)의 길’ 같은 부분은 반세기가 흐른 지금 읽어도 그 감동이 여전하다.

김소월, 유치환, 서정주 등과 동급으로 평가받는 조지훈의 문학은 “한국 전통의 운율과 고요함의 미학을 현대적 시학(詩學)과 효과적으로 결합해냈다”는 상찬을 받았다. 그는 민속학과 역사에도 조예가 깊었다.

‘지훈 시 광장’, ‘조지훈 생가’, ‘지훈문학관’, ‘지훈 시 공원’, ‘시인의 숲’ 등이 조성된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은 바로 이 조지훈 시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다.

튀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예술적 향취가 배어 있는 지훈문학관을 찾은 날. 시인의 소년 시절을 담아낸 사진과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온 작가의 흔적과 만날 수 있었다.

오래 전 출간된 그의 저서 수백 여 권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여동생과 함께 낭송한 ‘낙화’도 녹음돼 있어 헤드폰을 낀 방문자들의 귀를 즐겁게 해줬다.

오십 살을 채우지 못하고 짧은 시간 세상에 머물다 떠났지만, 그가 남긴 주례사 등의 자필 원고는 조지훈이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했던 시인이자 선비’라는 걸 짐작케 했다.

문학관을 나와 조지훈이 태어난 ‘호은종택’으로 향하는 길. 차갑고 매운바람을 잠시잠깐 잊게 해주는 겨울 오후 햇살 한 점이 얼굴을 비췄다. 그건 시인 조지훈이 자신의 고향을 찾은 이에게 내민 손길이었을까?

◇지훈문학관 홈페이지: http://www.yyg.go.kr/jihun/

 

유년의 기억 속으로 여행자를 이끄는 밤하늘보호공원의 별들.
유년의 기억 속으로 여행자를 이끄는 밤하늘보호공원의 별들.


‘국제 밤하늘보호공원’서 알퐁스 도데와 윤동주를 떠올리다



기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니 30년도 훨씬 지난 시절의 기억이다.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1840~1897)의 소설 ‘별’에서 ‘프랑스 아가씨’ 스테파네트가 목동에게 묻는다. “저게 뭐야?”

그녀가 무인지경(無人之境)의 산 위에서 누추한 목동과 바라본 건 별똥별(流星)이었다. 소설은 그 이전의 순간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더없이 아름다운 문장이다.



‘낮은 살아있는 생명의 시간이다. 반면 밤엔 죽은 것들이 세계를 횡행한다. 익숙지 않은 이에게 밤은 두려움이다. 그래서일까?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조그만 소리와 별것 아닌 낯선 빛에도 몸을 바들바들 떨며 내게로 바싹 다가앉았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아래쪽 호수에서 슬프고 긴 소리가 파동을 일으키며 우리들 쪽으로 메아리쳤다. 그때 선명한 별똥별 하나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구슬픈 음악 아래 빛나는 별의 흔적이 아가씨와 내 앞을 꿈인 듯 지나가고 있었다’.



며칠 전이다.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진 늦은 밤. 영양군 ‘국제 밤하늘보호공원’을 찾았다.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총총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떠올린 유년의 기억이 한때 소년이었던 마흔아홉 살 중년 사내를 낭만적 감정으로 이끌었다.

그랬다. 1980년대에 청춘을 살아낸 이들에겐 누구에게나 마음 속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존재했다. 그랬기에 ‘별’은 ‘꿈’의 메타포인 동시에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의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였다.

영양은 국제밤하늘협회(The Internatio nal Dark Sky Association)가 공인한 ‘별의 고장’이다. 이 협회는 2015년 영양군을 지목해 “밤하늘 별빛이 가장 아름다운 지역 중 하나”로 인정했다. 동시에 영양의 마스코트라고 할 ‘반딧불이’까지 주목을 받았다.

영양군 수비면에 자리한 국제 밤하늘보호공원의 ‘별 생태 체험관’과 ‘반딧불이 천문대’는 별과 관련된 추억을 가진 어른은 물론, 천문학자와 생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에게도 인기 높은 공간이다.

‘생태전시실’에선 곤충의 삶부터 죽음까지를 관찰하며 생생한 관련 영상을 볼 수 있고, ‘별밤극장’은 별을 소재로 한 다양한 동영상을 상영한다. ‘은하수여행관’과 ‘빛 공해 체험실’에선 과도한 빛이 공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의외의 사실을 흥미로운 자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연중 열리는 천문캠프와 파브르 곤충캠프, 반딧불이 축제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는 게 영양 밤하늘보호공원측의 설명이다.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엄마나 아버지라면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아 ‘20세기 식민지에서 21세기 예술가의 삶을 살아냈던’ 요절 시인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 첫대목을 조용하게 읊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국제 밤하늘보호공원.
국제 밤하늘보호공원.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개인적인 부탁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제는 더 이상 ‘별’을 쳐다보지 않고, ‘꿈’에서도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40~50대들에게 “꼭 한 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선바위와 남이포.
선바위와 남이포.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명소 남이포·두들마을



영양군 입암면에 기이한 모양으로 우뚝 솟은 선바위. ‘입암’을 한자로 쓰면 立巖이니, 선바위는 입암의 한글 표현인 듯하다.

절벽과 계곡 사이에 모습을 드러낸 장엄하고 거대한 바위는 인근 남이포와 함께 영양이 자랑하는 천혜의 자연경관 중 하나다. 멀리서 바라보면 애틋한 이야기가 서렸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선바위를 둘러싼 설화도 흥미롭다. 직접 가서 확인해보시길.

 

전통문화의 향기 가득한 두들마을.
전통문화의 향기 가득한 두들마을.

석보면 두들마을은 전통문화의 향기를 호흡할 수 있는 곳이다. ‘두들’은 언덕을 칭하는 경상도 방언. 여기는 17세기 조선의 유학자 석계 이시영이 병자호란 후 벼슬을 버리고 찾아와 제자들을 양성한 고을로도 유명하다.

두들마을엔 석계가 글을 가르친 서당과 고택 등이 남아 있고, 최근엔 ‘음식디미방 체험관’ 등도 들어섰다. 고풍스런 북카페가 문을 열어 문학청년들도 적지 않게 찾는다. 소설가 이문열은 이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다.

 

영양군 수비면에 조성된 자작나무숲.
영양군 수비면에 조성된 자작나무숲.

25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치유와 휴양의 관광지’를 만들려했던 노력도 결실을 맺고 있다. 수비면 죽파리에 조성된 자작나무숲은 “차세대 영양 관광의 핵심 포인트”라는 게 영양군청의 부연이다.

축구장 50개를 합친 것만큼 광활한 땅에서 조화로운 협연을 펼치는 새하얀 자작나무들이 장관을 이룬다. 코끝이 시린 겨울에도 “우리 사랑은 변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젊은 연인들에게 권할만한 여행지다.

/홍성식·장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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