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어찌 이 나라 교육은 시간이 갈수록 달나라로 가고 있을까! 정말 우리 교육이 달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나라 교육은 설령 우주과학 기술이 발달해 우리가 달나라에 간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곳에서 의미도 없는 줄기세우기 식 시험을 볼 것이 확실하기에 달나라 교육이라는 말도 참 조심스럽다.

요즘 교육계 돌아가는 꼴을 보면 휘황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휘황(輝煌)하다’의 뜻을 사전에서는 “행동이 온당하지 못하고 못된 꾀가 많아서 야단스럽기만 하고 믿을 수 없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필자는 휘황(찬란)하다는 단어를 아는 게 너무도 다행스럽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라 교육이 돌아가는 꼴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묻고 싶다. 이 나라에는 교사가 있는지? 물론 필자의 이 말에 분노해 하며 나는 교사다고 말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는 교사는 그런 학교 직장인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참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스승을 말한다.

한 때 우리 교육에는 스승이 많이 계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제자를 살리시는 스승의 노력 덕분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가 그나마 지금의 모습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한 때 이념 운동을 한 이데올로기 집단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스승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스승들을 우리는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단에는 스승이라는 단어가 사어(死語)가 된지 오래다. 몇몇 단체에서 스승 상을 주고는 있는지만, 과연? 필자가 기억하는 스승은 필자에겐 달과 같은 분이셨다. 스승께서는 어두운 밤길 당신을 태우셔서 기꺼이 필자의 길을 밝혀주셨다. 이 나라의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길이 되어 주시기도 하셨지만,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셨다. 한 때이지만 그나마 이 나라 교육이 정부 하명과 같은 심한 외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키울 인재를 양성해서 사회로 배출시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스승들께서 몸으로, 정신으로 그 외풍을 막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거의가 YES를 외치는 교사들뿐이다. 그저 교육부 하명이 떨어지면 그것을 따르기 급급하다. 그러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다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의를 말 할 수 있을까? 설사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우리의 말을 얼마나 믿을까?

이 나라 교사들에게 묻는다. 다음과 같은 교육부의 하명이 우리 교육에서 정말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부모나 사교육의 영향력이 학생부 생성 단계에서부터 개입되어 학종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이에,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교사가 학생의 학교생활을 직접 관찰·평가·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함으로써 학종의 공정성을 높이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합니다.”

12월, 달나라로 가는 교육을 막지 못하는 마음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