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재기(守吾齋記)의 교훈
수오재기(守吾齋記)의 교훈
  • 등록일 2019.12.09 20:12
  • 게재일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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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조선의 중종 시대는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책과 사회풍속을 바로잡으려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조광조는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사림을 천거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며 사림 28명을 선발했다. 또한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정국공신(靖國功臣)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서둘러 단행하다가 사흘 후 반발한 훈구세력에 의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이 개혁정책은 무산되고 한 달 만에 사사됐다. 후일 율곡 이이가 경연일기(經筵日記)에서 조광조를 평가한 내용은 오늘날 위정자들이나 관료들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옛사람들은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서야 도(道)를 행하려 했던 것이다. (중략) 조문정(趙文正·조광조)은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를 가지고서 학문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갑작스레 요로(要路)에 올라, 위로는 임금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아래로는 권력세가의 비방을 막지도 못하여, 몸은 죽고 나라는 어지럽게 했으니 도리어 뒷사람들이 이것을 징계삼아 감히 일을 해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학문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는 것은 아직 국가를 경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간절한 표현이다. 조광조가 학문이 이루어진 후에 관직에 나갔다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탄식을 글로 적은 것이다. 겉으로 보아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 있더라도 준비된 사람, 곧 학문과 인격을 이룬 사람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학문이 논리적으로 완결됐다는 기준은 모호하지만, 지금처럼 학계출신들이 정부나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벼슬과 학문의 관계에 대해 주자는 ‘이치는 같으나 하는 일은 다르다. 하지만 학문을 하고서 벼슬하면 그 배운 것을 실험함이 더욱 넓어진다.’라고 했다. 대체로 사람들은 벼슬길에 들어서게 되면 여러 요인으로 본성을 잃게 되어 일생을 망치게 된다.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자신을 지킨다는 ‘수오재기(守吾齋記)’를 실었다.

다산의 강진 유배 시기는 관료로서는 암흑기였지만, 학자로서는 최고의 수확기였다. 자신을 잘못 간직했다가 잃어버린 본성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관찰하여 적은 이 수오재기는 본인의 정체성을 깨우치며 경계한 글이다.

‘어렸을 때는 과거에 급제해 명성을 얻는 일이 좋아 보여 공부에만 매달려 10년을 보냈다. 마침내 뜻을 이루고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서는 화려한 관복을 입고 미친 듯 대낮에도 큰 도로를 활보하고 다녔다. (중략) 세상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바로 나다. (중략) 맹자는 가장 큰 지킴이란 몸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이 진실이다. 내가 스스로 말한 것을 글로 써서 수오재에 관한 기(記)로 삼는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저무는 해는 항상 아쉽고 오는 해는 늘 새롭다. 위정자들을 비롯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본심을 잃고 가식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수오(守吾)의 시간을 살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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