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눈맛·입맛 사로잡는 볼락 “감성돔이랑도 안 바꿔”
손맛·눈맛·입맛 사로잡는 볼락 “감성돔이랑도 안 바꿔”
  • 등록일 2019.12.01 19:56
  • 게재일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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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손맛, 겨울 동해안 낚시 기행 1 - 포항 방파제 볼락 루어낚시 (상)

볼락 루어낚시 채비. 가볍고 유연한 것이 특징이다.
볼락 루어낚시 채비. 가볍고 유연한 것이 특징이다.

겨울은 동해안 낚시의 최적기다. 낚시는 푸른 바다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생명력과 만나는 행위. 주목받는 젊은 작가이자 프로급 낚시꾼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병철 시인이 동해안 곳곳을 누비며 낚시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연재는 12월 한 달간 진행될 예정이다.
 


수심 깊은 경북 동해안 볼락 낚시의 메카
‘후두둑’ 입질에 짜릿한 손맛 느낄 수 있어
잡히는 족족 산지에서 소비되는 귀한 몸
회·구이·매운탕… 어떤 요리로도 ‘환상적’

피딩타임에 나온 갈볼락.
피딩타임에 나온 갈볼락.

다시 겨울이 왔다. 계절에도 표정이 있다면, 겨울은 쓸쓸하고 삭막한 무표정의 얼굴이다. 봄의 생기와 여름의 정열, 가을의 너그러움을 모두 떠나보내고, 이제 어둡고 차가운 겨울을 오래토록 마주해야 한다. 잎을 버린 나무들은 빈 우듬지에 허공을 매달고, 강과 호수는 꽁꽁 얼어붙어 겨울 햇살이 아무리 쓰다듬어도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짐승도, 사람도 움츠러든다. 꽃이 사라진 거리의 빈곳을 크리스마스 전구 불빛들이 채우고 있지만, 찬바람이 파고드는 가슴까지 따뜻하게 하지는 못한다.


낚시꾼들에게도 겨울은 궁핍한 계절이다. 나는 섬진강변에 산수유, 매화, 벚꽃이 차례로 피는 봄에 쏘가리 낚시를 시작한다. 봄철 동안 쏘가리랑 잘 놀다가 쏘가리 금어기가 되면 바다로 걸음을 돌린다. 태안, 보령, 홍성, 서천, 군산, 부안 등 서해안에 황금어장이 열리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갯바위에서 우럭, 광어, 쥐노래미 등을 수확하고, 레저보트로 연안 홈통과 곶부리를 치고 빠지며 여름 농어의 손맛을 만끽한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낚시로 반찬거리를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백조기 낚시를 한번 다녀오면 한 일주일은 집에 조기 굽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주꾸미와 갑오징어는 또 얼마나 별미인가? 한번 낚시에 보름쯤은 넉넉히 먹을 만큼 잡곤 한다. 그런데 호시절은 다 끝났다. 서해안 낚시는 12월이면 사실상 종료된다. 차가운 북서계절풍과 한류의 영향으로 바다가 얼음장처럼 냉랭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서해안 낚시가 종료되는 순간 동해안 낚시가 개막되기 때문이다. 겨울 동해는 태백산맥이 찬 공기를 막아주는 데다 난류가 흐르고 또 수심도 깊어 따뜻하다. 12월이 되면 황금어장은 서해에서 동해로 옮겨 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섭리인가? 낚시꾼은 축복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어서 울진으로, 영덕으로, 포항으로, 경주로 달려가자. 볼락, 부시리, 방어, 농어, 감성돔, 성대, 우럭, 노래미, 호래기, 참돔, 벵에돔 등 온갖 물고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 동해안 낚시 기행’의 첫 번째 주인공은 볼락이다. 많고 많은 물고기 중에서 왜 하필 조그마한 볼락을 첫손에 꼽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고 앙증맞은 볼락이 감성돔과 농어 같이 크고 늠름한 생선들을 제치고 기행문의 첫 손님으로 초대된 까닭은, 귀하기 때문이다. 볼락은 주로 동해와 남해에서만 만날 수 있다. 동해안이 볼락 낚시터라고는 하지만, 삼척 위로 올라가면 개체수가 급감해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다. 수심이 깊고, 난류가 흐르며, 수중 암초가 잘 발달된 경북 동해안이야말로 볼락 낚시의 메카인 셈이다. 특히 겨울은 볼락 낚시가 호황을 이루는 계절이다. 1월 전후로 산란을 위해 연안의 해조류와 몰밭으로 몰려드는데, 방파제 테트라포드와 석축, 갯바위, 내항 어디서든 탈탈거리는 볼락 특유의 손맛을 볼 수가 있다.

낚시에는 흔히 세 가지 맛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손맛이고, 둘째는 눈맛, 그리고 셋째가 입맛이다. 볼락은 이 세 가지 맛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어종이다. 찌낚시와 선상 카드채비 낚시도 많이 하지만, 볼락은 최고의 루어낚시 대상어다. 7피트 전후 울트라라이트 액션의 낭창한 낚싯대에 1천∼2천번 소형 릴, 그리고 0.3∼0.6호의 가느다란 합사 낚싯줄을 사용한다. 1∼3g 정도로 가벼운 지그헤드에다가 1.5∼2인치 웜을 끼운 후 연안의 해조류 지대나 수중 암초 등 장애물 지형에 던져 느리게 릴링을 하면 ‘후두둑…’하는 입질과 함께 돌 틈으로 처박으려는 달음질에 짜릿한 손맛을 만끽할 수 있다. 물 밖으로 꺼내 올린 볼락은 참 귀엽고도 아름다운 자태를 지녀 심미안을 만족케 한다. 꼿꼿하게 펼쳐 세운 등지느러미는 마치 왕관 같고, 크고 동그란 눈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방파제 테트라포드에서 볼락 루어 채비를 던지는 이병철 시인.
방파제 테트라포드에서 볼락 루어 채비를 던지는 이병철 시인.

그런데 이 손맛과 눈맛을 다 합쳐도 입맛에는 견줄 바가 못 된다. 나는 우리 바다에서 나는 생선 중 볼락이 가장 맛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회, 구이, 매운탕, 튀김…. 어떻게 요리를 해도 다 환상적이다. 얼마나 맛있으면 경북 동해안 지역 사람들은 ‘바다의 황태자’인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잡히는 족족 산지에서 다 소비가 되어 서울에선 맛보기도 어렵다. 가끔 구이나 매운탕을 하는 식당들이 있지만, 볼락회를 내는 곳은 보지 못했다. 싱싱하게 펄떡이는 볼락을 회로 썰어먹는 기쁨은 오직 동해안에서, 낚시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장황한 ‘볼락 예찬’을 먼저 하지 않고서는 글을 써내려갈 수 없다. 사실 이 말들로도 부족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볼락 낚시가 너무나도 하고 싶어져서 견딜 수 없다. 얼른 원고를 갈무리하고 낚싯대를 챙겨 포항으로 달려가야겠다. 엊그제 다녀왔지만 또 가고 싶다. 가서 볼락을 만나고 싶다. 낚시꾼은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물고기가 연인인 마냥 보고 또 보고, 보면서도 계속 보고 싶어 한다.

지난 주말, 포항 남구 구룡포의 한 방파제를 찾았다. 이번 겨울 들어 처음 나선 볼락 낚시라 가슴이 몹시 설렜다. 낮에 도착해 낚시 준비를 하고, 방파제 주변 연안을 살펴보니 볼락의 은신처이자 산란장이 되는 몰밭이 꽤 형성돼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몰밭 주변으로 야행성인 볼락들이 모여들어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볼락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아직 빛이 환하지만 집어등부터 켜두었다. 집어등 불빛을 보고 멸치나 꼴뚜기 등 작은 먹잇고기들이 몰려들면 그걸 잡아먹기 위해 볼락들도 모이게 된다. 그런데 캄캄한 밤에 갑자기 불빛을 밝히면 오히려 볼락의 경계심만 높아지므로, 미리 집어등을 켜두는 게 좋다. 밤낚시가 가장 효과적이지만, 해질녘과 동 틀 무렵 볼락들이 먹이활동을 부지런히 하는 이른바 ‘피딩타임’에만 집중해서 해도 스무 마리쯤은 너끈히 잡아낼 수 있다.

이맘때 포항의 겨울은 포근하고 부드럽다. 분홍빛 석양이 지는 저녁 수평선을 바라보며 채비를 던지면, 한 번은 볼락이 물고 올라오고, 또 한 번은 낭만이 걸려 올라온다. 동해의 맑고 푸른 물살이 일으키는 해풍은 상쾌한 향기를 지녀서, 숨을 쉬면 들숨에 피가 맑아지고, 날숨에 고민과 걱정이 빠져나간다. 낚시는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수렵 및 채집 행위가 아니라 신체와 정신을 모두 건강하게 만드는 스포츠이자 명상, 치유 행위인 것이다.

채비를 던질 때마다 톡, 하고 입질을 하는 녀석들은 다 1년에서 2년까지밖에 아직 자라지 않은 ‘젖뽈’(작은 볼락을 칭하는 낚시꾼 은어)들이다. 열쇠고리만 한 어린 볼락들을 잡고 놔주고, 잡고 놔주고 하는 사이 드디어 ‘피딩타임’이 됐다. 물 속 암초와 테트라포드가 시작되는 물턱 자리에서 ‘후두둑’하는 시원한 입질이 연달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달음질치면서 내 손에 짜릿한 진동을 안겨주는 볼락들은 20cm 전후의 완전한 성체, 포획 금지 체장인 15cm를 훌쩍 넘기는 놈들로만 골라 넣었는데도 살림통이 금방 찼다. 어느 정도 마릿수는 채웠으니 이제는 큰 놈을 노려야 한다. 30cm가 넘는, 민물 붕어로 치자면 ‘월척’에 해당하는 ‘왕사미’(대물 볼락을 뜻하는 은어)를 잡기 위해 나는 채비를 바꾸고, 낚시 장소마저 옮기기로 했다. 새 포인트로 가는 길, ‘왕사미’를 향한 기대와 ‘꽝’에 대한 걱정이 번갈아가며 내 가슴을 두드려댔다. /이병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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