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글쓰기를 ‘위한’ 교육? 글쓰기를 ‘통한’ 교육?”

국립한밭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사고와표현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박정하 교수가 ‘전환기의 사고와 표현교육’이라는 주제를 풀어가며 던진 질문이다.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회 선생님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글쓰기 교육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앞으로의 사고와 표현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도록 화두를 준 셈이다. 글을 쓰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글쓰기 교육은 글을 잘 쓰기 위한 기술과 요령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한 학기 수업만으로 향상될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고 글을 쓰는 궁극의 의미가 있다. 미국 대학의 글쓰기 교육은 ‘비판적 문화연구’가 주류라고 한다. 학생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지배 담론에 대해 의심하고 비판하며 사유하는 힘을 키워가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어떤 주제나 쟁점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자신이 생각한 메시지를 소통하는 방법으로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의 작품들이 정치적 행동이었음을 말한다.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 불의를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글은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었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된다”는 오웰의 말처럼 글쓰기는 자연스레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성찰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글쓰기 교육은 더욱 중요한 사명을 갖는다. 남들보다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치고받는 경쟁 논리가 개인의 불안을 낳고 공동체의 가치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또한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깊은 숙고를 전제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변혁 기제다.

이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곧바로 이어지는 논술전형 시험을 통해 누군가는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대입논술이지만 그나마 논술시험 덕분에 학생들이 글쓰기 경험을 하며 뭔가 배우고 있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와 글쓰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경계 너머 타인도 돌아보며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의에 맞서고 공동체의 가치를 지지하는 시민의식은 글쓰기 교육을 통해 형성되지 않을까?라는 꿈을 꾸어본다. 여러 대학에서 글쓰기교육을 하고 있는 선후배 동료 교수들과 연대와 우정을 느끼며 글쓰기 교육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보았던 학술대회였다. 대전 유성구의 국화축제와 동학사 가을 풍경의 여운까지 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