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위무와 그들을 기억할 의병기념관 건립돼야”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위무와 그들을 기억할 의병기념관 건립돼야”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10.15 20:22
  • 게재일 2019.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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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애린문화상 수상 이상준 향토사학자

이상준 향토사학자
이상준 향토사학자

20여 년간 조선시대 유배문화를 연구하며 이를 지역 정체성으로 확립해 지역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 온 이가 있다. 포항지역 향토사학자 이상준(59)씨다.

그는 무려 20여 년간을 음지에 묻혀있던 포항 장기면으로 유배온 조선시대 학자들을 양지로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149회에 걸쳐 장기로 유배 온 220여 명의 조선시대 사람들이 세상과 마주했다.

포항의 장기 지역은 조선 태조 1년 설장수를 시작으로 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 등 211명이나 되는 선비가 이곳을 거쳐 갈 정도로 전남 강진과 더불어 조선시대 중요한 유배지였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고증을 거쳐 재현하는데 앞장서왔다. 그의 노력 끝에 지난 3월에는 장기면 서촌리에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들어섰으며 최근에 ‘제1회 장기유배문화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돼 큰 관심을 모았다.

그가 포항지역에서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에 기여한 인사를 격려하는 올해 ‘애린문화상’수상자로 선정돼 시선을 끌고 있다.

지난 15일 ‘제9회 애린문화상 시상식’에서 그를 만났다.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내며 포항지역 향토문화와 역사를 올곧이 지켜왔다. 애린문화상을 수상한 소감은.

△오래전부터 포항문화원에서 지역의 향토사에 대해 연구를 하고, 발표도 해 왔다. 그래서 재생 이명석이란 분이 포항문화원과 포항의 문화발전에 대해 어떻게 중대한 역할을 하셨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가 이 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덜컥 겁부터 났다. 저가 과연 이런 큰상을 받아야할 자격이 되는지, 너무 부끄러웠다.이번에 저에게 내려진 이 상이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봉사를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남은 시간들을 이 일에 더 매진하겠다.



-장기 지역 유배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 연구해 오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조선조 포항 장기면에는 약 220여 명의 유배객들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왔다가 간 곳이다. 지금도 장기에 가면 유배문화의 흔적들이 있다. 영의정을 지낸 퇴우당 김수흥처럼 이곳에서 객사한 유배인도 있고, 이시애의 난에 연루된 사람들의 가족들처럼 끝까지 복권되지 않아 지역민으로 살다가 한과 애환을 품은 채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들을 시대별로 엮으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가 있다. 무슨 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그들은 유배지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지냈으며, 그들이 남긴 사상과 철학은 장기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 녹아있는지를 헤쳐 보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2019년 6월12일부터 매주 1회씩 경북매일신문 기획 특집으로 ‘장기에 가면 조선왕조 500년이 있다’를 연재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이제까지 연재한 글들을 정리하여 단행 권 책자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장기를 찾아 한번쯤은 유배인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고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교훈을 되새겨야 국가가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민들이 향토역사를 바르게 알고 소중함을 알게 하기 위한 바람이 있다면.

△저가 이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포항의 3·1운동사’와 ‘포항의 독립운동사’를 집필해서 일제강점기 포항사람들의 독립운동을 정리했다는 점이었다고 생각한다.‘포항의 독립운동사’를 쓰면서 마음이 아팠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산남의진 2대 의병대장 정환직의 체포현장에 방치돼 있는 무명용사 3인 합장묘가 대표적인 사례다. 죽장면에서 있었던 실화다. 의병활동을 한 사람의 어머니는 일제의 고문에 못 이겨 죽고, 집이 불태워졌으며 젊은 처는 실성해 돌아다니다 불태워진 집 대들보에 목을 매 자결했다. 목 없는 의병 무덤에 대한 사연, 만주로 피신해 갖은 고생을 하다가 광복을 맞아 돌아왔지만 냉랭한 조국의 현실에 대한 배신감을 털어놓은 후손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었다. 현장에서 순국했거나 옥중에서 사형을 당한 독립운동가의 재판기록이나 사형집행기록은 찾았지만 후손을 찾을 수 없어 막막할 때는 독립된 이 나라에서 편안히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이 죄송스럽기만 했다. 하루 빨리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고, 독립운동 한 의사들의 후손들에 대한 위무가 이뤄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시민 여러분들도 위무 사업에 동참해 포항에 그럴듯한 의병기념관을 하나 건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이상준 향토사학자 프로필

△1960년 포항 출생

△포항문화원 이사 및 감사

△2004년 제7회 공무원 문예대전 우수상, 2003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저서 ‘장기고을 장기사람 이야기’‘포항에 뿌리박힌 포은의 자취’‘영일유배문학 산책’‘포항의 3·1운동사’‘포항의 독립운동사’(공저 중 대표집필)‘해와 달의 빛으로 빚어진 땅’(공저 중 대표집필)등 10여 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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