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최영애씨 ‘붉은 녹’ 대상
제3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최영애씨 ‘붉은 녹’ 대상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10.14 18:26
  • 게재일 2019.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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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3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철에 관한 추억이 담긴
500여 편 국내외서응모
진해자씨 ‘침녀’ 금상 등
모두 10점 입상 영예 안아

‘제3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이 선정됐다.

영예의 대상에는 “철을 위협하는 붉은 재앙이 녹”이라는 전제 아래 ‘붉은 녹’이 함유하고 있는 예술과 인생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그려낸 최영애(70·부산시·사진)씨의 ‘붉은 녹’이 선정됐다.

금상에는 진해자(고양)씨의 ‘침녀’, 은상 김임순(경남 거제시)씨의 ‘연과 선을 잇다’, 동상 곽명옥(대구시)씨의 ‘팔을 끊어 버렸어요’·장수영(경산시)씨의 ‘지음’이 각각 뽑혔다.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은 현대문명의 상징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온 철강산업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재도약을 기원하기 위해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스틸에세이 운영위원회 주관으로 올해 3회째 개최됐다.

올해 공모전은 지난 8월1일부터 10월8일까지 국내외 거주자(기성문인 포함)를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한 결과 일본을 비롯 서울, 경기, 울산 등 국내외에서 철에 관한 추억이 담긴 500여 편이 응모해 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5점 등 모두 10점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공모전 심사를 맡은 허상문(영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김은주 수필가는 “‘제3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사람살이의 힘겨움과 그 힘겨움의 극복과정을 탁월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놓치기 쉬운 생활의 작은 편린들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해내고 있었다”며 읽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리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대상 수상작
‘붉은 녹’

정원에 벌거벗은 사내가 서 있다. 오가는 많은 사람과 무언의 소통을 하고 있다. 무심한 듯 보이기도 하고 상실감에 빠져있거나 무력감에 압도된 모습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에 그을리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벌건 녹을 재촉했을 테고, 겨울에는 맨몸으로 모진 칼바람과 흰 눈을 견디며 거친 세상과 맞섰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견뎌내면 묵묵히 서 있는 무쇤들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거칠어진 전신이 붉다 못해 검붉어졌다.

옷을 벗은 원시인 그대로다. 미술관 정원 한가운데 2미터 큰 키의 남자 조각상이 서 있다. 세계적인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남성나체조각상이다. 먼 곳으로 향한 눈길과 아래로 뻗어있는 손끝은 유난히 힘을 주고 있다. 언제라도 출발할 자세다. 현실을 살아가며 지쳐버린 누군가의 가장이나 아버지가 다시 일어서라는 말을 담은 듯하다. 명상과 수행하는 자세로 자연에 몸을 맡긴 구도자처럼, 때로는 외로우면서 의연한 인간의 모습으로 미술관 정원 앞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도시의 관찰자로 서있다.

옷을 벗은 맨몸이 온통 불덩이처럼 탄다. 차마 그의 몸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다. 열정이 그의 몸에서 이글거린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려는 것뿐이건만 가까이 서 있는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원에 설치된 조각들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중에 하필이면 벌거벗고 실물처럼 서 있는 남자 조각 작품을 요리조리 훑어보는 여자를 어떻게 보겠는가. 미술관 앞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해지면서 조금은 민망스럽다. 내가 곰리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예술세계를 알아보려는데 목적이 있다. 시선에서 당당해지기로 마음을 정한다.

곰리는 웅크리거나 선 자신의 몸으로 독특하게 작품을 만들었다. 벌거벗은 몸에 석고를 바르고 굳을 때까지 틀 속에서 근육의 경직과 폐쇄 공포증 등 육체적 고통을 견뎌냈다. 육신을 비워낸 틀에 쇳물을 부어 주물을 뜬다. 굳어진 주물을 깎아 입체 형상을 만든다. 작가는 몸과 마음의 수련을 거친 후 예술작품을 완성시켰다. 영혼을 통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성찰까지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몸이 예술의 소재이자 완성이 되었다. 동양철학과 불교의 근본 교리인 인연의 이치를 작품에 그대로 담아냈다고 한다. 자신이 머물렀던 텅 빈 바디 케이스는 인체 조각이 되어 대자연과 도심 속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채워주고 있다.

현대에 쇠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또는 오래전부터 신뢰와 강인함의 상징으로 쓰였다. 강철 같은 의지, 강철 같은 심장이라 표현하고 건장한 남자의 근육진 팔다리를 무쇠팔 무쇠다리라 말을 한다. 첫 쇳물이 생산된 이후 반세기 동안 제철 산업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포스코 설립자 박태준 회장도 ‘철강 왕’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하지만 금속도 산화되고 녹이 슬면 본래의 성질을 잃게 된다. 강도가 약해져 쉽게 부스러져 속절없이 무너진다. 철을 위협하는 붉은 재앙이 녹이다. 녹슨 것은 의미도 좋지 않은 물체로서 이래저래 난감하다. 결국 현대를 살아내는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삶이기에 더 쓸쓸해진다.

붉은 녹이 슨 조각상을 보니 생각이 난다. 몇 년 전에 내후강판을 사용하여 새로운 건축공법을 시도한 여자 건축사를 알게 되었다. 건물 외벽에 부착한 강판에 공기나 빗물이 접촉하면 산화작용으로 표면에 녹이 슬게 된다. 일정하게 슨 녹은 건축 강판의 보호막이 되어 철의 부식을 방지하면서 더 강하고 단단하게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녀가 내후강판으로 건축했다는 건물을 찾아가 보았다. 건물 외벽에 슬어있는 붉은 녹은 독특한 색감을 드러내었다. 어느 예술가도 어떤 페인트 색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색채였다. 건축사가 내후강판에 붉은 녹을 피워 완성한 건물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건물은 거대하고 멋진 그녀만의 조형 예술작품으로 보였다.

그날 새롭게 다가오는 녹의 의미에 감동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겨왔던 내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유독 녹슨 곰리의 인체 조각상을 낯설어하지 않고 유심히 살펴보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후강판에 슨 녹은 산화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철을 보호하고 더 단단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나의 삶과 같이했던 싱거미싱이 있다. 필요로 했던 시절에는 관심 어린 손길로 늘 반질하게 닦아 광택이 났다. 기름칠만 해도 부드럽게 달달 돌아가면 주인이 원하는 옷을 만들었다. 세월이 지나 미싱이 멈추는 시기가 왔다. 긴 시간이 지나도록 사용하지 않으니 윤기를 잃은 채 붉은 녹이 슬어 골동품이 되었다. 인생도 사물도 세월 앞에 끼어드는 녹을 어쩌지 못한다. 그런 미싱이 지금은 화실에서 아들의 그림 정물 소재가 되어 또 다른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디자인과 가위질로 미싱을 돌려 멋진 옷을 만들었던 나 역시 일선에서 물러나니 한갓지다 못해 무기력해졌다. 쇠에 슨 녹과 인생의 녹이 뭐가 다르랴 싶다.

사람에게 녹이란 삭아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음새 한 곳에도 녹이 슬면 헐거워지고 잘 돌지 않게 된다. 그렇듯이 일상에 낀 녹은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다. 가슴에 녹이 슬고, 영혼에 녹이 슬면 늙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부정적인 녹일지라도 내후강판에 슨 녹처럼 고통을 견뎌내고 살아내면 생의 의미가 더욱 단단해지리라 본다.

미술관 정원에 녹슨 사내를 바라보고 섰다. 작가의 마음이 머물고 있는 장소에 그의 성찰을 담은 조각이 대신 서 있다. 시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작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냈을 때 예술작품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글거렸던 수많은 기억들이 온몸에 붉은 녹으로 슬어 있다. 묵묵히 서 있는 저 사내도 언젠가 한번 큰소리로 울고 싶었을 게다. 잠깐의 여유로운 비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는 존재일지라도 한번은 다시 인내의 고통을 이겨내고 핏빛 같은 녹물을 머금으며 일어선다. 열정의 녹이 조각 작품 완성이었다.

 

대상 수상 소감

먼저 스틸 공모전을 주최하신 포항시와 주관하신 경북매일신문, 제 글을 대상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도 큰 감사인사 올립니다. 벌써 도로가 은행나무는 조금씩 노랗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저에게는 이 계절이 되면 큰 상실감이 있어 많이 아픕니다. 펑펑 소리 내어 울기도 합니다. 올가을은 슬프지도 울지도 말라고 저를 다독여주는 위로의 상이라 여겨집니다. 글쓰기란 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또 포기하지 못하고 쓰게 되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이런 저를 오래 동안 지도해주신 교수님과 부경문우님들, 늘 힘이 되어 주시는 선생님들께도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버팀목인 아들딸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지금은 제 글의 영감이 되어주시는 김윤택 화백님 먼 곳에서 제일 기뻐하시겠지요. 이 영광을 바치고 싶습니다.

△1950년 거제 출생 △창신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3년 ‘수필과 비평’신인상 수상 △문정 문학상(2019) 수상 △수필집 ‘11월의 노랑나비’(2018)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협회 회원, 부경수필협회 회원

 

심사평

수필가가 쓴 수필이 신변잡기의 차원을 뛰어넘고자 한다면, 이 세상과 삶의 모든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루어 새로운 의미를 인식하고 전달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과 인생을 객관적으로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냉철한 인식의 경지를 뜻한다. 수필은 개인이 겪은 사실의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생산되는 창의적 문학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3회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예심을 거친 작품들 중에서 중점적으로 거론한 작품은 <붉은 녹>(최영애) <침녀>(진해자) <연과 선을 잇다>(김임순) <팔을 끊어버렸어요>(곽명옥) <지음>(장수영)이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이 작품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간직하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간략하게나마 작품들의 장단점에 대한 지적을 하면 다음과 같다.

<침녀>(진해자)는 바늘과 퀼트 공예를 통한 삶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으나 작품의 에피소드 자체가 다소간에 진부하다는 사실이 단점으로 논의되었다.

<연과 선을 잇다>(김임순)는 바늘과 바느질을 통한 여인들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으나 다소 서술적이고 설명적이라는 평이 있었다.

<팔을 끊어버렸어요>(곽명옥)는 가위를 통하여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으나 서사의 주제의식이 미흡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지음>(장수영)은 ‘소리’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지음(知音)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 정신이 돋보였으나 전반적으로 관념적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대상으로 선정된 <붉은 녹>(최영애)은 “철을 위협하는 붉은 재앙이 녹”이라는 전제 아래 ‘붉은 녹’이 함유하고 있는 예술과 인생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품 전체를 관류하는 작가의식과 세계인식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이를 표현해 내는 글쓰기의 솜씨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대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심사위원
허상문(영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김은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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