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추석이 지난 산천초목에 가을빛이 깊어간다. 지난 여름의 열기와 격정을 가라앉히고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나무와 풀들에게도 가을은 사색의 계절인가 보다. 높푸른 하늘 아래 갈대와 억새가 패고 드넓은 들판 가득 벼들이 영글어간다. 한결 시원해진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도 따라서 청명해진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사고능력은 있는 것 같으니,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인간의 정의가 될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성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문명화된 사회란 단순한 본능만으로는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 대한 인식과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갖추어져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지나친 이기주의나 독선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마련이고 그만큼 인격적 결함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조국이란 사람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날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검찰과 그것에 제동을 걸려는 정권이 존망을 건 힘겨루기를 하고, 그 양자를 비호하고 지원하는 세력들도 편을 갈라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조국사태’로 일컬어지는 이 난국은 한 고위층 가족의 일탈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도덕적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학벌이든 지위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곡학아세에다 지식을 악용한 편법과 탈법도 서슴지 않는 일탈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 준다. 모쪼록 이번 사태가 사필귀정으로 끝이 나서 우리나라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부가 다 일류대학을 나와서 유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될 정도면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벌을 갖춘 집안이다. 그런 지위에까지 올랐다면 학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의 가장도 정의롭고 덕망 있는 지성이요 사표로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일 아닌가. 교육제도에 모순이 있으면 당연히 내 아이에게는 그 길을 걷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더 이상 재물이나 권세 따위 기웃거리지 말고 학문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을 한다면 오죽이나 좋은가.

그들 가족이 야기한 사태로 학계와 사회에 끼친 해악이 얼마인데, 장관까지 되어서도 교수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도 그악스럽다. 도대체 학생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며 사회에 나가서는 어떤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인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토록 자기성찰도 반성도 없는 후안무치일 수가 있는가.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남은 것이라고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 하나 뿐이라면 인생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 놓아버리고, 국민들 앞에 참회하기 바란다. 그래야 사람이고 그것이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