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에 접어든 길목
미술장르 경계 사라진 변화 시기
獨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 ‘제로’
세계대전 후 새 시작 미학적 태도
하인츠 마크·오토 피네·귄터 위커
‘제로’ 주축 미술가의 주요 작품들
내달 3일부터 포항시립미술관서
아시아 미술관 첫 관람객 맞아

1. 불로 그림을 그리는 오토 피네. copyright: Museum Kunstpalast, Dǖsseldorf
1. 불로 그림을 그리는 오토 피네. copyright: Museum Kunstpalast, Dǖsseldorf

1957년 9월 26일 목요일 저녁, 서독의 도시 뒤셀도르프(Dǖsseldorf)의 어느 공장건물에서 미술전시회가 열렸다. 작품 전시를 위한 격조 있는 공간도 아니었고, 격조를 차릴 만큼 유명한 미술가들이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 2차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한 독일에서 미술을 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비상식적인 일이었는지 모른다. 예술이 언제 한 번 이라도 상식적인 적이 있었느냐마는, 정말이지 그 시절에 미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더더욱 아무런 존재감도 없던 20,30대 젊은 미술가들에게는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젊은 미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이어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조건이나 형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전시형태를 고안해 낸다. 아무 곳이나 전시장이 될 수 있었고, 원한다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전시회였다. 격식을 차린 개막식 따위는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서서히 음악 소리가 커졌고, 맥주를 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파티의 시작이 곧 전시회의 시작이었고, 파티가 끝이 나면 전시도 함께 막을 내렸다. 미술가들은 이 전시를 ‘저녁전시’(Abendausstellung)라 불렀고, 이곳에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술운동 ‘제로’(ZERO)가 태어났다.

 

2. 하인츠 마크의 ‘사하라 프로젝트’(1968년). copyright: Heinz Mack / ADAGP, Paris 2016
2. 하인츠 마크의 ‘사하라 프로젝트’(1968년). copyright: Heinz Mack / ADAGP, Paris 2016

‘제로’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이다. 주축이 되었던 것은 독일 출신의 미술가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위커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중심은 유럽에서 뉴욕으로 넘어갔다. 유럽에서 망명한 미술가들의 영향 아래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등 이른바 ‘추상표현주의’ 미술가들이 등장해 미국미술을 이끌어 갔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는 소비문화와 상업주의적인 미술경향을 반영하는 ‘팝아트’가 유행했다. 유럽에서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면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던 미술작품은 이제 대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

이 무렵 유럽 전역에 걸쳐 전통미술과 결별을 선언한 전위적인 미술가 그룹이나 미술운동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스페인에서는 ‘에키포 57’(Equipo 57)가, 파리에서는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이, 이탈리아에서는 ‘그루포 엔’(Gruppo N) 그리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는 ‘제로’가 태동했다. 당시 유럽의 미술가들에게는 극복해야만 했던 두 가지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전쟁으로 단절되고 왜곡된 전통미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하는 것과 ‘상업적으로 퇴색되어버린 미술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진취적인 미술가들의 다양한 미학적 시도들 중 연속성을 가지며 국제적으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 제로이다.

1958년 마크와 피네는 ‘제로’라는 제목의 미술 매거진을 출판했다. 숫자 ‘영’(0)을 뜻하는 제로에는 과거에 속박되지 않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했던 젊은 미술가들의 미학적 염원이 담겨 있다. 20세기 초 유럽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전쟁이 보여준 반인륜적 학살과 파괴는 모든 것을 일순간 앗아가 버렸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그로 인한 상처와 공포는 쉬 잊히지 않고 집단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현실, 그렇다고 전쟁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놓을 수 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실존적 빈사상태에서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무전제적으로 초기화(reset)하여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자 한 미학적 태도가 바로 제로라는 말에 담겨 있다.

 

3. 1965년 갤러리스트 알프레드 슈멜라의 집에 모인 제로 미술가들. 사진: Jon Naar. copyright Jon Naar / ZERO foundation, Dǖsseldorf.
3. 1965년 갤러리스트 알프레드 슈멜라의 집에 모인 제로 미술가들. 사진: Jon Naar. copyright Jon Naar / ZERO foundation, Dǖsseldorf.

미술가와 미술이론가들의 글이 수록된 제로 매거진은 1958년과 1961년 걸쳐 모두 세 차례 발간되었으며, 개별 호의 출판에 맞춰 국경을 뛰어넘는 미술가들로 구성된 전시회가 함께 진행되었다. 출판을 매개로 국제적인 미술가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전시와 행위예술,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등 당시로서는 너무나 진보적인 형식들이 과감하게 실험되었다. 1966년 제로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종결될 때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의 10여개 나라에서 온 40여명 이상의 미술가들이 제로의 활동에 동참했다. 특히 이브 클라인, 피에로 만초니, 루치오 폰타나, 쿠사마 야요이 등과 같이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던 미술가들은 제로가 태동하는데 결정적인 미학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제로에 참여한 미술가들에게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예술과 기술이 융합되고 빛이나 움직임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하인츠 마크는 알루미늄의 재료적 특징을 이용해 빛과 움직임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조각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문명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빛’(pure light)을 찾기 위해 1959년 ‘사하라 프로젝트’를 계획했던 3년 뒤 실행에 옮긴다. 우주인 복장을 갖추고 광활한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와 바람 빛을 이용한 실험적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오토 피네는 불로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불을 가해 이미지를 만들었다. 감상자가 보는 것은 불에 녹아 흘러내리거나 검게 그을린 물감의 흔적들 뿐이지만 사실 이러한 작품을 가능하게 한 근원에는 공기가 있다. 공기가 없다면 불은 존재할 수 없다. 피네에게 있어서 공기는 무언가를 실존하게끔 해주는 정신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술을 가능하게 끔 해주는 창조적인 정신과 다르지 않았다.

 

4.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그리고 귄터 위커.  /Martin-Gropius-Bau.
4.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그리고 귄터 위커. /Martin-Gropius-Bau.

귄터 위커는 ‘못’이라는 소재로 명상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국제적으로 크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망치로부터 힘이 가해지면 못은 무언가를 뚫어 버리는 파괴력을 지닌다. 철이라는 차가운 재료의 속성과 뾰족하고 날카로운 형태 때문에 못은 폭력과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커의 경우는 다르다. 위커에게 중요한 것은 못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못을 박는 반복된 행위이다. 그는 못을 박아 그림을 그린다. 못과 못 사이의 간격에 따라, 들어오는 빛의 방향에 따라, 감상자의 위치에 따라 새로운 형태들이 만들어 진다. 위커 역시 못이라는 물질적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비물질적 정신성이었다.

1950년대에서 60년대로 넘어가던 길목,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접어들던 변화의 시기에 제로는 미술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움직이는 작품이 탄생했고, 빛과 공기가 작품이 되었고, 미술가와 감상자의 간극이 사라지는 상황 그 자체가 미술작품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경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림이다’, ‘조각이다’ 하던 미술 장르간의 경계가 사라졌고, 국가 간의 경계도 사라졌다. 미술작품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원칙조차 사라졌다. 일시적인 행위가 미술이 되거나, 보존하거나 보관할 수도 없는 거대한 자연이 작품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현대미술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선구적인 미술운동이 ‘제로’이다. 제로 미술가들의 주요 작품들은 9월 3일부터 아시아 미술관으로는 처음으로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