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리 바다의 분홍빛 낙조는 노포의 애틋한 손맛을 닮았다
삼정리 바다의 분홍빛 낙조는 노포의 애틋한 손맛을 닮았다
  • 등록일 2019.07.28 19:54
  • 게재일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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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병철의 경북 바닷길 537km, 그 맛과 멋
⑦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한 포항 구룡포엔 아홉 가지 보물이

삼정리 부두의 분홍빛 석양.
삼정리 부두의 분홍빛 석양.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을 기점으로 섬의 북쪽을 산북, 남쪽을 산남이라 부른다. 나는 산북의 활기참과 산남의 호젓함을 모두 사랑한다. 제주도에 일주일쯤 가게 되면 사흘은 제주시에서, 나머지 사흘은 서귀포시에서 보낸다. 포항에 올 때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처럼 북쪽과 남쪽이 서로 다른 두 매력을 뽐내는 여행지가 바로 포항이다. 포항은 북구와 남구로 나뉜다. 북구에 죽도시장과 영일대해수욕장이 있다면 남구엔 구룡포와 호미곶이 있다. 어제는 북구에서 보냈으니 오늘은 남구로 가야겠다. 포항에 온 여행객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초록 잎사귀 부채질하는 오어사 둘레길 걷고

막내딸 별명 딴 ‘까꾸네’서 이열치열 모리국수
60년 된 분식집엔 달큼한 단팥죽 추억의 맛이

구룡포로 가는 길엔 언제나 설렌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라는 전설도 가슴 뛰게 하지만, 내게 구룡포는 아홉 가지의 보물이 있는 바다다. 과메기, 볼락, 대게, 문어, 모리국수, 찐빵, 삼정해수욕장, 근대문화역사거리, 해돋이가 그 아홉 가지 보물이다. 겨울에만 낚시하러 번질나게 다녔지 여름 구룡포는 처음이다. 아홉 가지 보물 중 비록 과메기와 대게는 제철이 아니라서 못 만나겠지만, 나머지 일곱 개의 귀중한 맛과 멋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운제산 동쪽 기슭에 있는 오어사(吾魚寺)에 먼저 들렀다. 북구의 보경사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보경사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원효대사와 고승 혜공의 ‘여시오어(汝屍吾魚)’, 즉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는 화두로 잘 알려졌다. 운제산 계곡에서 수행하던 원효와 혜공이 각자 물고기를 한 마리씩 삼킨 다음 대변을 누었다. 조금은 지저분한 이 일화는 삼국유사에 쓰여 있다. 누구의 것인지 법력 좋은 대변이 산 물고기가 되어 활기차게 여울을 헤엄쳐갔는데, 원효와 혜공이 서로 “내 물고기!” 외쳤다고 해서 ‘오어사’가 되었다 한다. 본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됐다.

운제산 오어지 둘레길의 원효교 출렁다리
운제산 오어지 둘레길의 원효교 출렁다리

초록 잎사귀들이 제법 세차게 부채질을 한다. 오어지 호수변을 따라 오어사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똥물고기를 낳은 원효와 혜공은 물이 되어 흘러갔다 처음 배운 물고기의 유영조차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오어사의 연못은 장엄하게 예뻤으니까”(이소연, ‘오어사’)라던 시구가 떠올랐다. 똥 같은 내 번민들도 물이 되어 멀리 멀리 흘러갔으면, 내 마음도 물고기처럼 속박을 벗고 자유롭게 헤엄쳤으면.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오어지 푸른 수면 위에 금빛 윤슬이 와글거리고 있었다.

대웅전과 범종루, 배롱나무가 수수하게 아름다운 오어사 경내를 돌아보고는 원효교 출렁다리를 건넜다. 거기서부터 오어지 둘레길이 제대로 펼쳐진다. 7㎞ 둘레의 호수를 한 바퀴 걸으려면 두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숨을 쉬면 뱃속에 뜨거운 벌떼가 붕붕거리는 계절, 가을에 걸으면 참 좋겠다. 단풍 바람이 오색 물고기 되어 내 마음 속 여기저기 서늘한 빛을 산란할 테니까.

구룡포에 도착하자마자 모리국수 식당부터 찾았다. 50년 넘게 장사를 해온 ‘까꾸네 모리국수’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맛집이다. 주인인 이옥순 씨가 50년 전 구룡포 수협 뒷골목에 판자때기를 얼기설기 덧대어 국숫집을 연 게 ‘까꾸네’의 시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까꿍, 까꿍” 귀여움을 받던 막내딸 별명이 ‘까꾸’여서 까꾸네가 됐다고 한다. 여러 번 가봤는데도 또 어김없이 길을 헤맨다. 미로 같은 골목 몇 개를 헷갈리는 동안 국수 생각은 더 간절해져 침이 잔뜩 고인다. 어렵사리 문을 열었다. 모리국수 한 냄비에 1만 3천원, 양은냄비가 팔팔 끓어오르면 얼큰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겨울에 먹으면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주지만 여름의 이열치열도 나쁘지 않다.


어부들이 어판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으로 ‘잡탕 국수’를 끓인 게 모리국수의 시작이라고 한다. ‘모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뭐가 들어갔는지 ‘모린다’고 해서 모리, 이것저것 ‘모디’ 들어갔다고 해서 모리, 생선 머리가 들어갔다고 해서 모리, 이것저것 ‘몰아’ 넣었다고 해서 모리, ‘빽빽하다’는 뜻의 일본어 발음으로 ‘많다’를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어원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맛있는 음식 앞에선 사유나 이성보다 감각과 본능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다.
 

까꾸네 모리국수
까꾸네 모리국수

매운 국물 잔뜩 머금은 칼국수를 크게 한 젓가락 집어 후루룩 빨아들임과 동시에 아귀 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고난도 기술이다. 칼국수와 아귀 살을 한꺼번에 우물거리는 동안 입 안엔 바다 향기가 가득 번지고, 이마와 목덜미는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풍족하지 않던 시절, 한 냄비의 모리국수를 나눠 먹는 어부들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을 것이다. 그 열기는 사시사철 반갑고, 국수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옛 시인이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백석, ‘국수’)라고 했을 때, 그렇다. 국수는 즐거운 손님처럼 우리 일상으로 온다. 나는 모리국수를 먹으며 백석의 시를 바꿔 외운다. “이 불그스레하고 부드럽고 칼칼하고 얼큰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입 안이 뜨겁고 울긋불긋할 때는 달큼한 디저트를 먹어야 진화가 된다. 까꾸네에서 나와 다시 골목 몇 개를 지나 구룡포 시장 뒷길로 가면 장사를 시작한 지 60년도 더 된 ‘철규분식’이 있다. 까꾸네와 마찬가지로 집안 어린아이 이름을 상호로 쓴 것인데, 그것도 60여 년 전 얘기다. ‘철규’는 이 집 주인 할머니 동생, 가게를 처음 열 땐 초등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칠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할아버지는 철규 어르신의 매형 되시겠다. 노부부는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리에서 단팥죽과 찐빵, 그리고 잔치국수를 팔아 왔다. 이제는 입소문도 나고 또 ‘노포(老鋪)’ 식도락이 유행하면서 주말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집이 됐다.

10분쯤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찐빵 여섯 개와 단팥죽 한 그릇을 시켰다. 단돈 5천원. ‘철규’ 어르신의 매형께서 정정한 걸음으로 쟁반을 날라 주셨다. 찐빵 한 입 베어 무는데 느닷없이 뭉클해져 혼났다. 팔순 노인의 손등에 구룡포 바다 물주름이 자글자글한 걸 본 탓이다. 노부부의 뒷모습에 석양이 지는 걸 훔쳐 본 탓이다. 이 집에서는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마음을 함께 먹는다. 1952년, 학교를 마치고 온 어린 막내 동생을 위해 국수 삶고 빵 찌고 팥죽 끓이던 그 애틋한 마음이 60년 넘도록 맛의 비법이 됐다. 이 집에서 단팥죽을 먹은 사람은 누구나 ‘철규’가 된다. 얼마나 더 많은 철규들이 이 집을 찾아오게 될까? 아니,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철규가 될 수 있을까? 서둘러 단팥죽을 들이켜고 일어섰다. 미닫이문을 여는데 낡은 도어레일에서 끼익 끽, 기차 멈추는 소리가 났다. 문을 나서자 구룡포는 다시 2019년의 여름이었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사진 명소인 1900년대 우체통.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사진 명소인 1900년대 우체통.

구룡포에 오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미로 같은 골목들을 지나다보면 시간의 타래도 이리저리 뒤엉킨다. 까꾸네와 철규분식 등 노포에서 나와 근대문화역사거리에 이르면 시간이 정말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동해안 황금어장을 노리고 이곳에 항구를 지었는데, 어업의 호황으로 부자가 되자 여관과 술집 등을 열었다. 1945년 패망 직후 일본인들은 떠났지만,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로 흔히 알려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는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과 일본풍의 찻집, 주점, 음식점 등이 늘어서 있다. 특히 ‘고향집’이라는 뜻의 전통 찻집 ‘후루사토야’는 1924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가옥인데, 다도(茶道)와 함께 한복, 기모노, 유카타 등 한국과 일본의 전통의상을 체험해볼 수 있다. 기모노와 유카타를 빌려 입고 1930년대 목조건물들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은 구룡포를 찾는 젊은 여행객들의 놀이문화가 되었다. 사진 명소로 인기 있는 빨간 우체통 앞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려는 20대들로 붐볐다.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 계단을 오르면 ‘포항구룡포과메기문화관’이 나타난다. 구룡포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이곳에서도 시간 여행은 계속된다. 과메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개관한 과메기문화관은 체험관과 영상관, 전시실, 전망대, 카페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포항의 새로운 테마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철이 아니라서 맛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과메기를 이곳에서 먹게 될 줄이야. 쪽파와 마늘을 곁들여 김에 싸 초장 찍어 먹는 그 과메기가 아니라 과메기빵, 과메기강정, 훈제과메기, 과메기 바질페스토 등 ‘퓨전 과메기 요리’를 맛보니 그야말로 과메기 맛의 신세계다. 과메기가 이토록 다채로운 변신을 할 수 있다니, 식재료로서 과메기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구룡포시장에 들렀다. 죽도시장만큼 북적거리진 않지만 여전히 활기차 손님도 신이 난다. 금어기인 대게 대신 홍게 몇 마리와 참문어를 사서는 삼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삼정 바다의 깨끗한 물빛과 고요함에 반한 게 벌써 몇 해 전이다. 매년 겨울마다 이곳에 와 단골 민박집에서 묵는데, 아침마다 주인 할머니께 얻어 마시는 식혜 한사발이 얼마나 달고 시원한지 모른다. 몸에 불이 붙은 사자가 온 하늘에 불꽃을 흩뿌리는 형상이 서해의 낙조라면 동해의 해거름은 엄지손톱에 든 봉숭아물의 색감을 지녔다. 삼정리 저녁 바다를 거니는 동안 부윰한 분홍빛이 내 마음에 꽃물을 들였다. 차르르르 밀려오는 파도에 가만 귀를 대니 돌아오지 않는 먼 시절, 사랑하는 이가 찬물에 손 씻던 소리가 들렸다.

민박집 마루에 문어와 홍게로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구룡포의 아홉 가지 보물 중 볼락과 해돋이만 빼고 다 수집한 하루를 주인 할머니와 함께 알뜰히 자축했다. 볼락과 해돋이는 내일의 몫이다. 호미곶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고, 아직 연안에 볼락이 붙어 있을 양포항으로 가야겠다. 방파제 위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가 별처럼 빛날 것이다. 그 별에서 또 하룻밤 세상을 건너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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