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천하장사로 강건하기 이를 데 없고, 곧은 성격과 날카로운 외모 때문에 별명이 ‘양칼’이던 교사가 있습니다. 가르쳤던 과목은 지리학. 양칼이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선생님은 수업 중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따스한 분입니다. 일본 유학을 통해 지식을 쌓은 교양인이었고 대작가 우치무라 간조의 사상에 깊이 감동을 받은 탁월한 영성(靈性)의 소유자였습니다. 유학 시절 교류하던 함석헌 등과 함께 박봉을 털어 민족을 깨우기 위한 잡지를 창간하고 제작과 보급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붓습니다.

낮에는 민족 학교인 양정고등보통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글로 시대정신과 투쟁하며 삶을 불태운 젊은이였습니다. 선생의 이름은 김교신.

가르치던 학생 중에 체력이 강철같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장사를 하던 친구였죠. 참외 장사, 각설탕 장사, 군밤 장수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이 학생은 약간의 돈을 모으자 다시 학업에 뛰어듭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2㎞의 자갈밭을 매일 뛰어서 등·하교를 하죠.

김교신 선생은 그를 발탁해 달리기 선수로 육성합니다. 예상대로 학생은 출전하는 마라톤 대회마다 우승을 따냅니다. 13번 출전해 10번을 우승하지요. 김교신 선생의 눈은 정확했습니다. 소년은 성장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민족의 영웅 손기정입니다. 손기정 선수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달리기 연습을 할 때면 김교신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한 발짝 앞서가면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지치고 힘들어 그만 달리고 싶을 때 저는 항상 고개를 똑바로 들고 김교신 선생님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뛰었습니다. 그분 뒤통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당당한 삶의 비결을 두 문장으로 말합니다. “나는 폭풍이 두렵지 않다. 나의 배로 항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평생 한 사람을 위해 헌신한 앤 설리번의 수고가 있었기에 헬렌 켈러는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속 등불로 빛날 수 있었습니다.

뒤통수만 보아도 힘이 날 수 있는 스승. 배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스승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폅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이끌어 줄 참 스승들이 그 안에 아직 살아 계시니까요. 세상의 폭풍과 한파에 얼어 버린 굳은 마음들을 도끼로 깨 주실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한 권의 책에 손을 뻗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