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
오일장
  • 등록일 2019.07.21 20:02
  • 게재일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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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귀연 수필가
송귀연 수필가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엿장수가위소리와 함께 각설이가 빙 둘러선 인파속에서 몸을 흔들고 있다. 발가락이 삐져나온 양말에 빨갛게 볼연지 바른 여장남자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만물장수, 포목전, 옹기전이 저마다의 보따리를 풀고 전을 펼쳐놓았다.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파전을 부치는 아주머니, 말린 고사리와 취나물, 각종 채소며 과일들을 좌판에 놓고 쪼그려 앉은 아낙들로 장터는 시끌벅적하다. 그 사이로 흥정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장터골목엔 소머리국밥냄새가 구수하게 피어났다. 술집에선 육자배기 젓가락 장단에 막걸리 잔이 돌고 주모의 노래가 구성졌다. 약장수는 북을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마술도 보여줬다. 야바위꾼들이 주사위놀이와 화투 패를 재빠르게 섞어 팔광, 똥광 찾기 하는 놀이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유랑극단에선 회충약이며 오줌발이 세어진다는 약을 팔았다.

엄마를 졸라 장 구경을 갔다. 특히 호박엿은 군침이 돌았다. 붙박이처럼 들여다보다 그만 엄마를 놓쳐버렸다. 엄마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달려갔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해는 금세 서산으로 떨어져 어둑해졌다. 두려움이 엄습해 무작정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아랫마을 상여집 앞을 지날 때는 머리가 쭈뼛 섰다. 시커먼 손아귀가 뒷덜미를 덥석 잡아챌 것만 같았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뛰어 사립문을 밀치자 “아이구! 아가 용케 왔데이.” 하는 엄마 목소리를 꿈결처럼 들으며 자지러지듯 품에 안겼다.

장날이면 농사일을 접고 엄마는 우아한 여인으로 둔갑했다. 옥색 한복을 차려 입고 나서면 지나던 이가 곱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북적이는 골목을 비집고 찬찬하 둘러보며 익숙한 솜씨로 흥정을 하였다. 허드레 작업복을 벗고 변신을 한 엄마는 딴 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치켜 올리고 사뿐사뿐 걷는 자태는 마치 한 마리 학 같았다.

삼바우라 불리는 떠돌이거지가 있었다. 아저씨는 비오는 날 짚으로 엮은 도롱이를 걸치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얼룩무늬 국방색야상을 입었다. 마을의 잔치나 상가 집이 생기면 어김없이 출몰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면 으레 맛난 음식들을 내주었다. 걸쭉한 노래며 춤사위로 사람을 불러 모았던 그는 각설이 못지않게 인기가 있었다. 식당은 덩달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삼바우가 등장함으로써 장날은 비로소 흥이 돋워졌고 장날다워졌다. 엄마는 아버지 걱정으로 안절부절 하였다. 남동생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송아지 한 마리를 몰고 장에 간 아버지는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아버진 평소 술버릇이 좀 과한 이력이 있었다. 엄마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디를 헤맸는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아버지는 날이 희끄무레 밝아서야 돌아왔다. 다그치는 엄마를 향해 횡설수설하며 나동그라졌다. 엄마는 아버지 생채기를 살피는 대신 주머니를 뒤지고 몸을 더듬었다. “어딨노? 어딨능교 말이다!”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였다. “아이구, 이일을 우짜노!” 풀썩 주저앉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 허생원은 떠돌이 장돌뱅이다. 어느 날, 다른 장으로 옮겨가던 중 동이를 만나 함께 가게 된다. 동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것도 장날을 통해서이다. 신경림의 ‘파장’도 장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날엔 못난 사람들이 서로 얼굴만 봐도 정겨운 장소인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도 시장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

사람들의 체온이 물씬 느껴지던 장터는 산업화로 사라지거나 쇠퇴했다. 요즘은 대형마트에 마저 밀려나 그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잘 포장되고 획일화된 상품, 편리함 때문에 자꾸만 시장을 외면한다. 오일장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잡다한 물건들과 땀 냄새와 악다구니와 신명들을 날것으로 만날 수 있는 오일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각설이는 엿 판돈을 허리에 꽂고 연신 몸을 좌우로 흔들며 구경꾼들을 즐겁게 한다. 답례처럼 둘러선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흔쾌히 지폐를 꺼낸다. 시래기 한 단과 무, 배추 등을 담은 장바구니가 꽤 무겁다. 각설이타령을 뒤로 하며 오일장을 나선다. 언뜻 골목길 모퉁이를 도롱이 걸친 삼바우 아저씨가 돌아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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