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흘 걸려 창고 치우는 일을 하다 보니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기랑 삶이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주 좋은 일이다.

첫날 만난 일하는 분은 연세가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몇 살처럼 보이느냐 하기에, 글쎄요, 육십은 넘어 보이십니다, 했더니 기분 좋아 하신다.

하루 일이면 오전 여덟시부터 저녁 대여섯 시까지인데, 이런 일에는 손에 익지 않으신지 유리를 조각내 자루에 담는데 오전 내내 보내고도 아직도 다 못 끝냈다. 나중에 자원 처리 사장님이, 바닥에 유리가루를 잔뜩 남겨 놓았다고 흉을 보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깊이 빠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옆에 앉아 얘기를 붙여 본다. 팔뚝에 문신도 있으신 이 분은 젊으셨을 적 이력이 적잖이 화려하셨을 법하다.

운전을 했다신다. 무학이라 직업 구하는 게 어려웠을 땐데, 신촌을 무대로 주름잡고 지내다 지프 차 조수가 되어 운전을 배웠단다. 신촌 로터리 옆에 강화버스 정류장이라고 있었는데, 그 길 건너편이 삼표 연탄 공장이 있었다는데, 거기 삼륜차를 운전을 하셨단다. 그 전이었다든가, 그 후였다든가 군대를 갔는데, 최전방 부대로 가 고생을 ‘엄청’ 하셨단다. 한여름에 연병장에 웃통 전부 벗고 두 팔 벌리고 서 있게 하면 모기가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온통 가려워 난리가 난단다. 한참을 그렇게 세워 놨다가 포복훈련을 시키는데 그러면 살갗이 다 터져 나가도록 박박 기어도 그렇게 시원스러울 수가 없다던가.

사흘째 되자 이 왕년의 운전수 어르신은 나오지 않으시고 아주 바싹 마른 중노의 아저씨가 대신 일을 하셨다. 그분은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말조차 붙이기 어렵고, 대신에 나는 사흘째 함께 부대끼는 자원 회사 사장님께 말을 붙여본다.

젊으셨을 때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사실, 자원회사라고 하지만 쉽게 말하면 고물상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꼭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여기까지 온 사연이 없을 수 없을 테다.

젊으셔서는 우체부 일을 하셨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으셨단다. 갑갑한 터에 뭔가 새로운 일을 찾다가 원양 어선을 타셨단다. 참치 잡는 배를 타셨다는데 배가 인도양에도 가고 남태평양에도 갔다나. 삼 년을 계약해서 먼 배를 타는데 군대보다 어려운 게 원양 어선 생활이란다. 개중에는 학생운동 하다 배 타러 온 사람도 있고 그 밖의 학생 출신들도 더러 있는데 두고 보면 그렇게 딱할 수가 없단다. 참치 잡는 배에서 물이 바로 앞에서 찰랑찰랑 대는데 한 발자국만 떨어지면 곧바로 저세상 가기 쉽단다. 조류가 없는 것 같아도 한 번 배에서 떨어지면 순식간에 저멀리 밀려나 버린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제 일 제가 찾아서 하지 않고는 무서워 못 배기는 곳이 원양어선 일이라고도 한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는 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만하다.

어떻게 하다 ‘자원’ 일을 하게 됐는지 당신 생각에도 참 딱할 때가 많단다. 나 하기 싫으면 남 하기도 싫다고 자원 일이라는 게 보통 어렵지 않단다.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없는 것은 폐기물로, 폐기물도 다 같은 게 아니라 까다롭게 분류해야 하는 게 한둘 아니고, 쇠붙이에 비철 금속도 그 무거운 것을 나중에 다 분해하고 자르고 분류해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다.

아내한테 참 미안하다 하시는 자원 사장님, 그런데 정말 그 사모님이 일을 남들의 두 갑절은 하는 것 같다. 남일 아니기 때문이리라.

사람 사는 일 결코 쉽지 않다. 직업이란 크게 보면 다 살아가기 위한 방편들일 뿐이다. 귀하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는 일에, 사는 방법에 겸허해져야 한다고,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