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지만 누추하지는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는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 등록일 2019.07.17 20:22
  • 게재일 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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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황광해, 안동을 맛보다
한식의 대표 ‘헛제사밥’

‘맛50년 헛제사밥’의 기본 메뉴인 헛제사밥. 고사리를 비롯한 나물 몇 가지에 간장 양념이다.

헛제사밥은 최고의 한식이다. 헛제사밥은 ‘가짜 제삿밥’이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 맞는 일의 중심이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면 “차린 것은 없으나 많이 드시라”고 말한다. 겸양이다. 주인으로서는 최대한 차린 밥상이다. 제사도 마찬가지. “차린 것 없으나 정성으로 여기시고, 흠향(歆饗)하시라”고 말한다. 역시 후손의 겸양일 뿐이다. 햇과일, 햇곡식, 가장 좋은 음식을 차린다.

국가의 최고 음식은 종묘 제사상 음식이다. 궁중 조상이 최고의 제사상을 받는다. 국가의 최고 손님은 외국 사절이다. 중국, 왜, 오키나와 등의 사신에게 국가는 최고의 밥상을 차린다. 만찬(晩餐)이다. 국빈만찬은 지금도 남아 있다. ‘접빈객’의 음식이다.

헛제사밥을 두고, “선비들이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면서 이웃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제사 모신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엉터리다. 조선의 선비, 유교, 한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조선의 사대부는 숨기고, 속이면서 구복(口腹)을 구하지 않았다. 제사는 엄중하다. 이웃에게 날짜를 속일 수 없었고, 속이지도 않았다. 한동네가 통째로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었다. ‘내 집안의 제삿날’은 마을이 죄다 알고 있다. 제사를 핑계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한다? 불가능하다.

“차린 것 없으나 정성으로 드시라”

헛제사밥이 안동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남 진주, 밀양, 경북 상주, 대구 등에도 있었다. 오래전 대도시들이다. 향교가 있고, 벼슬아치, 선비, 반가들이 있었다. 제사를 모셨으니 헛제사밥이 있었다. 전통적인 제사를 오랫동안 고집한 안동의 헛제사밥이 남았을 뿐이다. 경북 안동에는 지금도 ‘불천위(不遷位)제사’가 많다. 높이 기릴 선조를 모시는 제사다. 불천위제사는, 몇 대가 흐르더라도 위패를 내리지 않고 계속 모시는 제사다.

헛제사밥은 제사상 정도로 호화로운, 일상의 밥상이다. 민간에서는 오래전부터 헛제사밥을 먹었다. 제사상은 아니되, 제사상처럼 호화로웠다. 식재료가 비싸고 호화로웠다는 뜻이 아니다. 그 정성이 놀라웠다. 재료는 일상에서 흔하게 보는 것들이었다. 차린 것은 변변치 않더라도 ‘정성을 보고 드시라’는 음식이다.

1980년대 안동댐 건너편에 관광단지가 생겼다. ‘안동관광촌’이다. 몇몇 음식점들이 문을 열었다. 안동 고춧가루 식혜(食醯), 간고등어 등을 내놓는 가게들이 자리 잡았다. 그중 헛제사밥 집도 있었다. 월영교 부근 ‘까치구멍집’의 서정애 대표는 “안동시의 추천으로 관광촌에 시어머님이 헛제사밥 집을 열었다”고 전한다. 오래지 않아 서 대표는 시어머니로부터 ‘까치구멍집’을 물려받았다. 가게를 물려받을 때 시어머니가 했던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번거롭더라도 음식 만드는 과정을 줄이지 마라. 헛제사밥은 편하게 만드는 음식이 아니다. 재료를 쉽게 바꾸지 마라. 음식 맛은 정성이다.”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인 헛제사밥이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다. 인건비, 나물값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올랐다. 그래도 재료, 인건비 모두 줄이거나 바꾸지 못한다. 더하여 ‘안동사람’들은 헛제사밥 맛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한 숟가락만 먹어보면 바로 알아차린다. 어린 시절부터 일상으로 먹었던, 익숙한 맛이기 때문이다.

헛제사밥의 특징 중 하나는 ‘나물 비빔밥’이다. 생채가 아니라 숙채(熟菜)다. 숙채는 말린 나물을 물에 불린 후 다시 삶고 양념을 더한 것이다. 말리는 과정에서 나물은 숙성된 맛을 더한다.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무나물, 시금치 등이 나물의 재료다. 간고등어도 있고, 북어 보푸라기도 놓는다. ‘상어 돔베고기’, 문어도 빠트릴 수 없다. 산적(散炙)과 배추전 등 각종 전(煎)도 주요 품목이다. 중심은 밥과 국 그리고 탕(湯)이다. 탕은 고기, 무, 다시마 등이 재료의 모두다. 양념을 하지 않는 으뜸 국물, ‘대갱(大羹)’이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한식의 길이고, 최고의 한식인 제사 음식이다.
 

‘까치구멍집’의 헛제사밥 4인상이다. 조기구이와 산적을 더했다. ‘톱 밥상’이 눈에 띈다.
‘까치구멍집’의 헛제사밥 4인상이다. 조기구이와 산적을 더했다. ‘톱 밥상’이 눈에 띈다.

원조의 위엄 ‘맛50년, 헛제사밥’과 ‘까치구멍집’

안동댐 건너편 관광촌의 헛제사밥 전문점들은 2000년 무렵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두 집이 원조, 유명 가게다. ‘맛50년, 헛제사밥집’과 ‘까치구멍집’이다. ‘맛50년, 헛제사밥집’이 한두 해 앞선다. 음식은 대동소이하다. 밥을 비벼보면 ‘맛50년, 헛제사밥집’의 비빔밥은 물기가 더 있다. 잘 비벼진다.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갈린다.

고춧가루나 고추장은 사용하지 않는다. 많은 손님이 고추장을 원하니 달라고 하면 내놓는다. 헛제사밥, 나물 비빔밥의 양념은 참깨 정도를 더한 간장이다. 고추장, 고춧가루는 제사상에도 놓지 않았다. 육회와 고추장을 더한 비빔밥은 우리 시대에 시작된 음식이다.

헛제사밥상에는 안동사람들이 ‘톱 반찬’이라고 부르는 ‘반찬 상’이 하나 더 놓인다. ‘톱 반찬’의 시작은 음복상(飮福床)이라고 추정한다. 제사가 끝나면 제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밥상을 내놓는다. ‘봉제사’ 후 ‘접빈객’이다. 한식은 독상(獨床)이다. 혼자서 밥상을 받는다. 자연스레 생선, 고기, 전 등을 잘게 잘라서 놓는다. 문제는 그릇이다. 그릇이 귀하던 시절, 큰 그릇에 여러 가지 반찬을 모았다. 마치 ‘밥상(床)처럼’ 그릇 모양을 만들었다. 다른 그릇보다 높다. 그릇 테두리도 일반적인 그릇과 달리, 마치 밥상 같다. ‘톱 상’에는 대략 아홉 가지 반찬을 놓는다. 전 세 종류와 고기, 달걀, 생선, 두부 등의 다섯 가지다. 자반고등어, ‘상어 돔베’ 고기는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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