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너무 뻔뻔한 어느 교육자의 이야기이다. “이번 자사고 운영평가가 경쟁 위주의 고교교육과 서열화된 고교체제의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이런 뻔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말을 한 사람들은 그래도 교육 관료라고 하는 사람들인데, 그 누구보다 이 나라 고등학교 교육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런 뻔뻔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필자는 교사라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거짓말 대신 차라리 좀 솔직해지면 안 될까? 대통령 공약(公約) 사항 중 하나이고, 자신들 또한 정치 이념을 가지고 교육 수장이 된 만큼 자신의 정치 이념에 맞지 않기 때문에 폐지한다고.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국민들의 충격이 좀 덜 하지 않을까!

자사고 폐지를 두고 녹음한 것처럼 똑같은 논리를 펴고 있는 정치 교육자들의 말에서 군내가 나는 것 같다. 대한민국 자체가 서열화 된 학력에 의해 만들어진 신(新)계급주의 사회인데,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정말 “경쟁 위주의 고교교육과 서열화 된 고교체제”가 정상화 될까. 정말 이렇게 믿는 것일까? 만약 자사고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 교육이 정상화가 안 된다면 그 때는 지금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는 누구 보상 해 주나?

왜 자사고 폐지가 교육을 위한 순수한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누군가를 위한 정치적 수단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이유는 또 왜일까?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 자사고 폐지에 대한 이상한 논리 때문이다. 경쟁 위주의 고교교육, 서열화 된 고교체제! 이 두 가지가 자사고를 폐지하는 가장 큰 이유이라는데, 이 문제는 자사고만의 문제일까?

지난 주 대부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1학기말 고사가 치러졌다. 교사들은 부단한 연구를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함정(陷穽) 문제들을 만들었다. 아마도 교사들은 함정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뿌듯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학교 선생님들의 열정을 아는 학생들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교육 현장에서 몇날 며칠 밤을 하얗게 불살랐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 교육이 참 이상(理想)적인 것처럼 보인다. 좋은(?) 문제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교사와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교육의 속사정은 이상과는 전혀 다르다. 이상(理想)도 이상(異常)이 되는 것이 한국 교육 현실이다.

시험이 전부인 대한민국 교육! 시험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이 나라 시험은 분명 나쁘다. 왜냐하면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경쟁시험이니까! 줄 세우기가 왜 나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나라의 줄 세우기 시험은 오로지 상위 학교 입시 자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에 잘 못 된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시험이 끝나는 순간 그토록 고생해서 공부했던 시험을 보기 위한 지식들을 깔끔하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럼 시험이 끝난 이후의 학교 모습은 어떨까. 물론 모든 학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많은 학교들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수업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잘 해야 시험 점수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수업은 끝날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두꺼운 체육복 등을 입고 추울 정도로 시원한 교실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리고 하교 이후에는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 할 것이다.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자사고를 폐지한 교육 정치 관료들도 분명 이런 고등학교 현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나라 고등학교 교육에서 대학교 입시를 위한 경쟁을 제외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교육백년지대계교(敎育百年之大計),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