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양’과 ‘녹두꽃’
‘애절양’과 ‘녹두꽃’
  • 등록일 2019.07.17 19:58
  • 게재일 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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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2002년 ‘대망’을 끝으로 드라마와 작별했다. 1995년 ‘모래시계’로 선풍을 일으킨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연출이 만든 작품이었다. 우리로 하여금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다시 생각하도록 인도한 ‘모래시계’. ‘모래시계’전에 좋아한 드라마는 ‘서울의 달’이다. 출세를 위해 부나방처럼 떠돌던 촌놈의 허망한 삶을 아프게 그려낸 사회드라마.

‘대망’ 이후에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희곡과 연극 연구자가 드라마와 연을 끊는다는 것은 곡절이 있을 터. 혁명과 변혁의 80년대를 불처럼 바람처럼 파도처럼 산 자들은 1988년 대선패배와 군부독재의 연장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문단(文壇)에서는 처절하고 응어리진 ‘자기고백’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투쟁의 전선은 하나둘씩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전선이 1991년 “경대를 살려내라!”는 피어린 항쟁이었음은 재언을 요치 않는다.

사회-정치 드라마나 역사 드라마에는 당대인들의 역사의식과 정치적인 견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있다. 세상이 너무 엄청나면, 상상을 절할 정도로 극악하고 폭력적이면 사람들은 유희와 오락으로 도피한다. 칼라일은 ‘프랑스 혁명사’에서 기요틴과 오락이 공존하던 1793년 12월의 파리에 23개 극장과 60개 무도장이 성업했다고 기록한다. 연극과 가면무도회에 도취한 한밤의 축제와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기요틴의 살육이 어우러진 혁명의 나날들.

‘대망’의 누군가가 연극으로 세상을 뒤엎겠다는 포부를 말하는 장면에서 허망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는 헛헛함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드라마와 작별한 까닭은. 얼마 전에 원광대 박맹수 총장의 동학관련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2014년 가을 동학농민전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경북대 인문대학에서 개최했을 때 박 총장은 발표자로, 나는 사회자로 만난 일이 있다. 이번에는 연사와 청중으로 반갑게 재회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은 왕과 귀족, 성직자계급의 과도한 특권과 제3신분 및 제4계급의 수탈과 억압이었다. 그것을 대표한 인물이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였음은 불문가지. 위고는‘레미제라블’에서 그들을 단두대로 보내고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민초의 삶을 다각도로 그려낸다. 새로운 통치자와 지배집단이 등장했음에도 왜 민중의 삶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혁명이며 기요틴이었을까?!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준거로 작용했다면, 동학혁명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산의 ‘애절양(哀絶陽)’이 필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1801년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된 다산이 1803년에 쓴 7언 22행시 ‘애절양’. 강진 갈밭마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사흘 만에 군적에 오르게 되자 관리가 군포 명목으로 소를 끌고 가버린다. 절망한 백성이 그만 자신의 양경을 잘랐다는 얘기를 들은 다산이 쓴 뼈아픈 시가 ‘애절양’이다.

다산은 백성의 고통과 조선의 문란한 군정을 보여준다. 남편의 양경을 들고 관아에 호소하는 아낙의 정경이 처절하다. 시아비상 마친 것도 얼마 전이고, 갓난아이 배냇물도 마르기 전이다. 그런데 아전은 군보에 시아비와 남편, 어린것의 이름을 올려놓고 소를 끌고 가버린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면서 고관대작들은 낱알 한 톨 비단 한 치 내는 법이 없다고 다산은 쓴다.

동학농민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녹두꽃’이 종영되었다. 박 총장에 따르면 1894년 당시 조선 인구는 1천50만 정도, 동학교도는 250만∼300만에 이르렀다 한다. 얼마나 많은 민초가 동학에 귀의하여 후천개벽을 열망했는지 가늠할 만한 수치다. 농민전쟁으로 30만∼50만 동학교도가 죽임을 당했는데, 그 가운데 3만∼5만이 고종의 비 민자영이 불러들인 일본군에게 학살당했다 한다. 2019년 여름 아베의 고약한 행악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심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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