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忍)·인(仁)·인(人)
인(忍)·인(仁)·인(人)
  • 등록일 2019.07.16 18:43
  • 게재일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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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

얼마 전 갓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방실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느 정도의 직책을 얻은 후배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늘 둥글둥글 살아왔던 후배였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들이 너무 못살게 굴어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가장 어린 데다 싱글이라는 이유로, 잡다한 업무는 당연히 모두 그의 몫으로 여길 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 일기도 했다는 것이다.

업무 몰아주기는 물론, 직장 내 따돌림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끼리 고소·고발하고, 네가 옳니 내가 옳니 하는 아웅다웅은 이제 너무나 식상할 정도다. 그래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의 칼부림정도가 나면 모를까, 더 이상 이런 건 이슈거리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 그것이 인간사라며, 직장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을 오히려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기도 한다.

이는 비단 직장에서만의 문제도 아니다. 학교에서도 소위 ‘왕따’, ‘은따’를 당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10대들의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집단의 횡포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여지없이 밟아서 사회적 약자들을 공동체의 테두리 밖으로 쫓아내는 또 하나의 어긋난 ‘권력’행사다. 최근 노인이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센터 직원들의 횡포와 눈가림, 직위와 직권을 남용해 대학원생들을 착취하는 교수들,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며 거들먹거리는 대기업 인사들 등. 우리 주위에는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또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수자의 권익을 짓밟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관계에서, 남들과 마찬가지로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억울함’이 생겨나고 ‘분노’가 싹튼다. 이러한 분노는 심지어 범죄 행위로 이어지거나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기까지 한다. 위나라 때, 시문에 뛰어난 조식(曹植)이라는 인물은, 일곱 걸음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을 주겠다는 질투 많은 권력자 형 조비(曹丕) 때문에, 울음을 삼키며 ‘칠보시(七步詩)’를 지었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솥 안에서 콩이 눈물 흘리네/본래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어찌 이리 심하게 들볶는고’라고. 결국 조식은 시달리다 못해 울화병으로 죽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은 늘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늘 이야기하듯,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어제 강자였다고 해서, 오늘 강자가 되라는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약자가 또 내일의 약자가 되라는 법도 없다. 힘이 센 개가 늘 큰 밥그릇을 먼저 차지했는데, 힘이 약한 개가 늘 밀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이를 불쌍히 여긴 주인이, 오히려 힘없는 개 밥그릇에 더 많은 음식을 주자, 어느새 비실비실하던 개가 더 크게 자라, 큰 개가 제 밥그릇을 기웃하니 쾅하고 짖어대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만사가 그런 것이다.

맹자의 ‘고자(告子)’ 장구(章句)편에는 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땐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려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 담금질 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器局)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맹자의 구절대로, 현재의 힘듦은, 더 큰 일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담금질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담금질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기에 인간의 인내(忍)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담금질이 되고 나면, 웬만한 일들은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된다. 참고 또 참으며 인(忍)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널리 보는 안목과 어짊(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忍)은 무작정 참는 것이며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인(仁)을 얻는 것이자, 나아가 각양각색의 인간(人)을 이해하는 토대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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