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여름나기
선비들의 여름나기
  • 등록일 2019.07.01 18:58
  • 게재일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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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계절은 장마로 접어들었다. 장마가 끝나면 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열대 기후로 변하여 겨울은 짧고 여름은 길어지며 기온 또한 예전에는 30℃ 안팎이던 것이 이제는 40℃정도까지 오르내린다. 여름은 원래 덥다. 지난해 여름도 더웠고 100년 전 여름도 더웠다. 여름이 덥지 않으면 천재지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름에는 피서를 즐긴다.

전통사회에서 더위를 이길 수 있는 피서방법에는 여러 가지 있으나 특별히 계곡을 찾거나 벽오동 아래서 더위를 씻곤 했다. 이러한 자연을 이용한 방법 외에도 글이나 시를 통해 더위를 이기곤 했다. 대표적인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문인인 정내교(1681~1759) 선생의 문집 완안집에 ‘수운정피서( 水雲亭避暑)’라는 시가 있다. 정내교가 수운정이라는 곳에 피서를 하며 지은 시이다. 그는 중인 출신이라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시의 재능은 당대에 최고로 인정받아 많은 이들이 그에게 시를 배우기도 하였다. 정조 때 대제학과 좌의정을 지낸 김종수와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며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도 그에게 시를 배웠다고 한다.

시 내용은 이렇다. ‘붉은 해 중천이라 새들도 울지 않고/ 산인은 말을 타고 천천히 지나는데/ 골짜기 산속 길로 어느덧 접어드니/ 반갑게 솔바람에 물소리 들려오네.’ 이 시는 특별한 기교나 묘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한여름의 뜨거움과 산중의 시원함을 잘 전달하고 있다. 제1구의 ‘중천에 걸린 붉은 태양[赤日中天]’은 더운 이 여름날 생각만으로도 덥다. 얼마나 더운지 새들도 모두 자리를 피해 보이지 않는다. 제2구에서는 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피해 산길로 향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옮겨야 하겠지만 무더위로 인해 최대한 천천히[閑] 내딛고 있다. 배경은 어느 순간 깊은 산중으로 바뀌어있다.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숲 속에선 솔내음 가득 실은 솔바람[松風] 불어오고 길옆 계곡에선 물소리[間水] 들려온다. 제3구에서 지친 우리 몸의 감각을 집중시키다가, 제4구에서 더위를 식힐 솔바람과 물소리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예는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1713∼1791)의 표암유고(豹菴遺稿)에 실려 있는 ‘해암이 고맙게 보여준 석전의 그림에 차운하다.’라는 시다. ‘구름이 앞산을 가리더니 소나기 쏟아지고/ 바람이 초목에 불어와 기이한 향기 풍기네/ 북창에서 책상 대해 긴 여름날을 보내노니/ 청량한 이 기분 아낌없이 그대와 나누리라.’ 무더운 여름철 소나기가 지나가자 기온이 뚝 떨어지고 집 주위의 풀이며 나무에 바람이 불어와 신록의 향기가 코끝에 스친다. 서늘한 북쪽 창문 아래서 책을 읽으며 긴 여름날을 보내노라니 이 청량한 기분을 혼자 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든다. 3구에서 북창은 도연명의 고사를 썼다. 도연명이 오뉴월에 북창 아래에 누워 서늘한 바람의 감촉을 즐길 때면 내가 복희씨 이전의 태고적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해 질 녘 바람과 저녁노을은 원래 주인이 없으니 이 청량한 기분을 그대와 나누는 것을 아끼지 않으리’라고 한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강세황의 처남 유경종이 명나라의 유명한 화가인 심주(沈周)의 그림을 표암에게 보여주었는데 이 시는 그 그림에 있는 제화시의 운자를 따라 지은 작품이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피서법이 있다. 캠핑장을 이용하는 방법과 오수(午睡)체험, 차가운 물에 발을 씻는 탁족, 죽부인과 함께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는 체험도 유행이다. 여름 더위는 열매를 영글게 한다. 더위에 비록 몸은 시달려도 영혼 역시 더 단단히 여물 수 있다. 세종 때 일에 지치고 소진된 집현전 학자들에게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독서휴가를 주어 재충전하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기승을 부릴 올 여름 무더위를 우리도 독서삼매를 통해 자아를 찾아 영글게 하는 법을 피서로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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