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다못해 흘러넘치는 통통한 살을 그 단단한 껍질에 가두느라 게, 너도 참 힘들었겠구나
차다못해 흘러넘치는 통통한 살을 그 단단한 껍질에 가두느라 게, 너도 참 힘들었겠구나
  • 등록일 2019.06.30 20:20
  • 게재일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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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병철의 경북 바닷길 537km, 그 맛과 멋
③ 울진 대게는 추억을 싣고

밤이 내린 죽변항.

유년의 추운 겨울밤이었다. 그때는 눈이 참 예쁘게 내렸다. 하얀 스웨터를 짜 입은 아스팔트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글썽거리고, 저기 모락모락 눈발을 부옇게 지우며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곳엔 어김없이 영덕게 용달트럭이 서 있었다. 술 한 잔 걸친 아버지가 게 몇 마리 담은 비닐봉지 들고 휘적휘적 눈길을 걸어 집에 오면 내복 차림의 나와 여동생은 입에 침을 번들거리며 방방 뛰었다. 층간소음이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 게 두어 마리를 아랫집에 가져다주고 밥통에서 지금 막 찐 야채호빵 여러 개를 받아 왔다. 가위로 자르고 젓가락으로 쑤시고 입으로 쪽쪽 빨면서 발라먹는 게살 맛은 정말 황홀했는데,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하고 또 달짝지근한 것이 쫀쫀하다가 몰캉거리다가 이내 입 안에서 사라지면 그렇게 안타까웠다. 엄마는 살 많은 부위를 우리에게 다 주고 뾰족한 끝마디만 입에 대곤 했다. 여섯 식구가 둘러앉아 양은쟁반에 부려놓은 붉은 게를 나눠 먹던 그 겨울밤이야말로 완전한 행복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게 찌는 냄새 그득한 죽변항에서

밤색 난낭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국산 상급 ‘박달대게'와의 조우
고소하고 담백하고 ‘단짠단짠' 맛에
쫄깃쫄깃 탱글탱글 속살 영접하니
여섯식구 둘러앉아 오순도순 나눠먹던
어린날의 완전했던 행복이 그리워져…

서울 소년인 내게 대게는 특별한 먹거리였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처럼 택배가 쉽지 않고, 수산시장에 가면 “바가지 쓴다”던 시절이다. 골목길 어귀에 찜통을 얹은 트럭이 서는 날에만 맛볼 수 있었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처럼 온 식구가 형광등 아래 앉아 게를 다 먹고 나면 엄마는 남은 껍질로 육수를 내 된장국을 끓였다. 참 알뜰하게 먹었다. 이제는 서울에도 대게 전문식당이 많이 생겼다. 수산시장에 가거나 산지에서부터 당일 택배로 받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유통 시스템이 발전하는 사이 대게는 가족의 별미에서 친구들과의 술안주로, 연인과의 데이트 음식으로 그 위상이 달라졌다. 마룻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 대게를 먹던 가족들은 흙으로 돌아가거나 요양병원에 눕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나만 홀로 옛 동네에 남아 반지하방 창틈으로 다시 오지 않는 영덕게 트럭을 기다린다.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백석, ‘여우난곬족’)


백석은 1920년대 평안도 지방의 명절 풍경을 시에 자주 그려냈다. 콩가루차떡과 고사리와 도야지비계 따위는 명절 때나 돼야 먹을 수 있는 별미였을 것이다. 모처럼 맛있고 푸짐한 식사를 해 즐거워진 가족들은 “웃고 이야기하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는 놀이에 열중하며 “하로에 베 한필을 짜”고, “배나무접”을 하고,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느라 “눈물을 짤 때가 많은” 삶의 고락을 잊어버린다.

찜통에서 30분간 쪄낸 울진 박달대게.
찜통에서 30분간 쪄낸 울진 박달대게.

백석의 시에서 국수, 무이징게국, 곰국, 달송편을 차려낸 식사가 그렇듯, 서울의 어느 가족에게도 대게를 먹는 일은 일종의 축제였다. 따끈한 김과 달큰한 비린내가 함께 피어오르는 쟁반 앞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거웠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는 특정한 외부 세계의 물질을 똑같이 몸속으로 들인다는 점에서 유대와 결속의 의미를 갖는다. 함께 울진이나 영덕에 가본 적 없지만, 대게를 먹음으로써 나와 부모 형제 몸속엔 붉은 피 말고도 동해의 물빛과 파도와 뜨거운 해돋이가 푸른 피가 되어 똑같이 흘렀던 것이다.

‘대게’와 ‘영덕게’는 꽤 오랫동안 동의어로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대게 하면 영덕부터 떠올린다. 그만큼 영덕은 대게의 대명사로 일찍이 명성을 얻어 지금껏 대게 생산지로 제일 각광받아 왔다. 그 점 때문에 나는 영덕 대신 울진으로 대게 식도락의 걸음을 돌렸다. 시인이므로 기성의 권위와 질서, 상투성을 거부해야 한다는 건 근사한 핑계고, 사실 단순한 이유에서다. 영덕 강구항은 너무 번성한 탓에 수선스럽다. 특히 네온사인을 칭칭 두른 대게 간판과 조형물들이 천지사방 가득해 여기가 지구인지 게에게 침공당한 ‘크랩톤 행성’인지 헷갈릴 판이다. 울진 후포항도 비슷하다. 사람 없고 조용한 곳을 찾다보니 그나마 덜 ‘게판’인 죽변항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큰(大) 게가 아니라 다리 생김이 대나무를 닮아 대게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 차 살이 단단하면 박달대게다. 즉 박달대게 한 마리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심겨진 셈이다. 영덕과 울진과 포항은 대게의 ‘메카’가 자기네 고장이라고 서로 주장한다. 자망어업으로 잡은 것만 박달대게로 인정할 수 있는데, 영덕과 포항 구룡포에만 자망협회가 있어 ‘협회’가 없는 울진의 대게는 자망으로 잡아도 ‘공식’ 박달대게가 아니라는 이상한 이야기도 들린다. 이처럼 대게 ‘원조’ 논쟁들이 대개 ‘게 소리’다. 한 바다에서 잡아 영덕에서 사들이면 영덕 대게, 구룡포에서 사들이면 구룡포 대게, 울진에서 사들이면 울진 대게가 된다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더는 다투지 말자.

들숨에 게 찌는 냄새가 훅 들어오고, 날숨은 아까시 냄새에 흩어지는 죽변항을 천천히 걸었다. 죽변(竹邊)은 대숲의 기슭이다. 대게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데, 내 나름대로 깐깐한 조건을 두고 저울질했다. 그 조건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소위 ‘스끼다시’로 불리는 곁들임 음식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셋째, 외관이나 장사 수완이 세련됨보다는 투박함 쪽으로 기울어질수록 좋다. 그런 식당이라야 상차림과 가격에 거품이 안 껴 생산지 대게의 참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식당이 세 조건을 충족하고 있어서 선택이 쉽지 않았지만, 상호명의 콩글리시가 정감을 일으키는 ‘대원대게센타’로 결정했다. 죽변항에서 꽤 유명한 집이다.

먹기 좋게 손질된 대게가 한잔 술을 부른다.
먹기 좋게 손질된 대게가 한잔 술을 부른다.

가게 밖 수조에서 먼저 대게를 골랐다. 주인장이 울진 박달대게를 추천했다. ‘박달’ 완장을 차지 않은 ‘비공식’ 박달대게이지만 씨알이 크고, 살이 꽉 찼는지 배와 다리가 단단했다. 집게발을 거세게 흔들어대는 녀석의 등딱지에는 밤색 난낭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국산의 상급 대게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등딱지에 흰 석회와 따개비가 붙어 있는 것은 보통 러시아산이다. 박달대게 몸값을 익히 알고 있어 꽤 긴장했는데, 주인장은 내 예상보다 훨씬 싼 가격을 불렀다. 격하게 감동해서는 단 한마디 흥정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일일연속극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대게를 찌는 30분이 마치 30년처럼 느껴졌다. 기다림에 목이 말라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기본 상차림은 단출하다. 미역줄기 볶은 것과 콩자반, 생선과 함께 익혀 시원한 맛이 일품인 김치, 도토리묵과 매실장아찌, 그리고 말린 도루묵 조림이 전부다. 경북 바닷가 식당에서는 말린 도루묵 조림이 흔한데, 이게 또 별미다. 천관녀 집으로 가는 김유신의 말처럼, 젓가락이 자꾸 도루묵으로 향하는 걸 겨우 멈추고는 맥주로 입을 헹궜다. 대게가 상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묵언의 수행자가 된다. 바깥의 찜통에서 몽글몽글한 김이 솟을수록 내 간절한 허기는 세월의 자욱한 안개 너머 그 옛날 영덕게 트럭이 서 있던 골목으로 달려간다. 허공에 흩어지는 저 희부연 김마저 달고 고소하구나. 찜통 앞을 지키고 선 사람은 주인장인가 내 아버지인가? “거룩하고 아름다운” 등대지기처럼 보인다. 냄새와 풍경, 추억, 그리고 게 찌는 이의 마음까지를 두루 음미할 때 비로소 게 맛을 알 수 있다. “너희가 게 맛을 알아?”라는 유행어는 그냥 우스개가 아닌 것이다.

살이 두툼한 울진 대게의 집게발.
살이 두툼한 울진 대게의 집게발.

마침내 대게가 상에 올랐다. 은빛 스테인리스 쟁반 위 크고 아름다운 선홍빛 대게가 내 눈엔 수평선을 가르고 솟아오르는 태양보다 장엄하다. 일일드라마를 보던 며느리가 능숙한 가위질로 먹기 좋게 대게를 손질해주었다. 집게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살이 꽉 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이 통통한 살을 껍질에 가두느라 게도 참 힘들었겠다. 게 다리를 든 것인지 닭다리를 든 것인지 헷갈려 하면서 게살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달달하고 짭조름한 육즙이 입 안에 팡팡 터졌다. 누가 내 몸에다 게 삶은 육수를 바가지로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입 안에 몰아치는 육즙의 해일, 잘못하다간 입 밖으로 질질 흘리기 십상이라 나는 서둘러 ‘육즙주의보’를 발령해야만 했다. 앞니에 처음 닿을 때는 껌처럼 탄력 넘치던 속살이 두어 번 오물거림에 완전히 풀어져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그 어떤 키스도 박달대게와의 입맞춤은 이길 수 없다. 고소하고 담백하고 ‘단짠단짠’하며 슴슴하고 또 쫄깃쫄깃 탱글탱글 살살 녹는 게살 맛에 취해 음미고 뭐고 허겁지겁 게 다리를 빨아먹었다. 게살 한 입 먹고 소주 한 잔 마시다보니 어느새 테이블엔 게 껍질과 빈 소주병만 쌓여 있었다. 대게 등짝지에 눌러 담은 내장 볶음밥과 홍게 된장국까지 다 먹고서야 대게 탐미(耽味)와 탐식(貪食)을 마쳤다.

대게 내장을 듬뿍 넣어 만든 볶음밥.
대게 내장을 듬뿍 넣어 만든 볶음밥.

먼 등대불빛을 보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게를 먹던 시절을 떠올렸다. 지난날을 추억해봤자 마음만 축축해진다. 동생에게 집게발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며 게 다리 개수까지 세어놓던 그 때가 뭐 그립다고. 귀한 박달대게를 혼자 배 터지게 실컷 먹으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코끝은 왜 시린 걸까. 바닷가 시골 밤거리를 홀로 걸으면 일찍 불 꺼진 간판들이 내 어느 한 시절 같다. 그리움은 게 찌는 냄새와 고장 난 네온사인으로 오고, 외로움은 아까시 향기와 냉동창고 수은등으로 온다. 죽변항 허름한 모텔을 향해 터벅터벅, 술 한 잔과 게살 한 점이 아쉬워 편의점 들러 맥주 한 캔과 인스턴트 게살을 집어 들었다. 늦봄의 항구에 달빛이 첫눈처럼 하얗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날 밤 꿈엔 영덕게 용달트럭이 대게 대신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가득 싣고 탈탈탈, 엔진 소리를 내며 기어왔다. 꿈속에서도 게 찌는 냄새가 나 코를 심하게 골았다. 잠귀로 들은 용달차 엔진 소리는 내 코 고는 소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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