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와 바이오미메틱
미메시스와 바이오미메틱
  • 등록일 2019.06.26 20:28
  • 게재일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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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은 빗물에 젖지 않고 물방울로 궁근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모방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과 예술의 핵심을 ‘미메시스’ 즉 모방으로 보았다. 철학자의 말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늘 모방하며 재현하고 있으니까.

엘라 윌콕스(Ella Wheeler Wilcox ·1850~1919)의 시 ‘고독’은 “웃어라, 온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로 시작한다. 이 생소한 시인의 시는 영화 ‘올드 보이’를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멋진 대사는 따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미메시스는 곧 따라하기다.

당황스럽거나 놀랄만한 사건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그 경험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한다. 예컨대 버스에 두고 내린 지갑을 우여곡절 끝에 되찾았다면 친구에게 말하고 싶어한다. 어떡하다가 지갑을 버스에 두고 내렸는지, 버스에 두고 내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의 마음이 어땠는지, 그것을 어떻게 찾았는지, 지갑을 찾아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다.

인간은 삶의 한 부분을 압축하거나 확장하여 중요한 순간을 재현하려 한다. 이것이 이야기며, 이야기는 경험을 구성하고 배치함으로써 완성된다. 이야기는 삶을 미메시스한다.

미메시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닮고자 하는 마음, 흉내내고 싶다는 생각은 유전자 속에 이미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미메시스의 욕망이 예술로 이어진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면 음악이 되고, 자연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색과 형태를 흉내 내면 그림이 되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하면 이야기가 된다.

인간은 자연을 보면 따라하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연을 흉내내려고 마음먹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재능이며 능력이다. 자연을 따라하지 않으면 결코 자연이 가진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따라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이 응축되었다. 따라할 만한 것을 찾는 것, 그것을 실제로 따라해보는 것 역시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미메시스는 인류를 가장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최고의 원동력이다.

△바이오미메틱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능력을 모방하려는 생각속에서 공학이 싹튼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바이오미메틱이 그것이다. 생명체를 모방하는 이 기술은 오래 전부터 행해져왔는데, 앞에서 말한 거미줄을 모방하는 것은 물론 비행기가 새의 날개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1907∼1990)은 엉겅퀴 열매를 모방하여 일명 ‘찍찍이’라고 불리는 벨크로(Velcro)를 만들었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벨벳’을 뜻하는 ‘벨루(velour)’와 ‘고리’를 뜻하는 ‘크로셰(crochet)’의 합성어다. 이런 벨크로는 단추나 지퍼를 대신하여 옷, 신발, 가방 등에 사용된다.

벨크로는 쉽게 붙이고 뗄 수 있지만 접착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이보다 강한 접착력을 가지면서도 쉽게 떼는 것도 가능한 것이 있을까? 공학자들은 게코(Gecko) 도마뱀에 주목했다. 게코 도마뱀은 긴 발톱이나 갈고리가 없이도 나뭇가지나 천장에 안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놀라운 흡착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게코 도마뱀이 지닌 흡착력은 수십 킬로그램을 매달아도 될 정도다. 그렇게 강하게 붙을 수 있으며 또 쉽게 뗄 수도 있다. 그러니 게코 도마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게코 도마뱀이 어떤 접착 물질도 분비되지 않는데도 놀라운 접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비밀은 발바닥에 있다. 발바닥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크기의 섬모 수십억 개가 촘촘하게 나 있다. 이렇게 미세한 나노구조의 물질은 주변의 물질과 전기적, 분자간의 인력으로 살짝 들러붙게 되는데 이것을 ‘반데르발스 힘(van der Waals force)’이라고 한다. 각각의 섬모에 작용하는 힘은 아주 작지만 그 수가 수십억 개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은 1c㎡당 약 1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흡착력만 뛰어나다면 뗄 수가 없으니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섬모는 결을 이루고 있어 그 결을 이용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뗄 수 있게 된다. 게코 도마뱀의 흡착력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인간 역시 벽이나 천장을 스파이더맨처럼 땅위를 걷듯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한 시인은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을 보며 이런 시를 썼다.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복효근) 전문



시인이 토란잎에 영감을 받아 물방울처럼 둥근 리듬의 시를 쓰는 동안 공학자들은 토란이나 연잎에 어떻게 물방울이 궁글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스스로 물방울을 털어내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잎에 물이 묻으면 식물의 호흡기관인 기공이 닫혀 호흡을 할 수 없게 된다. 연잎은 표면에 무수한 나노 단위의 돌기들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 미세한 돌기들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면, 물방울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표면적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물방울은 동글동글해지고 연잎의 표면을 구를 뿐 그 좁은 돌기의 틈새로 파고들지 못한다. 자연은 이토록 치밀하며 이토록 정교하다. 나노 돌기를 이용하여 물의 흡수를 막는 방법을 사용하는 식물로는 벼의 잎사귀가 있고, 곤충으로는 모포 나비가 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공학자들은 셀프 클리닝(Self-Cleaning) 기술을 탄생시켰다. 연잎과 같이 나노돌기를 만들어 주면 물에 젖지 않는다. 또 먼지나 세균 같은 것도 물방울처럼 나노 돌기에 떠 있는 상태가 되므로 표면이 오염되지 않는다. 비가 올 경우 물방울이 굴러내리며 먼지나 세균 등을 씻어내게 되므로 자동세척이 이뤄진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덮고 있는 흰 천이 몇 년이 지나도 더럽혀지지 않는 것은 이 셀프 클리닝 기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을 우리가 입는 일상복에 사용하면 커피, 소스와 같이 다양한 액체에 의해 옷이 더럽혀 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자동차의 표면, 건물의 외벽이나 유리창에도 사용할 수 있다.

미메시스는 문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메시스는 일종의 본능이며, 이것은 어쩌면 문학보다 공학이 먼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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