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략)”

정부가 바뀌면서 국민들에게서 잊힌 노래 중 하나다. 노래가 잊히면서 노래가 기념하는 날의 의미도 특정 세대의 기억과 일부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날로 변해 버렸다. 분명한 건 이 날이 지금처럼 쉽게 잊혀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산가족이 그렇고, 또 이 날의 상처 때문에 지금까지도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이 나라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민족상잔(民族相殘)의 최대 비극 한국전쟁!

그런데 이 날이 잊히고 있다. 정확히 말해 정치인들에 의해 이 날의 의미가 국민들의 머리와 마음에서 지워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적(敵)의 개념까지 바꾸면서 한국전쟁 전범(戰犯)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런 정치인들의 입방정 때문에 참전군인 가족 앞에서 북쪽을 찬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시대가 변해도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 정부 들어 정치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정의와 원칙을 외치고 있다.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두 단어가 무기처럼 등장했다.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이들만 제시하면 그 누구도 더 이상 말을 못한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남쪽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정의와 원칙을 칼같이 적용하면서, 이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북쪽에 대해서만은 이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정말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에 있어 한국전쟁과 관련된 올바른 역사 교육이 가능할까?

남북관계 개선도 좋고, 다른 뭐도 다 좋지만 그 전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쪽의 진정한 사과(謝過)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야 말로 역사 인식을 같이 할 수 있는 최소한 도리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여는 출발점이 아닐까? 우리 역사 교육이 걱정이다.

그런데 걱정은 이것만이 아니다. 교육이야기를 몇 년째 쓰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써 본 적이 없다. 교육의 가장 기본은 학생 행복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행복(幸福)지수는? 학생이 학교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교육 현실은? 안타까운 마음에 행복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욕구가 충족되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

막상 뜻을 찾고 보니 행복이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의 뜻에서 ‘만족과 기쁨’ 즉 행복의 조건이 ‘욕구 충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욕구의 의미를 찾았다.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바라고 원함” 과연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얻거나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문제는 그 대상이 누구이냐는 것이다. 교육의 주체를 흔히 ‘학생, 학부모, 교사’라고 한다. 이들 교육 주체들의 욕구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금 정치판처럼 이 나라 교육 주체들의 욕구는 모두 다르다, 거기다 정부의 교육 욕구까지도!

최근 자사고 재지정이 이슈이다. 전북의 한 학교가 이미 기준에서 미달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교육 관계자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 중심고’가 된 이들 학교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이유에서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실소가 나왔다. 대한민국 학교 중에서 “입시 중심 학교”가 아닌 곳이 어디인지를 따져 묻고 싶었다.

지금 학교는 또 입시를 위한 평가 시기다. 그런데 큰 문제는 학생들의 평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학생들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겠다는 수행평가들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큰 시험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과정중심 평가이지 지금 학교들은 기말고사까지 서술형 평가를 한다고 또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수행평가를 포함하여 서술형 평가를 없애달라는 국민청원을 넣겠다는 학생들의 생각에 필자는 적극 동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