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라
한국 외교,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라
  • 등록일 2019.06.24 20:14
  • 게재일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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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한국의 외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미동맹은 균열되어 있고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북·중·러 협조체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한·미·일 공조체제는 와해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빌미로 패권전쟁을 벌이면서 서로 자신의 편에 줄을 서라고 협박하고 있는데 우리의 대응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거의 올인 하다시피 한 북핵 중재외교도 난관에 봉착하면서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게 중재자 행세하지 말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 참사(慘死)는 ‘정치적 이념에 토대를 둔 장밋빛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교는 ‘정치적 이념(ideology)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fact)’에 바탕을 두고 그 전략을 모색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 전략의 수립 및 집행에서 우리에게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우리의 외교환경은 세계를 움직이는 미·일·중·러 등 4강에 포위되어 있으며 ‘국제정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국제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은 듣기에 좋을지는 모르지만 비현실적이다. 남북 분단은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한 강대국정치의 산물이었다. 이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예리하게 충돌하는 한반도에서 상대적으로 힘의 열세에 있는 한국 외교가 감당해야 할 제약요인이다. 둘째, 미·중 패권전쟁(hegemonic war)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현재의 세계정치질서에서 패권국은 미국이며, 그에 대한 도전국은 중국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동맹국이고 중국은 한국과 전략적 협력관계에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확전(擴戰)시키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관세문제가 아니라, 그 본질은 세계적 패권전쟁의 일환이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외교는 양국 모두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만, 패권전쟁이 격화되어서 양국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국익에 유리한 전략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셋째, 북한은 현재 핵보유국이며, 핵보유국(북한)과 비핵국가(한국) 간의 1 대 1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핵 공격을 받았던 일본은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만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한국을 겨냥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비핵국가인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인 동시에, 한미동맹의 현실적 중요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은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라는 사실이다. 국민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삶의 질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안보이익이 경제이익보다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외교 전략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상정한다. 이러한 사실은 안보는 미국에, 그리고 경제는 중국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만약 양국이 충돌하게 된다면 어느 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힘과 국익이 지배하고 있는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한국외교는 이념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을 두고 실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용외교는 정치적 이념에 집착하는 아마추어 외교관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전문외교관들에 의해서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전문외교관들로 구성된 외교부의 역할은 약화된 반면, 정치적 이념으로 무장한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외교 참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성공하는 외교는 현실을 직시하지만 실패하는 외교는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을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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