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저장된 그 곳, 쌓인 이야기조차 맛깔스럽다
시간이 저장된 그 곳, 쌓인 이야기조차 맛깔스럽다
  • 등록일 2019.06.20 20:04
  • 게재일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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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이긴 경북의 노포 맛집들 <상>

경산시 남산식육식당 ‘뭉티기’.
경산시 남산식육식당 ‘뭉티기’.

◇ 제사와 맞이에 가장 중요한 고기



쇠고기는 귀했다.

쇠고기는 ‘우육(牛肉)’이 아니라, ‘금육(禁肉)’이었다. 쇠고기는 제사 모시고, 손님맞이 하는[奉祭祀接賓客, 봉제사접빈객] 필수음식이었다.

제사와 손님맞이가 잦았던 경북 지방에는 쇠고기 문화도 발달했다. 직화로 굽는 불고기와 신선한 상태로 먹는 육회 등이다.

영천의 ‘편대장영화식당’은 육회로 널리 알려진 노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쯤 변한다.
30년.
갓난애는 청년이 되고,
청년은 장년이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경북매일신문 29주년.
이제 막 ‘어른’이 되려는 참이다.
29주년 경북매일을 넘어선
경북, 대구의 노포 맛집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고기 문화’는 감영이나 큰 누각이 있는 도시에서 발달한다.
고기는 향교 등의 제사와 손님맞이의
필수품이었다.


대구, 경북의 칼국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국수를 만들 때 밀가루에
적정한 양의 콩가루를 섞는다.

안동 건진국시.
안동 건진국시.

터미널 바로 옆에 식당이 있다. 외부에서 영천으로, 영천에서 외부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는 뜻이다.

‘할머니’가 우둔살의 심줄을 일일이 발라낸 후 육회로 냈던 쇠고기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경산시 남산면의 ‘남산식육식당’은 외진 곳에 있다. 경산시 등 인근 주민들이 드나들던 지역 노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경우다. 고기를 손질한 후 남은 자투리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호남사람들은 ‘육회’와 ‘육 사시시미’를 구분한다.

호남의 육 사시미는 영남의 뭉티기 고기다.

살코기가 많고 기름기가 적은 부분의 심줄을 걷어낸 후, 듬성듬성 자른다. 고기 두께가 두꺼우니 뭉티기 고기라고 불렀다.

쟁반에 담은 다음, 쟁반을 수직으로 세워도 고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감영(監營)이 있었던 대구에는 쇠고기 소비가 많았다.

뭉티기 고기가 대구에서 유행한 이유다. 향촌동의 ‘너구리식당’이 뭉티기 고기의 원조라고 알려져 있다. ‘왕거미식당’도 오래된 뭉티기 고기 노포다.

흔히 ‘대구 뭉티기 고기 3대 노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손에 꼽는 집이다. 두 집 모두 실내 분위기는 어수선한 포장마차 같다.

안동 풍산읍의 ‘대구식육식당’, 경주 아화의 ‘서면식육식당’도 외진 곳에 있지만 권할 만한 곳이다. ‘대구식육식당’은 50년을 넘겼다. 두 집 모두 음식량이나 질이 모두 푸근하다.

 

영천시 편대장영화식당 육회.
영천시 편대장영화식당 육회.

‘대구식육식당’은 쇠고기로는 보기 드물게 ‘근 단위’로 고기를 내놓는다. 불고기 전문점이다. “돼지고깃값으로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집”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경주 서면의 ‘서면식육식당’ 역시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집이다. 음식의 질도 수준급. 고기를 살 수도 있다.

영덕의 ‘아성식당’이나 성주의 ‘새불고기식당’도 불고기 전문점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집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불고기판 위에 시금치가 가득하다. 쇠고기 불고기에 당면 등을 사용하는 집은 흔하지만, 시금치를 얹는 경우는 드물다. 얼마쯤 억센 시금치를 얹어서 익힌 불고기에는 시금치의 단맛이 배어든다.

쇠고기 흔한 곳에 돼지고기가 빠질 리 없다.

예천 용궁의 ‘단골식당’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순대 노포’다. 토렴한 국물 맛이 아주 강하다. 용궁은 인근의 농, 축산물이 모이는 교통의 요지였다.

 

영덕군 아성식당 불고기.
영덕군 아성식당 불고기.

우시장이 가까이 있었고 물산도 풍부했다. 50년 이상 업력을 지닌 ‘단골식당’이 자리한 이유다.

역시 노포인 경주 안강의 ‘승진식당’은 묘한 돼지고기 전골이 재미있다. 간장을 넣은 전골 국물인데 정작 형태는 돼지찌개 식이다. 달싹한 맛이 일품. 기름기가 적절하게 있는 부위를 사용한다. 먹고 난 후, 밥을 볶아도 좋다.

경남 밀양과 대구는 돼지국밥의 성지다. 밀양과 대구는 대도시였다.

대구에는 감영이 있었고, 밀양은 영남루가 있는 대도시였다. ‘고기 문화’는 감영이나 큰 누각이 있는 도시에서 발달한다. 고기는 향교 등의 제사와 손님맞이의 필수품이었다.

대구에는 돼지국밥 골목이 있다. ‘이모식당’은 50년 가까운 업력을 자랑하는 노포. 손님이 주문하면 머리 고기 등을 썰기 시작한다. 막 손질한 고기는 미리 썰어둔 고기와 맛이 다르다.

 

대구시 성화식당 돼지국밥.
대구시 성화식당 돼지국밥.

‘성화식당’도 대구의 노포 돼지국밥 맛집이다.


신선한 뼈, 고기를 구한 다음, 늦은 밤 피 빼기를 하고 삶는다. 밤새 국물을 곤 후, 다음 날 점심 무렵부터 국밥을 내놓는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부추겉절이도 없다. “고기 맛을 해치기 때문에 부추를 내놓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봉화군 봉성면의 ‘청봉숯불구이’, 김천 지례의 ‘장영선 원조지례삼거리불고기’, 예천 읍내의 ‘동성분식’은 특이한 음식을 내놓는다.

‘청봉숯불구이’는 ‘돼지고기+솔잎’이다. 주문을 받은 후, 별도의 공간에서 고기를 굽는다. 굽는 과정에 솔잎의 향을 고기에 더한다. 손님상에 내놓을 때도 고기 접시 아래 솔잎을 깐다. 솔잎의 은은한 향기가 고기에 밴다.

인근에 30년 이상의 업력을 지닌 집들이 몇몇 더 있다.

‘동성분식’은 태평추를 내놓는 집이다. 한적한 골목이다. 메밀묵과 신 김치, 돼지고기를 더한 음식이다. 연탄불 위에 올리고 ‘끓여서’ 먹는다. 김 가루와 고춧가루 정도를 더한 투박한 음식이다. ‘태평추’는 ‘탕평채’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정확지는 않다.

 

안동시 골목안손국수.
안동시 골목안손국수.

‘장영선 원조지례삼거리불고기’도 업력 50년을 넘겼다.

오래전 가정 음식이었던 고추장 돼지 불고기를 내놓는다.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던 ‘지례의 토종 돼지’ 고기를 사용한다. 재래, 토종 돼지는 개체 크기가 작고 살이 찰지다. 골목 전체가 지례 돼지고기 전문점이다. 그중에서도 노포 맛집이다.

소, 돼지 이외에 닭도 대중적인 식재료였다.

장계향의 ‘음식디미방’에도 백숙 등 닭요리가 있다.

안동의 서부시장은 찜닭으로 유명하다. ‘안동찜닭’으로 부른다. 백숙이나 닭볶음탕과는 달리 간장 베이스다. 각종 채소 등을 넣고 전골 형태로 끓인다. 시장 골목 통에 여러 가게가 있다. 그중 ‘원조안동찜닭’이 노포다.

 

포항 구룡포의 까꾸네모리국수.
포항 구룡포의 까꾸네모리국수.


◇ 국수, 귀한 제사 음식으로 시작하다



국수를 제사에 사용했다고 하면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

경북 안동에도 이제 국수 제사를 모시는 집은 드물다.

음식점은 아니지만, 안동 임동면의 ‘지례예술촌’에서 제사 국수인 ‘메국수(멧국수)’를 본 적이 있다.

‘메국수’는 제사에서 밥(메)처럼 사용하는 국수다. 제사의 메국수는 ‘안동 국시’의 시작이다.

제사 국수는 사라졌지만 건진국시, 제물국시, 칼국수는 남았다.

안동 서후면의 ‘경당종택’은 조선 중기 유학자 경당 장흥효(1564~1633년)의 후손이 살고 있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친정이다. 경당은, 퇴계 이황(1501~1570년)-학봉 김성일(1538∼1593년)로 이어지는 학통을 물려받았다.

지금도 경당종택에서는 경당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를 모시고 있다. 두어 해 전까지는 종부 권순 씨가 국수를 만들었지만, 몸이 아프니 더 국수를 내놓지 않는다. 경당종택에서 ‘종택 스테이’를 하면 다음 날 아침 ‘반가의 아침밥상’을 만날 수 있다.

정갈하고, 소박하면서 품위가 있는 밥상이다.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등 나물과 간고등어, 북어보푸라기, 안동고춧가루 식혜 등이 이채롭다. 전문식당은 아니지만, 종부(宗婦)의 밥상은 50년을 넘겼다.

업력은 길지 않지만, 안동의 ‘골목안손국수’는 경당종택의 종손이 즐겨 찾는 건진국시, 제물국시 전문점이다.

 

예천 용궁 단골식당 순대.
예천 용궁 단골식당 순대.

대구 서문시장에는 여느 경북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칼국수, 수제비 골목이 있다. ‘합천할매손칼국수’가 노포 맛집이다.

가게 앞 좁은 골목 한쪽에서 홍두깨로 반죽을 밀고, 칼국수를 만든다. 가격도 낮은 편(4천 원)이고 양도 넉넉하다.

대구, 경북의 칼국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국수를 만들 때 밀가루에 적정한 양의 콩가루를 섞는다. 고명으로 사용하는 채소는 채 썬 애호박과 얼갈이배추 혹은 배추를 사용한다.

퍼런 배춧잎이 있으면 대부분 대구, 경북의 칼국수다. ‘합천할매손칼국수’도 마찬가지.

경주 배동의 ‘삼릉고향칼국수’는 족 반죽으로 유명한 집이다. 반죽 덩어리 위에 신문지와 비닐 등을 덮고 발로 밟아서 다진다.

영주 풍기의 ‘서부냉면’은 외부에서 온 음식이 경북에서 자리 잡았다. 업력은 40년을 훌쩍 넘겼다. 국수가 강세인 곳이다. 북쪽에서 유행했던 평양냉면이 자리 잡았다. 특이한 경우다.

한때 ‘한강 이남에서 유일한 평양냉면 전문점’이라는 평을 들었다. 고기와 냉면을 내놓는다.

영주 순흥 ‘순흥전통묵집’과 포항 구룡포 ‘까꾸네모리국수’, 예천의 ‘전국을달리는청포집’도 권할 만한 노포 맛집이다.

‘순흥전통묵집’은 경북 북부의 묵, 두부 음식을 잘 보여준다. 묵밥은 경북의 음식이다. 육수에 메밀묵과 김 가루, 썬 김치 등을 넣고 비빈다. 모두부 한 접시를 더하면 술과 밥이 모두 가능하다.

‘모리국수’는 바닷가 음식이다. 잡어탕을 끓인 후, 국수를 넣어 먹는 바닷가의 서민 음식이다. 미처 팔지 않은 잡어를 대중없이 넣고 끓인다. 구룡포 ‘까꾸네모리국수’가 노포 맛집이다.

‘전국을달리는청포집’도 노포 맛집이다. 청포(묵)는 황포묵과 뿌리가 같다. 묵은 메밀, 도토리 등으로 만든다. 청포 혹은 황포묵은 녹두로 빚는다. 녹두 청포묵에 치자 등으로 물을 들이면 황포묵이 된다.

청포묵은 메밀, 도토리묵과는 달리 ‘포르스름한 때깔’이 품위가 있다. ‘전국을달리는청포집’에서는 탕평채도 맛볼 수 있다. <계속>

/황광해(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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