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시인
김현욱 시인

2015년 7월 4일,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9급 세무직 공무원 면접이 치러졌다. 일부 면접관들이 응시생들에게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봐라’, ‘태극기 사괘가 무엇이냐’ 등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진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참고로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데니 태극기’다. 구한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관 데니에게 하사한 것이다. 태극 문양이 조금 다르지만 색과 사괘까지 지금의 태극기와 거의 흡사하다.

당시 공무원시험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대체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전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 속 국기 하강식 장면을 두고 ‘애국심’을 얘기했고,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 ‘애국가 4절을 완창’ 못하는 신임 검사들에게 ‘나라 사랑의 출발은 애국가’라고 질타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인사혁신처에서는 “스펙 위주가 아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별해 뽑겠다”고 공언하면서 “적어도 공무원이 되려는 이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 국민에 대한 봉사의식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긴, 2016년에 성인문해학교에 입학했던 예순의 어머니와 작년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딸아이가 동시에 ‘태극기 그리기’와 ‘애국가 4절까지 외우기’ 숙제를 가져왔다. 한국에서 ‘배움의 출발은 애국가와 태극기’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나라 없는 설움’을 당한 선조들에게 태극기와 애국가는 가슴 뭉클한 조국의 상징이고 울림이었을 것이다. 태극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882년 일본에서 발행한 ‘시사신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태극기를 그렸는데, 그가 묵었던 숙소 고베의 니시무라 여관에 태극기를 걸어놓았다. 그것을 일본인 기자가 그려 신문에 게재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애석하게도 당시 박영효가 그린 태극기는 국내에 없다. 그것을 2008년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한철호 교수가 국내에 소개했다. 태극이 회전하는 방향과 모양, 사괘의 색이 푸른색에 가까운 것이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

고종이 태극기의 존재를 공표한 것은 1883년이다. 태극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우표를 활용했다. 1884년에 나온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에는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태극기는 중심에 위치한 원형의 ‘태극’에서부터 시작된다. ‘태극’이라는 말은 ‘주역’에 나온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태극’이라고 한다. ‘태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형태와 의미에서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의 ‘태극도설’에 나온 태극은 동그라미가 여러 개 있고, 반으로 갈라져서 흑백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태극무늬 나무상자’가 발견됐다. 관청에서 공문서를 받고 보낼 때 봉투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7세기 초 백제 사비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국 태극의 최초 기록보다 무려 400년이나 앞선다. 신라에서는 태극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태극 모양을 많이 그렸다. 경주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보검과 감은사지 장대석에 새겨진 게 삼태극이다. 한국 최초의 주자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합호서원의 외삼문에 삼태극이 그려져 있다.

태극기에서 하나의 괘는 세 개의 효가 모인 것이다. 하나로 이어진 것을 양효(陽爻), 나눠진 것을 음효(陰爻)라고 한다. 우리는 대자연의 원리를 담은 건곤이감(乾坤離坎)의 사괘를 사용한다. 세 개의 양효가 있는 ‘건’은 하늘, 세 개의 음효가 있는 ‘곤’은 땅, 가운데 하나의 음효가 있는 ‘이’는 불, 가운데 양효가 하나 있는 ‘감’은 물을 상징한다. 태극기를 그릴 때 ‘건곤’, 하늘과 땅이 만나는 대각선의 중심에서부터 그림을 시작해야 한다. 그 중심점을 기준으로 태극과 건, 곤을 그려야 한다. 오랜만에 태극기를 한 번 그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