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음기는 음파를 바늘로 새긴다. 그러나 디지털은 음파를 ‘0’과 ‘1’로 수치화한다. 디지털 혁명은 규모도 부피도 없이 세계를 잠식한다.

△쓸모없는 기계

여기 디지털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이 기계를 본 공상과학소설가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는 이 장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다. 시거 상자 크기의 조그만 나무상자위에 한 개의 스위치가 달려있다. 만약 스위치를 올리면, 분노의 목적성 있는 진동이 일어난다. 뚜껑이 천천히 열리며, 바닥에서 손이 떠오른다. 그 손은 스위치를 아래로 내리고 상자 안으로 도로 들어간다. 관이 최후에 닫히듯이 뚜껑은 철컥 닫히고, 진동은 멈춘 후에 이전의 평화로움으로 돌아간다.”

클라크 아서는 뭔가 굉장한 장치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이 기계는 아주 간단하게 작동한다. 상자 위의 스위치를 켜면 상자 속에 있는 로봇팔이 나와 스위치를 끄고 들어가버린다. 이것이 전부다. 사람들이 이 기계에 붙인 이름은 ‘쓸모없는 기계(Useless Machine)’다. 더 가혹하게는 ‘가장 쓸모없는 기계(The Useless Machine)’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클라우드 섀넌과 함께 이 기계를 고안한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는 ‘궁극의 기계(ultimate machine)’라 명명했다. (마빈 민스키는 MIT의 인공지능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로 인공지능(AI)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다.)

이 기계는 스위치를 켜(on)면 끈(off)다. ‘on’과 ‘off’이라는 정보, 인간에게는 무척 단순해 보이는 정보지만,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알 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언어를 기계가 알 수 있는 언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이렇게 전환된 정보를 디지털(Digital)이라 부른다. 그런 점에서 궁극의 기계는 디지털 기계의 장단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기계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디지털은 중간값을 가지지 않는데, 쉽게 말해 디지털은 애매모호한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디지털은 애매모호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며, 그것을 표현할 방법도 없고, 따라서 표현도 할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것이 디지털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계는 분명한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것이 훨씬 많다. 세상에 노란색보다는 노르스름한 색이 더 많으며, 인간의 감정은 좋으면서도 좋지 않고, 슬프지만 나쁘지 않은 감정을 가질 때가 많다. 디지털은 이런 것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계는 인문학적이지 않으며, 사람들은 이것을 디지털의 한계라 말하고, 때로는 이런 식의 디지털화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지털에 대해서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런 문제는 디지털의 부분적 문제이며 개선 가능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의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뛰어넘어서고 있다. 대상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비판을 위해서라도 디지털이 이룩한 거대한 변화와 그것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좋다.

△‘지금 여기에서’의 디지털 혁명

방탄소년단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에 1위에 올랐다.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신곡인 ‘Fake Love’를 발표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히트곡이 아니라 신곡을 시상식 장에서 선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크게 인기를 끈 대스타 한 명의 공연을 빼고 방탄소년단의 신곡이 들어갔다는 것인데, 이런 신곡 발표는 비욘세, 레이디 가가와 같은 슈퍼스타들에게만 허용된다. 방탄소년단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이 공개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더욱이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팬들은 한국식 ‘떼창’과 한글 피켓을 선보였다. 미국팬들은 SNS와 유튜브를 타고 번지는 번역된 가사와 영상물을 접하며 노래를 익히고, 어떤 지점에서 노래를 따라 불러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가수들의 이름을 외쳐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외침이 아니라 팬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외치는 ‘떼창’이 가능할 수 있었다.

SNS와 유투브에 올라오는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는 소속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미(A.R.M.Y)’들에 의해 생산된다. 방탄소년의 팬클럽을 총칭하는 말이다. 방탄소년단이 가진 총기 이미지와 결합한 ‘아미’는 그야말로 ‘군대’를 방불케 한다. 이들은 노래가 출시되자 마자 자발적으로 노래를 영어, 일어, 중국어, 아랍어 등으로 번역하여 전 세계로 순식간에 송출한다.

‘아미’들은 단순히 뮤직비디오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서 다 말하지 못한 곡의 주제와 숨겨진 의미를 찾기 위해 뮤직비디오, 프롤로그, 티져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 파편적인 영상물 속에서 유기성을 발견하고 재해석한다. 이렇게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새롭게 분석되어 다시 송출된다. 아미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메시지를 재생산한다. 이들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다.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수평적 소통과 상화작용, 이것을 ‘BTS: 예술혁명’의 저자 이지영은 ‘네트워크 이미지’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예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킨다고 말했다.

‘아미’들은 SNS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퍼 나르고 자신들이 재생산한 이미지를 확산시킨다. SNS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넘어선지 오래다. 과거에 마케팅이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이뤄졌다면, SNS를 활용한 마케팅은 필수다. 페이스북 사용자수는 20억 명을 돌파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된다. 이런 시장에서는 욕구가 분출한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터넷 검색 성향, 게시하는 글, 좋아요 등을 분석하여 맞춤식 광고를 보낼 수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디지털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전체는 전체와 엮여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언제든 누구든 어디에서든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더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더 많은 정보가 유통된다.

그리고 늘 소비자에 있었던 소비자들이 생산자의 영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진기, 카메라, 편집기와 같은 생산수단은 값이 비쌌고 많은 수의 전문 인력이 다루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그런 생산수단을 소비자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결국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경계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정보를 누구나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전보다 훨씬 더 정보량이 늘어난다. 이렇게 늘어난 정보량은 새로운 기계와 새로운 기술을 추동한다.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바꾸는 것도 공학이며, 이런 정보를 저장하고 저장속도 및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반도체와 같은 물리적 기반을 만드는 것 역시 공학이다. 공학은 특정한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와 엮여 있다.

정보기술은 통신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통신기술은 컴퓨터와 관련을 맺고 있다. 이같은 얽힘들 속에서 정보기술은 통신기술을 추동하고 통신기술은 컴퓨터 기술을 향상시키고 사회는 변화한다. 변화한 사회가 다시 기술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이 거대한 선순환의 구조를 공학이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