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21세기 문맹자는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learn)하지 않고 폐기(un-learn)하지 않고 재학습(re-learn)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이다. 그는 한국교육에 대해 경고했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을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I(IoT), C(Cloud), B(Big Data), M(Mobile)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지식을 주입하고 정답을 암기하게 하는 현실이다. 이처럼 입시공부에 매달리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인가?

‘교육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대학교육의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산학공동연구, 캡스톤, 디자인싱킹이 강조되고 창의융합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소프트웨어(SW) 중심대학’을 선정하면서 대학의 질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각 대학은 ‘SW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코딩 관련 교과목을 확대하고 있다.

코딩교육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대학 교양교육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코딩을 반드시 배워야 하고 컴퓨팅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는 가정하에 교양필수 교과가 개편되고 있다. 대학의 헤게모니는 전공에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와 시장의 요구에 먼저 반응하게 되는 영역은 교양교육 분야다. 특정 교과가 교양 필수로 강조되기도 하고 또 가장 먼저 폐기되기도 한다. 강사법이 시행되어 대학 재정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코딩교육 필수화는 다른 교양교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쓰기, 토론 등 기존의 교양필수 교과가 교육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밀리거나 ‘창의융합설계’와 같은 과목으로 바뀌고 있다.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에서 매년 개최하고 있는 토론대회 올해 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코딩교육을 생각한다’였다. 학생들은 찬반토론을 하며 ‘코딩교육, 대학 교양필수 교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제를 두고 생각을 나누었다.

찬성측은 코딩은 이제 세계 공통의 언어로 전공과 관계없이 알아야 하는 필수요소이고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코딩교육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대측은 학생들의 관심과 필요가 다르기에 코딩을 의무화하는 것은 교육적 효과가 없으며 선택교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토론과정을 통해 시대의 변화와 대학 교양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자리였다.

존 카우치는 ‘공부의 미래’에서 “21세기 학습 ABC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코딩”이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시대, 교육의 회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를 필수로 배웠듯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기초인 코딩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코딩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접근권을 강화하는 교육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대학 교양교육의 근본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학생들에게도 사고와 표현교육은 여전히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창의적 사고를 지닌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의사소통교육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입시에 찌들어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했던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배우는 교양필수 교과로 글쓰기와 토론 수업은 교육적 의미가 크다. 학습의 주체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는 자세를 익히기 때문이다. ‘본립도생(本立道生)’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대학 교육의 근본은 교양교육이고 교양교육이 본질에 충실할 때 대학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 ICBM 시대 코딩공부는 필요하다. 동시에 대학 교양핵심인 사고와 표현교육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