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지난 석가탄신일에 제일 야당 대표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가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정치권에 비판이 쏟아졌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황 대표에게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측으로부터 ‘내 신앙이 우선이면 공당 대표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라’는 항의까지 받았다 한다. 처음 있는 이런 논란에 과연 정치인의 종교관은 어떠해야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기독교인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인지 대선 후보로 나선 어떤 장로 정치인의 아내는 심지어 그들의 종교를 떠나 불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법명을 받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이렇듯 기독교인 정치인들은 대부분 사찰을 방문해 떠밀리듯 알아서 합장을 했고, 이것을 언론에서는 ‘포용적 불심달래기’로 포장해왔다.

정치와 종교는 엄연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다른 영역을 주관하기 때문에 결코 가까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동전의 앞뒤와 같다. 정치의 입장에서는 종교를 이용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으며, 종교의 입장에서는 정치를 이용함으로써 다른 경쟁자(종교)에 대한 배타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의 호국불교,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의 도교와 불교의 관계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불교적 세시명절인 석탄일은 연등과 욕불행사가 가장 큰 2대행사로 꼽힌다. 연등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 깨끗한 연꽃이라는 불교적 의미가 강조된 것이고, 욕불이란 부처가 태어나자 구룡(九龍)이 와서 목욕시켰다는 설에 따라 탄생불(誕生佛)을 욕불기(浴佛器) 안에 모셔놓고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어 목욕시키는 의례를 말한다. 즉 민중의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적 의미의 의례들이다. 여기에 합장이란 불교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인도에서 행해지는 예법으로 힌디어로 ‘그대에게 보내는 경례’라는 뜻으로 서로 합장을 하는 것은 인도에서의 일상적인 인사법이다. 불교에서도 이 예법은 인사법이었으며 불타와 보살에 대한 예배의 방법이다. 이 의례는 자신의 마음이 불타와 보살에 전념하고 있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불교의례는 그에 따른 공덕을 쌓음으로써 원망(願望)을 처리하려는 신앙행위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식행사에 참여하는 출가 수행자나 신도들의 믿음에 대한 진정성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불교종단에서 불거지는 사찰 주지를 포함 조계종 유명 간부 스님들의 술 담배와 함께 밤새 벌인 억대 도박판, 무소유와 청빈을 부르짖으며 주지선거에서의 금품살포 등 지난해 세수 87세인 설조 스님이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40일 넘게 단식을 했다. 이유는 조계종단의 불행한 사태의 원인은 비(非) 비구(比丘)들의 종권장악이며,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지 않은 승려가 80년대 이후 행정을 장악하고, 군화가 사찰을 짓밟고, 노름꾼의 수괴가 수많은 불자들의 존경을 받는 스님을 종단 밖으로 내몰고, 악행의 유례가 없는 자가 종단의 행정대표가 되어도 거침이 없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숨겨둔 아내와 자녀, 재산 은닉, 학력 위조 등 조계종 총무원장인 설정 스님의 3대 의혹도 드러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파일에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기독교인인 황 대표의 태도에 비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표면적인 허례허식보다 내면의 진정하고 경건한 마음의 봉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형식에 의미를 두고 얽매어 남을 평하기보다 진정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며 고승 원효와 관련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잊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