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
포항물회 원조는 좋은 채소와 고추장, 거칠게 썬 날생선 그리고 맹물

고추장으로 비비는 승리회식당의 전통 물회.

병아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알고 따른다. 외지인에게 포항물회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포항물회’가 ‘진짜 포항물회’가 된다. 불행히도 처음 먹어본 포항물회가 수준 이하면? 포항물회는 맛없는 음식, 엉터리가 되고 만다.

포항물회 사이에 맹물과 고추장, 물엿 덩어리 초고추장, 육수 슬러시를 둘러싸고 ‘다툼’이 진행 중이다. 외지 관광객들은 알 리가 없다. 포항 토박이들은 알면서 짐짓 모른 체한다. 몇 차례 물어보면 “나는 이 집 간다”라고 말한다.

회(膾)와 물회 이야기다. 물회도 회의 한 종류다. 회의 역사는 길지만, 물회의 역사는 짧다. 물회의 역사도 길 테지만, 상업화의 역사는 짧다. 조선 시대 회 이야기로 글을 연다.

경아횟집에서 물회의 재료가 되는 생선을 썰고 있다.
경아횟집에서 물회의 재료가 되는 생선을 썰고 있다.

◇ 금제작회(金虀斫膾)를 아시나요?

두어 해 전, 어느 지면에 ‘금제작회’를 소개했다.

“우리 생선회는 일본식, 일본에서 받아들인 문화”라는 말이 틀렸다고 이야기했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회나 회 문화가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금제작회’라고 했다.

멀리서 보낸 햇생강 어찌나 고마운지/시냇가 별장 채마밭에서 금방 캐낸 것이리라/홀연히 생각나는 금강의 그 별미/불그스름 여린 싹들 금제작회(金虀斫膾) 맛이라니

계곡 장유(1588∼1638년)의 ‘계곡선생집_제33권’ 칠언 절구 중 ‘차운하여 나응서에게 수답하면서 생강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다’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 금제작회가 나온다.

햇생강을 보낸, 남간 나응서(1584∼1638년)는 문신으로,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집했던 의병장이었다. 몇 차례 벼슬살이를 했지만, 생애 대부분을 향리에서 검약한 선비로 살았다.

계곡 장유와 남간 나응서는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이들이 아니었다. 선물로 보낸 ‘시냇가 별장 채마밭에서 캐낸 햇생강’이 대단한 물건이 아니듯이 ‘금제작회’ 역시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금제작회’는 ‘금제’와 ‘작회’다. 금제는 금빛이 나는 푸성귀 정도다. 시의 한 구절인 ‘불그스름한 여린 새싹’이 바로 ‘금제’다. 여뀌로 추정한다. ‘작회’는 잘게 썬 회다. 금제작회는 금제옥회(金虀玉膾)라고도 부른다. 금제옥회는 ‘좋은 채소를 곁들인, 뽀얀 회’다.

문제는 금제작회에 덧붙인 설명이다. “서리 내린 뒤 석 자 미만의 농어[鱸魚]를 잡아 회를 뜬 뒤 향기롭고 부드러운 화엽(花葉)을 잘게 썰어서 묻혀 먹는 것”이라는, 덧붙인 문장을 그대로 옮겼다. 서리 내린 후의 부드러운 꽃잎은 국화일 것이다. “국화, 국화 꽃잎도 먹느냐?”는 질문은 어리석다. 교산 허균(1569∼1618년)은 ‘도문대작’에서 서울(한양)의 계절 음식으로 ‘국화 화전(菊花 花煎)인 국화병(菊花餠)’을 손꼽았다.

주변에 호사가, 호기심이 많은 이들이 있다. ‘금제작회’를 읽고, 죄다 연락이 왔다. 내용은 뻔하다. “빨리 농어를 구해서 국화 화엽에 찍어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금제작회, 금제옥회는 특정한 회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좋았던 회를 일반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예나 지금이나 시(詩)는 얼마쯤의 ‘과장’을 더하기도 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채소와 더불어 먹었던, 가늘게 썬 뽀얀 회’다. 이게 국화 꽃잎 운운하는 통에 대단한 회로 부풀려진 것이다.

회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목재 홍여하(1620∼1674년)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향리의 큰 유학자였다. 벼슬도 높았지만, 안동, 예천, 상주 등 지금의 경북 북부 지방에 은거하며 많은 글을 남겼다. ‘목재집 제2권_시’에 나오는 ‘죽파헌(竹坡軒)의 여덟 경치를 노래하다’ 중 한 부분이다(시탄의 가을 낚시).

푸른 마름 물가에서 고깃배를 저으니/하룻밤에 가을 물이 삿대 반쯤 줄었네/낚시 마치고 등해(橙薤) 가져오라 재촉하는데/석양에 뛰어오르는 물고기가 번뜩이네

예나 지금이나 낚시꾼들 혹은 낚시꾼 주변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다. 낚싯대도 챙기기 전에 회부터 찾는다. ‘등해(橙薤)’의 ‘등(橙)’은 귤, 등자 나무, 등자 나무 열매 등을 이른다. 귤은 제주 특산으로 구하기 힘들었으니 탱자 등 신맛이 나는 무엇이었을 것이다. ‘해(薤)’는 염교다. 조선 시대 기록 여기저기에 귤이나 탱자 종류를 짓이겨 회와 더불어 먹었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귤, 탱자와 더불어 염교도 회와 더불어 먹는 것이다. 더러 ‘등해’를 회와 채소를 모은 ‘생선회 모둠 세트’로 여기기도 한다. 역시 금제작회의 다른 버전이다.

조선 시대에는 ‘가늘게 썬 회’를 최고로 쳤다. 시작은 중국 공자다.

공자의 ‘논어_10편_향당_8장’에 ‘食不厭精 膾不厭細(사불염정 회불염세)’라는 표현이 나온다. “(공자께서는) 밥[食, 사]은 정히 지은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셨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는 표현이다.

조선 시대 내내 이 문장은 두루 인용된다. 고종 시대, 경연에서도 이 표현은 나온다. 어린 국왕을 두고 노대신들이 묻고 설명한다. “‘공자께서 잘 지은 밥과 잘게 썬 회를 좋아하셨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싫어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표현했을까요?”가 질문이다.

답은 “굳이 구복(口腹)을 위하여 좋은 음식을 찾지 아니한다”이다. 잘게 썬 회가 좋지만, 맛있게 먹기 위하여 굳이 힘들여 찾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밥상에 앉아 반찬 평하거나 타박하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싫어하지 않다[不厭]’는 군왕과 유학자의 도리다.

금제작회, 금제옥회도 마찬가지다. 잘게 썬, 채소 곁들인 회가 좋지만, 굳이 구복을 위하여 찾지 않는 것이 옳다.

생미역을 곁들인 명천회식당 물회.
생미역을 곁들인 명천회식당 물회.

◇ 문제는 ‘단맛’이다

포항물회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단맛이다.

어느 물회나 마찬가지다. 시작은 어부, 바닷가의 일상 음식이다. 물회의 대상은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다. 그중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잡어다. 포항물회는 가자미다. 가자미는 종류를 바꿔가며 1년 내내 잡힌다.

포항에서 널리 먹었다는 ‘등 푸른 생선 물회’도 마찬가지다. 진귀한 생선이 아니라,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다. 겨울철의 고등어, 청어, 방어 등이다.

이른 아침 바다로 나간다. 바쁘다. 제대로 밥 먹을 틈이 없다. 논밭은 농부를 기다려 주지만, 바다는 어부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배가 항구에 들어오면 더 바빠진다. 여자들도 한가하지 않다. 마땅히 밥상을 차리기 힘들다. 잡어 몇 마리를 뼈째 썬다. 고추장은 맛도 있지만, 생선 비린내를 가린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무 등을 썬다. 거칠게 썬 회와 고추장, 무 썬 것이 뒤섞인다. 비벼서, 밥 한술, 비빔 회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다.

문제는 ‘국물’이다. 국물 없는 밥은 맨밥이다. 맨밥은 목이 메고, 눈물이 난다. 멀리 타지로 떠나는 아들, 딸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먹이지 못한 ‘엄마’는 가슴에 못이 박힌다. 한민족에게 국물 없는 밥상은 없다. 회와 밥이 조금 남았다. 회에 맹물을 붓는다. 드디어 국물이 있는 밥상이 된다. 물회다.

‘보이지 않는 싸움’의 시작은 ‘단맛’이다. 원형 포항물회는 달지 않다. 불행히도 외지 관광객은 단맛에 길들어 있다. 대부분 가게가 상당히 단 물회를 내놓는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단맛이 물회의 맛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태화회식당의 물회 상차림.
태화회식당의 물회 상차림.

단맛 물회와 전통 물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 ‘액상과당 잔뜩 넣은 육수 물회’와 전통 고추장을 사용한 물회 사이의 경쟁이다. 외지 관광객은 알 리가 없다. 단맛을 좋아하는데 전통 고추장, 맹물을 만나면 “아무 맛이 없다”고 타박한다. 생선 고유의 맛을 즐기는 이가 단맛이 강한 물회를 만나면 “너무 달아서 입에 넣기 힘들다”고 불평한다.

너무 달지 않은, 전통 방식 ‘고추장 비빔 회, 맹물’을 내놓는 몇 집을 소개한다.

죽도시장 안의 ‘승리회식당’은 고추장으로 비비는 전통 물회가 가능하다. ‘포항물회’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북부시장의 ‘오대양물회’는 ‘고집’이 세다. 여전히 비빔 회를 고집하고, 손님이 육수를 찾으면 ‘얼음 몇 조각 넣어서 먹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북구 여남동의 ‘태화횟집(태화회식당)’도 고추장, 맹물 물회가 가능한 집이다.

북부시장 안의 ‘경아횟집’. 공간이 좁다는 점 빼고는 흠잡을 데 없다. 비빔 회를 고집하고, 가게 앞에서 회 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생선의 싱싱함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도구리 ‘세영자연산활어회’은 포항에서도 외진 곳에 있다. 형제가 생선 공급, 횟집 운영을 나눠서 한다고 들었다. 횟감이 아주 좋다. 구룡포까지 나갔다면 ‘해궁회타운’도 권할 만하다. 경치가 좋고 반찬도 정갈하다. 전통적인 고추장 물회가 가능하다.

오래전부터 유명한 ‘새포항물회’ ‘포항특미물회’도 전통적인 고추장, 맹물 물회가 가능하다. 북부시장 부근, ‘명천식당’과 ‘울릉천부식당’은 ‘등 푸른 생선 물회’가 아주 좋다. ‘명천식당’은 물회에 생미역을 내놓고, ‘울릉천부식당’은 미역과 쪽파 혹은 썬 대파를 내놓는다. 두 집 모두 추천한다.

회 맛을 넘어서는 단맛이나 참깻가루 대신 ‘금제작회의 국화잎’ 혹은 귤을 짓이겨 넣었던 상큼한 물회를 기대한다. 음식은 상상력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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