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를 맞은 경산자인단오제가 6월 7일부터 9일까지 자인 계정 숲 일원에서 열린다.

1830년대에 발간한 ‘자인읍지’에는 신라시대에 자인 지방을 자주 침략해 노략질을 일삼은 왜구를 한장군이 여동생과 함께 여장을 하고 꽃으로 장식된 화관을 쓰고 유인해 섬멸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처럼 한장군은 자인지역 수호신으로 숭배받아 음력 5월5일 단오를 전후로 지역민이 제를 지내고 춤(여원무)과 배우잡희를 베풀어 한장군의 혼을 위로한 한장군놀이로 명명되다 2007년 경산지역을 대표하는 경산자인단오제로 발전했다.

한장군놀이는 세간에 알려져 지속해 오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 그 명맥이 끊어졌다가 1946년 복원됐고, 196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여원무가 국무총리상을 수상, 이듬해인 1970년 제1회 자인단오를 개최했다. 그리고 1년 후인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됐으며, 놀이의 백미는 군무(群舞)인 여원무(女圓舞)다.

경산자인단오제는 호장장군행렬과 한장군대제. 여원무, 자인단오굿, 자인팔광대 등 다섯 마당으로 진행된다. 이중 자인팔광대와 호장장군행렬은 지역의 특색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통문화다.

지역 특색을 담아 단오에만 시연되는 자인팔광대.

▲자인팔광대
고려사(高麗史)는 탈놀이 하는 자를 광대라 칭하고 있다. 줄 타는 사람과 판소리꾼 및 일반배우들을 널리 배우라 불리고 배우들의 잡희(춤과 음악이 가미된 일종의 가면극)는 경산자인단오제 때마다 여원무와 공연돼 오다 어느 시기부터 자인팔광대로 독립했다.

자인팔광대는 여타의 탈놀이와 다른 특색이 있다. 도시형의 가면극은 공연 전에 선전을 위한 길놀이, 명절이나 수시공연 등 공연시기가 일정하지 않고 농촌형은 정초에 시작하지만 자인팔광대는 오로지 단오제 때만 공연됐다.

또 놀이판을 이끄는 양반은 늙고 거지같이 초라한 행색과 몰골은 흉측하지만, 근본이 양반이라고 뽐내는 하인 말뚝이가 등장하는 것은 말뚝이가 병신이 아니면 저능인인 것과 차별되고 결국 말뚝이가 양반에게 굴복해 양반이 승리하는 것으로 끝을 내어 다른 지방의 양반극과 대조된다.
 

▲호장장군행렬
내외국인의 관심도를 높이고자 2007년부터 도입됐다. 한장군대제를 지내러 가는 제관들의 행렬인 호장장군행렬은 한장군에 대한 지역민들이 갖는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현치(縣治)가 있었던 자리에 모여 한장군이 진을 쳤던 곳까지 와 여원무를 추고 한당(한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가 제례하고 되돌아와서 고을 원에게 여원무를 보이고 해산했다 한다.

특히 호장장군행렬에 동원되는 평민들이 현감 복색을 갖춘 것은 반상이 뚜렷했던 조선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장군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숭상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호장장군행렬의 모습에서는 고대사회로부터 조선시대 곧 근대사회의 풍습을 살펴볼 수 있다.

/심한식기자shs1127@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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