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파문 딛고 37년 만에 고국서 새 앨범 낸 계은숙
마약 파문 딛고 37년 만에 고국서 새 앨범 낸 계은숙
  • 연합뉴스
  • 등록일 2019.05.13 20:24
  • 게재일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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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노력
무너졌지만
‘잃어버린 나’
찾아 다시 노래”

“제 노력과 에너지, 모든 것이 몰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다져온 시간이 무너진 게 가슴 아파요. 정말 남들 걱정시키지 않고 살아야지 했는데….”

가수 계은숙(57)의 말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제 잘못이니 치부를 드러내고 혼나야 한다”는 자책도 했다.

26년간 일본에 발을 딛고 ‘엔카의 여왕’으로 군림한 그는 지난 10여년간 그 명성이 무색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졌다. 유명인으로서 사생활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탓이 컸지만, 잇단 이미지 추락에 팬들과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 2007년 일본에서 각성제 단속법 위반죄로 이듬해 강제 추방된 것은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5년간 칩거한 그는 2014년 새 앨범 소식을 알리고 TV에 출연하며 32년 만의 고국 활동에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앨범은 나오지 않았고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2015년 마약과 사기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딸이 고국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소원한 아흔 살 노모는 계은숙 만기 출소 두 달 전 세상을 떠났다.

“충주 납골당에 모셨는데, 그 한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평생 가슴에 묻어야겠죠. 어머니가 아버지 없이 저를 키우셨거든요. 진짜 먹기도 싫고 잠도 안 오고 제가저를 죽이고 싶었어요.”

최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계은숙을 만났다.

그는 주위 도움으로 1982년 한국을 떠난 지 37년 만의 새 앨범 ‘리:버스’(Re:Birth) 발매를 앞뒀다. 오는 15일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앨범 쇼케이스도 개최한다. 앨범엔 재기의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부활)는 제목이 붙었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는 게 말은 쉬운데…”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평생 노래로만 살았는데 인생의 브레이크가 있었잖아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인데…. 너무 아프고 힘들고 어렵고 순탄하지 않았어요. 수십년간 팬들이 저를 부모처럼 안아줬는데 너무 미안해서…. 끝까지 응원해준 팬들에게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다시 노래하고 싶어요.”

단아한 미모의 계은숙은 1977년 럭키 샴푸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매력적인 허스키한 음색 덕에 1979년 ‘노래하며 춤추며’와 ‘기다리는 여심’을 내고 데뷔해 이듬해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노래 인생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그는 “처음 한국에서 시작할 때 고속도로 휴게소를 다니며 노래를 틀어달라고 열심히 홍보한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스타덤에 막 오른 그는 1982년 돌연 일본으로 떠났다. “인간관계에 대한실망감” 때문이라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일본어도 모르고 간 타국 생활은 자신과 싸우는 고된 시간이었다. 낮엔 노래 연습하고 저녁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문화가 다르고 인지도가 없으니 맨몸으로 부딪혀야 했다. 다행히 일본 작곡가 하마 게이스케에게 발탁돼 1985년 ‘오사카의 황혼’(일본 제목 ‘오사카 보쇼쿠’)으로 현지 엔카 가수로 데뷔했다.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 곡이 처음부터 반응이 온 것은 아니었어요. 오사카에서 먼저 인기를 얻었고 이후 도쿄로 불이 붙었죠.”

1988년 일본유선대상 그랑프리를 차지한 그는 그해부터 1994년 NHK ‘홍백가합전’에 7회 연속 출연했다. 1990년에는 일본 레코드 대상인 ‘앨범 대상’을 받으며 ‘엔카의 여왕’으로 불렸다. 한류 물꼬를 튼 ‘원조 한류’ 가수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가 팬클럽 회원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따뜻하게 맞아준 팬들이 많았지만 한국인이니 시기, 질투를 받아 위축되기도 했다”며 “‘귀화해라, 기모노를 입어라, 개명해라’ 같은 요구에 한국 사람으로서 프라이드와 명예를 지키려고 애썼다. 지고 싶지 않았다. 속마음을 감추고 ‘감사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세 마디밖에 모르고 살았다. 성공은 상으로만 느꼈다”고 기억했다.

그는 1990년대 이혼 소식과 간간이 흘러나온 루머에도 건재했다. 그러나 각성제 소지로 일본에서 추방당하기 전, 소속사와 분쟁 등을 겪으며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 심정을 에둘러 말했다.

“나름 큰 스캔들 없이 충실히 살았는데, 계약 관련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우울증이 왔어요. 변명하자면, 혼자서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 혼란 속에서 고민하고 매니저가 없어져서 스케줄도 모르겠고, 그때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일본 시장 도전에 원망과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동경, 엄마가 외롭지 않게 1등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고생했지만 보람도 컸다. 나뿐 아니라 김연자, 장은숙 등 과거 일본 활동을 한 동료들은 모두 고생했다. 힘겨운 시간을 안아준 일본 팬들에 대한 감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떠올렸다.

실추된 이미지로 돌아온 고국 무대에 다시 발을 딛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세상의 매서운 비난이 무서웠고, 미디어에 오르내린 자신의 모습도 힘겨웠다고 했다. 칩거 끝에 복귀를 시도했지만 순조롭지 않았다.

“처음엔 희망이 있었어요. 제 치부가 다 드러났으니, 공황장애까지 앓으며 고통받은 마음을 좀 열고 저도 일으켜보자고요. 그런데 방송을 시작해도 앨범이 나오지 않고 유야무야 돼 의욕을 잃었죠.”

그는 “일본선 한국 사람으로 살았는데 다시 경계인처럼 사는 괴로움,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도 느꼈다”며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죄스러워서 늘 사우나에서 배회했다. 교회 가서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떠올렸다.

다시 응원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새 앨범 녹음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말 강릉에서다. 10년 넘게 제대로 쓰지 않은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그는 “녹음하는 순간에도 ‘노래를 잘하자’가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생각이었다”며 “노래를 녹음하며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됐나’ 돌이켜봤다”고 말했다.

타이틀곡 ‘길’에는 인생을 반추하고 상처로 남은 시간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앨범에는 ‘길’과 함께 ‘헤이맨’, ‘믿어줘’(Trust Me & You) 등 신곡 9곡과 ‘기다리는 여심’ 등 새롭게 리메이크한 대표곡 3곡까지 총 12곡이 수록됐다. 신곡 중엔 계은숙이 추구하던 엔카, 발라드 장르에서 벗어나 강렬한 느낌의 밴드 연주에 허스키한 음색이 조화를 이룬 곡들도 있다.

계은숙은 “세대교체는 됐지만, 팬들과 다시 노래로 같이 울고 같이 이겨내는 삶의 기록을 쓰고 싶다”며 “히트하지 않아도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으면 족하다”고 강조했다.

“음악은 제 인생이자 그림자에요. 제 노래 안에 만남의 축복, 아픔의 눈물, 즐거운 추억이 다 있으니까요. 빨리 회복해 노래로 다시 그런 감정을 교감하며 저를 찾고 싶어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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