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가 다시 뜬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가 다시 뜬다
  • 김규동 기자
  • 등록일 2019.05.08 17:38
  • 게재일 2019.0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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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日가옥 형태 보존… 먹거리·체험거리 풍성
457m 거리엔 일본 전통의상 입은 관광객 ‘북적’
KBS 2TV 새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내달부터 촬영
관광객들이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를 구경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를 구경하고 있다.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가 올해로 개장 6주년을 맞았다.
‘포항 12경(景) 중의 한 곳인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는 포항시가 2013년 12월 86억여 원을 들여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일원 457m를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조성해 개장했다.
이 과정에서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을 보수해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고, 훼손되어 가던 일본인가옥 27동도 보수했다. 인근 구룡포 공원에는 구룡포를 상징하는 용 조형물도 설치했다.
이 거리는 2012년 12월 국토해양부가 주최한 ‘제2회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6년 10월에는 지금의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일본인가옥거리의 관광객은 인접한 호미곶면의 호미곶 관광과 연계한 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 포항지진 여파로 관광객이 크게 줄어들었다가 올해 들어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 진입로에서 가옥거리로 바라본 모습.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 진입로에서 가옥거리로 바라본 모습.

▢ “타임머신 타고 일제강점기 온 느낌”

5월 첫 주말인 4일 오후 2시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를 찾았다.
일본인가옥거리는 구룡포항과 주차장, 과메기문화거리, 구룡포 공원, 아라예술촌, 과메기문화관과 인접해 있었다.
일본인가옥거리에 들어서자 출입문에 걸려 있는 ‘일본인가옥거리’라 쓴 현판이 취재진을 맞았다.
현판을 보는 순간 100년 전 일본인들의 가옥을 볼 수 있다는 설렘과 치욕스런 우리 민족의 아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출입문을 지나자 1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일본가옥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가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T자형의 일본가옥거리는 구룡포 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나눠져 있었고, 거리 좌우측에는 일본인가옥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서있었다.
마치 영화세트장 같기도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일제강점기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일본의 전통의상인 유카다(하복)을 입은 관광객들.
일본의 전통의상인 유카다(하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일본 전통의상․말차 체험 ‘북적’

당시 요리점으로 사용되던 ‘후루사또야(고향집)’ 일본가옥은 내부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찻집 등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본의 말차와 한국차를 맛 볼 수 있으며,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 유카다(전통의상 하복), 한복체험이 가능했다.
성인옷은 1만원, 어린이옷은 7천원, 7세 이하 옷은 5천원에 대여하고 있었다. 머리장식과 신발 등 소품은 추가 요금이 없었다.

당시 여관으로 사용되던 2층 ‘구룡포 문화커뮤니티공간 문화마실’도 내부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구룡포 민화마실’, ‘내손안의 민화’, ‘색을 가지는 온도’, ‘화과자’, ‘별이 빛나는 구룡포’, ‘구룡포의 소리’, ‘해국압화’, ‘만선의 꿈’, ‘그물매듭’, ‘치유음식과 인문학’ 등의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중 일부 프로그램은 5~8천원의 수강료를 받고 있었으나 대부분 무료로 진행되고 있었다.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도 관람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구입할 수도 있었다.

문화마실 입구에 세워진 빨간 우체통은 구룡포 일본거리의 발자취를 재현하고자 1900년대 당시 형태로 제작한 ‘모형 우체통’이라고 했다.

MBC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사진이 외벽에 전시되고 있다. 여명의 눈동자는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MBC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사진이 외벽에 전시되고 있다. 여명의 눈동자는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 “이곳에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

당시 유희장 2층 목조건물은 개인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외벽에는 MBC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사진 20여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일본시대의 배경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여명의 눈동자’를 촬영한 주택 2층 창문틀에는 후지산 문양이 조각돼 있었다. 이 드라마는 1991~1992년 36부작으로 인기리에 방영됐다.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치하,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현대사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빚어낸 아픔을 주인공들(채시라, 최재성, 박상원)을 통해 그려낸 드라마다.

당시 잡화상점 건물은 현재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곳 외에도 5개의 백화상점이 더 있었다고 한다.
당시 목욕탕과 이발소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화신분식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발소는 사람들이 오가며 여러 소식을 듣고 전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고 한다.

상점으로 운영되는 2층 목조건물은 일반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이발소로 사용되던 2층 건물도 일반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창틀과 나무로 된 벽면은 1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일본인가옥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일본인들의 심상소학교는 구룡포 동부초등학교로 운영되다 학생 수가 적어 폐교된 뒤 ‘구룡포생활문화센터(아라예술촌)’로 사용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후루사또야(고향집)에서 일본의 전통의상을 체험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후루사또야(고향집)에서 일본의 전통의상을 체험하고 있다.

▢ “유카다 입고 걸으니 일본에 온 느낌

일본인가옥거리에는 커피와 아이스크럼 등을 판매하는 ‘꽃담향’과 ‘추억의 상회’, ‘은석분식’, ‘화신민박’, ‘이까대토’, ‘벚꽃냉차전문점’, ‘호호면옥’ 등이 성업 중에 있었다. 꽃담향 앞에는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쉼터도 마련돼 있었다.

거리는 관광객들로 크게 붐볐다.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 유카다(전통의상 하복)를 입은 관광객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일본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에 벚꽃(일본 대표 꽃)은 꽂은 김수현(울산 천곡초 3년)·김지후(어린이집)·김다현(천곡초 5년)과 길쭉이 호떡을 먹던 이사랑(김천 부곡초 5년)·이태랑(부곡초 3년)은 “일본인들의 옛날 집을 처음 볼 수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다”며 즐거워했다.
유카다 옷을 입은 20대의 김도석(대학생)·여다경(대구·직장인)씨는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고 일본인거리를 걸으니 마치 일본에 온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 “일제강점기 떠올라 민족의 아픔 느껴지기도”

서울에서 온 30대 부부의 성인선·정경미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거리를 걷다 문득 영화에서 본 일제강점기가 떠올라 우리 민족의 아픔이 느껴지곤 했다”고 말했다.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에 붐비는 관광객들.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에 붐비는 관광객들.

▢ “일본인거리 조성 잘해…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부산과 울산에서 온 30대의 임상민·양정모·김한은·최지혜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이곳에 일본인거리를 조성한 것은 잘한 것 같다”며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을 용서하되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남에서 온 배기남·민소현씨는 “옛날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풍요롭게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제 호미곶으로 이동해 관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걷기운동을 하던 80대 주옥순씨(아라예술촌 인근 거주)는 “옛날이 생각날 때면 이곳을 걸으며 운동을 하고 있다”며 “당시 일본인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지만 일본인들이 나를 적대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 “내달부터 이곳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

문화마실 이숙희 코디네이터(포항문화재단)는 “KBS 2TV 새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이곳을 배경으로 제작해 오는 11월 방영한다”며 “공효진, 강하늘, 손담비씨가 이곳에 내려와 6월부터 10월까지 촬영을 하게 된다. 드라마가 방영되면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가 전국에 다시 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2층에 전시된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의 '딸들의 방'.
구룡포 근대역사관 2층에 전시된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의 '딸들의 방'.

▢ “구룡포 근대역사관엔 당시 생활모습 전시”

일본인가옥거리에는 비교적 큼직한 2층 가옥이 눈길을 끌었다. 가옥 앞에는 구룡포 근대역사관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김금순·박택선 포항문화관광해설사는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1920년 일본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 가옥이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운반해 왔다. 하시모토 일가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오랫동안 한국인이 거주했으나 2010년 포항시에서 매입, 복원한 뒤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며 구룡포 근대역사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에는 100년 전 모습들이 잘 남아 있었으며, 당시 생활모습을 다양한 전시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1층에는 하시모토의 집무실이 있었다. 이곳엔 끊임없이 손님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집무실 외에도 딸들의 방, 하시모토 부부가 사용하던 방(안방), 부엌과 식당이 있었다. 안방에는 붙박이 벽장(오시이레) 등이 있었다. 겨울철에는 고다츠(난방기구)를 두고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 “1층엔 항일운동 전시관도 개관”

딸들의 방은 2층으로 옮겨졌으며, 그 자리에 포항 항일운동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포항의 의병항쟁, 포항의 3·1운동, 포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구룡포의 전설을 소개하고 있었다.

2층은 후스마(간막이 문)로 분리해 놓았다가 손님이 왔을 때에는 후스마를 떼어낸 후 2층 전체를 넓게 사용했다고 한다.
더운 여름철에는 가족들이 2층을 침실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방을 하시모토 딸들이 사용하던 방으로 복원해 당시의 생활모습과 유물들을 재현해 놓았다.
이곳에도 도코노마(미술품 등을 장식하는 장소)가 설치돼 있었으며, 장식품이 진열돼 있었다.
벽에는 오시이레(벽장)이 있었으며, 방과 방, 방과 복도 사이에 나무로 된 란마(창살)을 넣어 통풍과 환기가 잘 되고 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의 나무 창살을 통해 당시 하시모토의 부와 하시모토 가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외부에 있어서 철거된 화장실을 이곳에 복원했다. 대변기와 소변기가 나눠져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 외에도 목욕탕과 하시모토가의 아들들이 썼던 건물이 있었으나 철거되고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구룡포 근대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관광객들이 구룡포 근대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다.

▢ “‘딸들의 방’ 문아래 부분이 왜 유리로?”

서울에서 온 40대 장한기씨는 “딸들의 방을 보다 방문 아래 부분이 유리로 돼 있음을 보고 놀랐다”며 “아이들이 불편해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것 또한 일본문화라는 마음에 그 이상의 생각을 접었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김금순 포항문화관광해설사는 “당시 이곳은 하시모토 내외와 3남4녀의 자녀들이 살았다”며 “하시모토는 매제와 구룡포에서 선박 4척으로 선어운반업을 시작해 정어리 가공공장을 설립, 경영했을 뿐 아니라 학교조합의 관리자와 구룡포어업조합장까지 지냈다. 그의 부와 명성에 걸맞게 그의 가옥은 크고 화려하게 건축됐다”고 했다.

박택선 포항문화관광해설사는 “일본인가옥거리에는 과거 병원과 백화상점, 요리점, 여관 등이 늘어서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지역상권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들려줬다.

▢ “이곳서 보낸 엽서 6개월 뒤 배달”

구룡포근대역사관을 나오니 역사관 앞에 ‘추억의 느린 우체통’이 설치돼 있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에 비치된 엽서 2장을 확보해 소중한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 엽서는 6개월 후에 배달된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구룡포 공원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관광객들이 구룡포 공원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공원 계단․돌기둥에 숨겨진 비밀… 뭘까?

공원입구에는 계단과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계단과 돌기둥은 일본인들이 1944년 세웠다고 한다. 계단 좌우 끝에 세워진 돌기둥은 왼쪽 61개, 오른쪽 59개 모두 120개가 됐다.
돌기둥에는 당시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구룡포 이주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패전이후 일본인들이 떠난 뒤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리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 세웠다고 한다. 그 뒤 1960년 구룡포 주민들이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할 충혼각을 세우는 과정에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이름을 다시 앞뒤를 돌려 세운 돌기둥에 새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니 구룡포 공원이 펼쳐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로 사용되던 곳으로써 지금은 신사를 허물고 충혼탑이 있으며, 마당에는 그 당시 유물 몇 점이 남아 있었다.

▢ “하늘에 못 올라간 용 한 마리는 어디 살아”

그 중 구룡포 이름과 관련된 아홉 마리 용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용 조형물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신라 진흥왕 때 장기현감이 각 마을을 순찰하던 중 사라리를 지날 때 별안간 천둥과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그 비바람을 뚫고 용 열 마리가 승천하다가 한 마리가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용이 아홉 마리만 승천했다고 해서 그때부터 이곳을 구룡포라고 부른다.”

도세윤(대구 서동중 2년)은 “10마리의 용 중에서 아홉 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포가 됐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지만 하늘로 못 올라간 한 마리의 용을 생각하니 슬픈 마음이 든다. 그 한 마리는 지금 어디에 사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던 30대 어머니는 “그러게”라며 거들었다.

구룡포 공원에서 바라본 구룡포항이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답다.
구룡포 공원에서 바라본 구룡포항이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답다.

▢ “공원서 바라본 구룡포항은 한 폭의 그림”

구룡포 공원에서 바라본 구룡포항은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다웠다.
일본인가옥거리에서부터 구룡포항 주차장, 과메기문화거리, 구룡포항, 닻을 내린 고깃배들,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저 멀리 정박 중인 어선들, 수평선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손을 내밀면 하얀 등대가 잡힐 것만 같았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이곳을 찾아 운동도 하고 시간을 보낸다는 40대는 “구룡포 공원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은 가히 환상적”이라며 “이곳에서 오늘 자고 내일 일출을 본 뒤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충혼탑이 우뚝 서 있었다. 이곳 충혼탑은 대한민국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포항(당시 영일군)지역 출신 전몰군경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0년 건립됐다고 한다.

당시 재정이 열악했다. 탑신의 받침대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설치한 구조물이었다. 그 받침대 위에 충혼탑이 설치돼 오다가 2007년 9월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재건립됐다고 한다. 충혼각에는 전몰군경을 비롯해 235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해마다 현충일에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덧칠해 둔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덧칠해 둔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 “구룡포 파노라마 사진전 보는 재미도 ‘쏠쏠’

공원 한쪽에는 ‘구룡포 파노라마’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 1975년까지의 구룡포 모습이 사진으로 되살아나 있었다. 사진을 통해 구룡포의 변천사를 볼 수 있었다.

그 앞에는 일본인 도가와 야스브로를 기리는 송덕비가 세워져 있었다.
일본인들이 1944년경 일본에서 규화목(돌이 된 나무)을 가져와 구룡포 방파제 축조와 도로개설 등에 관여한 도가와 야스브로를 기리기 위해 송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송덕비는 패전 후 일본인이 돌아간 뒤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덧칠해 현재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없게 했다고 한다.

▢ “덧칠된 송덕비 철거 않고 보존한 것도 역사”

대학생들로 보이는 관광객들은 “시멘트로 덧칠해 일본인의 송덕비문을 가린 당시 성난 구룡포 주민들을 이해한다. 그래도 역사는 보존돼야 후세가 평가할 것이다. 그 곳에서 교훈도 얻지 않겠는가. 덧칠된 송덕비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는 오늘날 구룡포 주민들과 포항시에 감사한다”고 입을 모았다.

승천하지 못한 한 마리의 용을 스토리텔링한 용이 소년이 '해터 바다마루'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승천하지 못한 한 마리의 용을 스토리텔링한 용이 소년이 '해터 바다마루'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계단 중간 쯤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정원 같은 ‘해터 바다마루’가 조성돼 있었다. 구룡포 마을 전체를 하나의 집이라는 관점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이곳을 ‘해터 바다마루’로 명명했다고 한다.
지역 이름 ‘구룡포’에서 알 수 있듯이 용 중 승천하지 못한 한 마리의 용을 스토리텔링한 용이 소년과 그의 친구 아라 소녀의 조형물이 서 있었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소년의 푸른 꿈을 상징하며 고깃배를 타고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을 서정적으로 담고 있었다.

▢ “가난한 일본 어민들, ‘황금의 나라’ 찾아 이주”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문화마실 이숙희 코디네이터(포항문화재단)는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입성한 것은 1900년대 초”라며 “가가와현의 고깃배들이 물고기 떼를 좇아 이곳까지 오게 된 이후 가난한 일본 어부들이 '고기반 물반' 이었던 구룡포 엘도라(황금의 나라)로 대거 이주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는 그 수가 300가구에 달했다”고 했다.

▢ “구룡포가 고향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와”

90대 서상호씨(구룡포 주민)는 영상에서 “일본 생각나면 (옛 친구를) 한번 만나봤으면, 그런 생각이 난다”고 했고, 80대 이시하라 히데오(일본인들의 모임 구룡포회 회장)은 “요전번에 구룡포에 갔을 때, 고향이라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80대 하시모토 히사요(구룡포회 회원)은 “그립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져놓고 바다랑 항구로 친구와 놀러 갔었다”고 당시를 회고했고, 80대 마츠모토 야스타다(구룡포회 회원)은 “(구룡포가) 그리운 게 당연하다. 일본에 돌아왔다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아직도 구룡포에 돌아가고 싶다”며 어린 시절을 보낸 구룡포를 그리워했다.

▢ “도가와․하시모토가 일본인 이주 어촌의 두 기둥”

박주연 후루사또야 한일문화체험관장(구룡포 근대역사관 명예관장·후쿠오카 영사관서 20여년 근무)은 “1908년경 일본 가가와현의 가난한 마을 오다 어촌의 어부들과 오카야마현의 어부들이 중심이 되어 구룡포로 이주했다. 구룡포에 본격적으로 터전을 잡은 대표적인 일본 어부로는 구룡포공원 내 공덕비의 주인공인 도가와 야스브로와 하시모토 젠기치가 있다. 오카야마현에서 이주한 도가와 야스브로와 가가와현에서 이주한 하시모토 젠기치는 구룡포 일본인 이주 어촌의 두 기둥이 됐다”고 말했다.
박 관장은 이어 “구룡포에 일본인들의 유입이 늘어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경 일제가 도가와 야스브로의 제안으로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권역의 어업을 관할하면서였다”고 덧붙였다.

▢ “후세 산교육장 삼고자 일본인가옥거리 조성”

포항시 관계자는 “구룡포의 일본 가옥들은 각종 개발과정에서 철거되고 오랜 세월동안 훼손되면서 과거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산 증거물이 사라져가는 실정이었다”며 “그래서 포항시가 일본 가옥을 보수·정비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풍요했던 생활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대적으로 일본에 의해 착취되었던 우리 경제와 생활문화를 기억하는 산 교육장을 삼고자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 “구룡포, 볼거리․체험거리․먹거리 ‘풍성’

민화작가 신동옥 씨(문화마실)는 “구룡포는 문화가 살아 있는 고장”이라며 “아라예술촌, 동쪽땅끝마을, 주상절리, 해수욕장, 일본인가옥거리, 말목장성, 장길리복합낚시공원, 과메기문화의 거리, 과메기문화관, 과메기 및 특산품축제, 말목장성 달빛산행축제, 수산물 한마당축제, 여름해변축제, 일출과 일몰 등이 볼만하다”고 했다.
이어 “구룡포가 해양문화관광 중심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구룡포 출신의 5선 포항시의원인 서재원 시의회 의장과 시.도의원, 국회의원, 전․현직 시장들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서재원 포항시의회 의장은 “특별히 구룡포 과메기를 상품화시켜 전국으로 유통시키는데 열정을 쏟았다”며 “2007년 7월 지식경제부로부터 구룡포 등 일대가 과메기 산업특구 지역으로 지정돼 380억 원의 예산을 받아 과메기 문화거리 등을 조성했다. 경주 감포~구룡포~호미곶~신항만을 연결하는 천혜의 해안을 따라 해양문화관광시대를 열어간다면 구룡포와 포항의 앞날은 한층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 앞 도로변에 늘어선 횟집들.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 앞 도로변에 늘어선 횟집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주변에서는 구룡포시장과 횟집들이 포진하고 있어 구룡포 대게와 물회, 과메기, 오징어, 전복, 성게, 고래고기 등 각종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구룡포시장에서는 구룡포의 대표 별미음식 중 하나로 일제 강점기시절부터 구룡포에서만 존재해 왔던 모리국수와 오랜 세월 재래식 방식만을 고집하며 생산하는 해풍국수의 맛도 볼 수 있다.

►가는 길

△버스
포항시내에서 200번 좌석버스를 이용해 구룡포 종점(환승센터)에 하차하면 된다.

△승용차
포항시내에서 구룡포와 감포 방면으로 이동하다 구룡포 읍내로 진입하면 된다.

/김규동기자 k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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