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YWCA ‘40년 희망이야기’
포항YWCA ‘40년 희망이야기’
  • 김규동 기자
  • 등록일 2019.05.03 21:21
  • 게재일 2019.0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항 시민·사회·화단체 탐방(4)
오는 9월 ‘창립 40주년’

포항YWCA 실무자들. 이계영 사무총장(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희 차장, 이유정 간사, 김옥경 간사, 이예린 차장, 진정숙 국장.
포항YWCA 실무자들. 이계영 사무총장(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희 차장, 이유정 간사, 김옥경 간사, 이예린 차장, 진정숙 국장.

포항YWCA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1979년 9월 창립 발기인대회를 갖고 기독여성운동의 깃발을 올렸다.
그동안 민들레학교(무료 한글교실)를 열어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글을 가르쳐 혼자 버스를 타고 은행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왔고, 무료직업안내소와 고령자인재은행, 아이돌보미 양성과정을 개소해 구직상담과 취업알선 서비스를 제공했다. 올해에만 320명을 지역 초등학교 40여 곳에 시설관리 및 환경미화원으로 파견했다.
친환경 먹거리 장터와 환경용품 상설매장을 운영하면서는 소비자 건강과 환경운동에도 힘을 썼다. 바자회·장날 행사 수익금으로는 독거노인 및 취약계층, 폭력피해여성들에게 사랑의 김장을 전달해 왔다.

구제역이 기승을 부릴 때는 EM흙공을 만들어 살처분 매몰지와 하천에 투여하며 침출수 발생을 최소화했고, ‘애들아 밥 먹자’ 운동을 통해서는 청소년기 아침밥 섭취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죽도시장과 할인마트 등 물가조사를 통해서는 지역 물가안정에 기여했고,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때에는 부정선거 감시와 투표참여 촉구를 위한 범국민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통일교육과 현장체험학습을 통해서는 나라사랑의 마음과 평화통일을 바라는 시민 염원을 담아내며 다가올 통일한국시대를 위한 과제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했다.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와 올바른 재활용 분리배출 운동도 꾸준히 전개해 왔고, 결혼이민여성 대상 자국요리경연대회와 무료 합동결혼식을 열어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외되지 않고 자기역량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다문화 가정을 위한 힐링가족캠프를 열어 문화적 갈등이나 자녀와의 교육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을 위로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1980년 8월 포항YWCA회관 현판식.
1980년 8월 포항YWCA회관 현판식.

▢ 지역 첫 소비자운동 ‘아나바다’ 시장 열어

포항YWCA는 공대희, 박애자씨가 창설했다. 다음달 10월 제1회 정기총회를 열고 박경애 씨를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듬해 12월 어린이합창단 창단을 시작으로 그간 꿈꾸어왔던 사업들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82년 11월 포항에서 첫 소비자운동이라 할 수 있는 ‘아나바다’ 물품을 활용한 홈패션 작품으로 알뜰장날을 열었다.

83년 들어서는 청소년과 일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해 11월 청소년을 젊은 지도자로 키우기 위한 대학부 영클럽 인준식을 가진데 이어 파출부 요리사 과정을 만들어 수료한 파출부 요리사를 파견하는 일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85년에는 포항YWCA 소식지를 발간, YWCA 활동을 회원들에게 전했으며, 87년 10월에는 제1기 규수학당 수료식, 89년 11월에는 YWCA 유아원 수료식과 어린이 YWCA 1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982년 11월 알뜰시장 개최.
1982년 11월 알뜰시장 개최.

▢ “해마다 100명 한글 깨치기로 문맹 탈출시켜”

90년대 들어서는 ‘여성이 만드는 건강한 세상’을 슬로건을 내걸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사업을 적극 펼쳐나갔다.
92년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제3대 홍윤옥 회장의 자택에서 김장나누기 행사를 가졌고 93년에는 포스코로부터 무공해 비누 제조기를 기부 받아 만든 비누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94~95년에는 청소년들이 유해환경에 물들지 않도록 건전놀이 문화인 청소년 어울마당을 열었고, 96년에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모의 대통령선거를 실시, 선거문화 정착을 시도했다.

96년 10월에는 청소년의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교육 및 캠페인을 전개했고, 그해 10~11월에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폭력 없는 주간 기도회를 진행했다.

97년 IMF 국가경제위기 때에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했고, 그해 경주대학교에서 포항Y, 경주Y, 김천Y가 함께하는 ‘경북YWCA 바른생활 회원대회’를 개최했다.
같은 해 환경과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진행한 재활용 나눔 활동(아나바다)을 YWCA회관에서 주기적으로 진행했다.

98년에는 재활용품을 수거해 회원 교류의 장을 열었고, 그해 9월에는 가정 폭력법의 실태와 대응법 포럼을 개최하는 등 가족 관련법 및 제도 개선에 앞장섰다. 가족 구성원 간에 관계를 회복하고 유대 강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해 12월에는 포항YWCA 일하는 여성의 집을 개원하고, 포항YWCA 가정폭력상담소를 개설했다.

99년 3월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진행한 민들레학교(구 한글반) 졸업식을 열었다. 민들레학교는 94년 개소한 이래 해마다 100여명의 학생을 배출했다. 그해 중·고 Y틴 클럽을 확장해 나가기도 했으며,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단 활동도 전개했다.
그해 9월에는 가정폭력 보호시설인 소망의 집의 문을 열고, 같은 달 포항YWCA 창립 2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 유통업체 물가조사 통해 물가안정 기여

여성의 인권과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 접어든 2000년대에는 독거노인이나 이주여성 등과 같이 인권소외계층에 대한 사업에 더욱 힘을 쏟았다.
2006년 3월부터 포스코의 지원으로 ‘포스코 사랑나눔 무료 간병사업’을 이어오면서 소외계층의 건강권을 지켜왔다.
이주여성의 인권과 생활정착을 위한 활동으로 요리교실을 운영했고, 결혼이민 여성들이 거주하는 마을을 찾아서는 마을잔치를 진행하기도 했다.

소비자보호운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청소년 소비자교육, 대형할인마트 이용실태 조사, 전자상거래 이용관련 피해 실태조사, 물가안정을 위한 죽도시장 및 할인마트 물가조사(추석과 김장철 등)를 진행했다. 조사결과는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 물가안정에 기여했다.

청소년 Y틴 인준식.
청소년 Y틴 인준식.

2000년 4월에는 건전한 청소년 문화정착을 위한 학교 교장 간담회를 가졌고, 그해 11월에는 청소년 사랑 업소를 선정, 시상했다. 다음달 12월에는 지역 환경미화원을 초청, 식사를 함께하며 따듯이 위로했다.
2003년에는 Y틴과 함께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청소년 평화교육 및 실천운동을 전개했고, 건전한 취미 및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청소년 만화그리기대회를 실시했다.
그해 10월에는 이웃사랑운동의 일환으로 결식아동 돕기 일일 바자회를 회관에서 개최했다. 수익금으로 사랑의 식품을 구입, 120여 가구의 결식아동에게 전달했다.

▢ 호주제 타파 첫 걸음 내딛어

2004년 7월에는 생명존중과 남녀평등 실현을 위한 호주제 바로알기 교육으로 호주제 타파의 첫 걸음을 내딛었고, 2005년에는 포항YWCA 여성쉼터(소망의 집) 입소자 자활 돕기 대바자회를 열었다. 이 기금은 소수그룹과 소외계층 인권 옹호와 법적·제도적 보장, 사회안전망 구축에 사용했다.

2006년 3월에는 포스코와 사랑 나눔 무료 간병사업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재가간병이 필요한 독거노인, 만성질환자, 장애인 등에게 간병서비스와 가사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으로 지역 소외계층 복지 향상과 저소득 여성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
포스코는 98년 12월 포항YWCA 일하는 여성의 집 개원 때 기자재 1억 원을 후원했다.

2008년에는 ‘한 하늘 한 땅 요리교실’을 통해 한국의 요리기술을 습득하는 나눔의 시간을 가졌고 그해 9월 이주여성자국요리경연대회 ‘장금이를 찾아라’를 진행했다.

2009년 7월에는 예비 사회적기업 발굴을 위한 사회적일자리 창출사업 친환경세상 기업연계 협약식을 가졌고, 그해 여성의 보육문제를 해결하며 경력단절 여성에게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해 12월에는 부활절 계란나누기를 통해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2010년 경북공명선거 투표참여 캠페인.
2010년 경북공명선거 투표참여 캠페인.

▢ 공명선거 운동 전개·무료 결혼식 올려줘

2010년에는 공명선거 실천시민운동협의회 경북 사무실을 맡아 바른 선거문화운동을 전개했고, 2014년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들에게 무료예식과 피로연까지 열어줬다.

2017년부터는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참여자 165명을 시작으로 80여 곳의 학교,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에 환경미화원, 급식보조, 보육보조로 파견했다.
2018년에는 포항시와 일회용품사용 줄이기 효율적 업무추진을 위한 협약을 맺고 일회용품(비닐)사용 줄이기 및 올바른 재활용 분리배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아이돌보미 양성과정을 개설, 20명을 배출한데 이어 경비원, 살림 돌보미, 가정관리사 교육 등을 계획하고 있다. 또 오는 24일~25일에는 문화적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가족을 위해 힐링가족캠프를 열 계획이다.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문화체험.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문화체험.

▢ Y틴, 장애인 섬기며 편견 떨쳐내

포항YWCA Y틴(10대 청소년)은 노인복지시설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발 벗을 되어 드리기도 하고 청소, 식사 준비, 밑반찬 전달 등을 통해 소외계층 인권옹호와 보살피기 운동을 전개해 왔다.
또한 Y틴이 지역 시각장애인들과의 등반대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도록 했으며, 그들과 함께 땀 흘리고 서로 힘이 되어줌으로써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데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 “남성중심 포항에 YWCA 정체성 뿌리 심어”

공귀분 전 회장은 “포항YWCA는 그동안 사회문제, 환경문제, 소비자문제, 청소년문제를 비롯해 여성인력개발센터, 가족상담센터, 여성의 쉼터뿐만 아니라 포스코 연계 무료간병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여성문화의 불모지 포항에서 여성운동을 전개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남성중심의 포항에서 Y정체성이란 뿌리를 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포항YWCA는 본부 산하에 공천위원회, 인사위원회, 재정건축위원회, 회원증모특별위원회, 사업부위원회, 청소년부위원회, 사회선교위원회, 직업교육개발위원회 등 8개 위원회를 두고 있다. 또 부설기관으로 여성인력개발센터와 가정폭력상담소, 소망의집, 합창단을 운영하고 있다.

▢ ‘IMF 외환위기’ 때 여성인력개발센터 개관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시작은 1993년 노동부가 대한YWCA연합회에 ‘일하는 집’으로 명명한 여성직업훈련기관을 서울, 부산, 광주 등 3개소에 지정 위탁함으로 설립하게 됐다.포항여성인력개발센터는 1998년 12월 개관했다. 당시 ‘IMF 외환위기’ 때 지역 여성가장과 실직여성들의 사회 재진출과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서였다.

2001년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일하는 여성의 집’은 노동부에서 여성부로 이관돼 지금의 ‘여성인력개발센터’로 명칭이 변경됐다.

2002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한 ‘여성취업 및 창업박람회’를 주관했고, 2005년 정보통신부지원 한국문화진흥원으로부터 ‘문해정보화교육장’으로 지정받아 중소기업전업주부 재취업훈련을 하며 사무직 취업을 확대했다.

2006년 사회적일자리 여성취업지원사업 운영과 2007년 창업보육센터 운영을 통해 교육훈련과 취업에 집중돼 있던 센터의 기능을 더욱 확대해 나갔다.

이후 요양보호사 및 장애인활동보조인 교육기관으로 지정받아 여성친화직종에 대한 지원 활성화와 돌봄의 전문화를 선도했다.

▢ 9년간 수료자 3만613명 중 6천293명 취업

2009년에는 마침내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의 지원으로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지정받아 체계적인 취업지원시스템을 확립, 여성일자리 지원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2012년에는 동부지방통계청 포항사무소와 MOU를 시작으로 (재)이찬 경북직업전문학교,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와 업무협약을 했다. 이로 인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CAD·CNC, 용접분야에 대한 여성도전의 기회를 마련해 직업 선택의 양성평등을 실현해 나갔다.

2016년에는 포스텍 나노융합기술원과 3D프린팅·드론 창의체험교육 업무협약을 맺었다. 3D프린팅과 드론교육 키트 10대를 기증받아 변화하는 시대의 트랜드를 반영한 일자리창출에 앞장서 왔다. 업무협약을 맺은 기업체는 현재까지 288곳(누적)에 이른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성인력개발센터의 교육훈련 실적을 보면 국비훈련, 직업능력개발훈련, 사회문화교육 등 3개 부문 1천63개 과정에서 3만613명이 수료했고, 이중 6천293명이 취업했다.

전은숙씨(2018년 수료생)는 “여성인력개발센터의 국비 교육생 모집 광고를 보고 이곳에서 ITQ 한글, 엑셀과 전산회계 2급 과정을 마친 뒤 전산회계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지금은 지역 건설회사에 취업해 경리업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정 포항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은 “최근 5년간 여성인력개발센터 취업성과를 분석한 결과 전체 취업인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주요 취업처는 서비스 직종과 사무회계 직종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초대 졸 이상 고학력 여성 구직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다양한 취업직종 확대 및 고학력 여성 맞춤형 일자리 발굴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 “14년간 1만6천43건의 상담 중 57%가 가정폭력”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무작정 포항YWCA를 찾아 살려달라며 도움을 요청하던 시절인 98년 12월 포항가정폭력상담센터의 문을 열었다.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게 눈을 맞추고 개인과 가족의 당면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을 시작했다. 가정해체를 예방하고 가정폭력을 멈출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시하며 폭력에 노출된 지역 여성들과 함께해 왔다.
또한 가정폭력행위자 수강명령 수탁기관으로 지정받아서는 행위자의 행동교정을 통한 가정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며 피해자들과 함께 동행 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가정을 둘러싼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상담소로 발전했다. ‘365일 즐거운 학교 만화 그림 응모전’을 연데 이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가정폭력예방을 위한 간담회, 부부소통을 위한 특강, 가족사진콘테스트를 진행하며 가족 간의 대화매개체 역할을 감당해왔다.
또한 무료법률상담을 실시하며 가정의 어려움을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2013년부터는 가정의 구성원인 자녀들의 학교와 협력, 가정의 건강도를 높여왔다.
소년보호사건을 위탁받아서는 자녀들의 문제에 부모가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고 자녀와의 관계개선 및 문제해결을 시도했다.
포항남부경찰서와 협력체계를 구축해서는 가정폭력 상담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진행했고, 지역 청소년들을 건강하게 양육하기 위한 집단프로그램도 진행해 왔다.

2018년부터는 지역사회 폭력노출에 대한 인식개선 및 예방을 위한 노력과 함께 가족맞춤형 만남을 통한 적극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또 경북아동보호전문기관과 드림스타트, 초·중·고 및 교육복지사들과 함께 가정문제 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다.

올해는 매월 3회 부모교육과 자녀리서치를 진행하고 있으며, 5월 가족캠프, 7월 청소년캠프 등을 통해 ‘건강한마음, 화목한 가정, 건강한 사회 만들기’를 시도한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가정폭력상담센터의 상담실적은 1만6천43건에 연평균 1천146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가정폭력은 57%나 됐다.

정영숙 포항가정폭력상담소장은 “포항YWCA 가정폭력상담소는 비영리기관으로 개인이나 가족이 당면하는 성격문제, 부부갈등, 자녀문제 등의 심리, 사회적 어려움에 대한 상담기관이며, 타 기관과 연계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상담을 원하는 시민들은 주저하지 말고 가정폭력상담소를 방문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장금이를 찾아라’ 단체사진.
‘장금이를 찾아라’ 단체사진.

▢ “남편 폭력 피해 도망… 돌아갈 집이 없어”

1999년 9월 소망의 집을 개설했다.
소망의 집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당시 폭력 피해여성들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도 갈 곳이 없어 또다시 폭력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절박하게 호소했기 때문이다.

소망의 집은 사무실 한 구석에 침대 하나를 놓고 시작한 긴급피난처였다. 폭력피해여성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넉넉하고 좋은 공간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초 붙어진 이름이 ‘쉼터’였다. 이 이름은 전국 긴급피난처의 고유명사가 돼 버렸다.

쉼터는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1999년 8월부터 가정공동체로 운영됐다.
아무런 정책이 없을 때는 그냥 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 도움이 되었고 만족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총체적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다양한 개입이 필요하게 됐다. 주거문제, 아이들 문제, 교육문제, 생계문제, 건강문제, 심리적인 문제 등을 지원해야 했다.

1999년부터 2018년까지 소망의 집 입소현황을 보면 2천여 명 이상이 쉼터를 이용했다. 이들은 개별상담, 집단상담, 문화체험, 명상 등의 치료·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되어 갔다.

소망의 집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 여성들과 그 자녀들을 보호하는 안식처이다. 보호기간 동안 피해의식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 신체적, 정신적 안정과 회복을 돕고 자신의 권리를 회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입소대상은 가정폭력피해여성 및 동반자녀이다. 여아는 제한 없으나 남아는 10세까지 가능하다. 입소정원은 17명이다.
입소절차는 위기전화 24시간을 통해 의뢰하면 상담이 이뤄지고, 상담을 통해 입소여부가 결정된다. 입소는 신분확인 뒤 입소수칙에 동의하면 가능하다.
상담원과 상담 장소는 일체 비밀로 하고 있다.
문의 : 010-4841-1366(24시간 가능)

진정숙 포항YWCA 국장(늘사랑교회 집사)은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원들이 있어 고맙고, 격려와 응원을 해주는 이사들이 있어 힘을 내고 있다. 회장과 사무총장을 잘 받들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더 힘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계영 사무총장(포항중앙교회 권사)은 “겸손하고 온유하며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YWCA가 되도록 기도하며 함께 노력하겠다. 특별히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며 약자 편에서 일 하겠다.”고 말했다.

포항YWCA 합창단.
포항YWCA 합창단.

▢ 일반회원·Y틴회원 등 1천380명 활동

포항YWCA는 일반회원, 평생회원, 회우회원, 가족회원, 대학생회원, Y틴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2019년 5월 현재 1천38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임원진은 성명희 회장, 백성미 제1부회장, 김정미 제2부회장, 김주원 서기이사, 김영희 회계이사, 김혜진 부서기이사, 최명옥 부회계이사로 구성돼 있다.
전점숙, 박해숙, 공귀분, 김향자, 장혁란, 장광복, 홍필남, 김선아 이사와 김인자, 이분우, 공대희, 장호선, 이행숙 명예이사도 활동하고 있다.

포항YWCA는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약자로 한글로는 ‘여자기독교청년회’로 표기한다.

▢ 역대 회장과 총무, 현 본부실무자

△역대 회장

초대 박경애, 2대 이분우, 3대 홍윤옥, 4대 이분우, 5대 장호선, 6, 7대 김애숙, 8대 박정엽, 9대 황치옥, 10대 이행숙, 11대 김영희, 12대 박해숙, 13대 공귀분, 14대 김향자, 15대 김인자, 16대 김주원, 17대 전점숙, 18대 성명희.

△역대 총무

1대 박애자, 2대 이상희, 3대 하수련, 4대 김영선, 5대 이영주, 6대 항보종희, 7대 신정숙, 8대 이은숙, 9대 신정숙, 10대 이계영 전 포항시 회계과장.

△현 본부 실무자

이계영 사무총장, 진정숙 국장, 이예린 차장, 이정희 차장, 이유정 간사, 김옥경 간사.

포항YWCA 운영과 관련, 성명희 회장(늘사랑교회 권사)은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셨다”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리라 생각하고 앞으로 포항YWCA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의욕적으로 추진하며 포항YMCA의 발전을 위해 부족하지만 힘쓰겠다.”고 말했다.

성명희 포항YWCA 회장 취임식이 2019년 1월 23일 YWCA강당에서 열린 뒤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명희 포항YWCA 회장 취임식이 2019년 1월 23일 YWCA강당에서 열린 뒤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선각 여성들, 한국YWCA 설립

한국YWCA는 1922년 선각 여성 김활란, 김필례, 유각경에 의해 설립 됐다.
초기 YWCA 회원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애국사상과 계몽운동을 펴나갔다. 금주·금연·공창·조혼폐지를 외치는 사회운동과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위한 교육 및 생활 개선운동에 주력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세계 각국의 YWCA와 국제기관의 도움을 받아 구호사업과 전쟁미망인을 위한 사업을 펼쳤다. 이 시기에 내한한 박에스더 고문은 한국Y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종전 후 정치적 격변과 불안정한 경제, 빠른 사회변화는 한국Y프로그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 생활개선을 위한 노력, 소비자운동 등이 1960년대 핵심 사업이 됐다. 1960년대 말부터는 ‘환경운동’을 시작, 우리나라 환경운동을 선도했다.

경제발전기 1970년대에는 여성과 청소년을 위해 지역사회 속에 파고드는 직업개발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이것은 이후 한국Y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바른 삶 실천운동’, 2000년대 초반 ‘평화 운동’에 이어, 2004년부터는 ‘여성이 만드는 건강한 세상’을 주제로 건강한 생활공동체 만들기, 50/50 사회 이루기, 평화 세상이루기를 중점사업으로 전개하고 있다.

현재 한국Y는 서울을 비롯한 55개 지방YWCA가 조직되어 있는 여성단체로 97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수많은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굳건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진취적으로 대응 하면서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세계YWCA, 164년 전 영국에서 깃발 올려

YWCA는 산업혁명으로 여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1855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
젊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숙사를 마련하고 직업교육을 시작한 아더 킨나드(Lady Arther Kinnarrd)여사의 모임과 여성 상호간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영적 생활을 돕기 위한 에마 로버츠(Emma Roberts)여사의 모임과 여성 상호간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영적 생활을 돕기 위한 에마 로버츠(Emma Roberts)여사의 기도단이 1877년 기독교적 목적을 채택해 여자기독교 청년회(Young Women's Chistian Association)라는 이름으로 통합 발족했다.
1894년 영국·미국·노르웨이·스웨덴 네 나라가 세계 YWCA헌장을 수락·서명함으로써 국제운동체로 출범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은 YWCA활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 1930년대부터 아시아·남미 등지에서 속속 발족되면서 YWCA는 세계로 확장됐다.
세계YWCA는 인권, 환경보호, 마약, 여성지위 문제에 일관된 관심을 가져왔다. YWCA가 조직되는 곳마다 개척과 계몽, 복지사업이 전개돼 여성의 지위향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YWCA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현재 109개국에 조직돼 활동하고 있으며,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기독교 여성단체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김규동기자 kdkim@kbmaeil.com

김규동 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